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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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일본 188위 순교자 시복 1주년: 나가사키 성지 순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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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11-28 ㅣ No.749

일본 188위 순교자 시복 1주년 - 나가사키 성지 순례 (하)


부활 희망으로 박해 견디고 원수마저 용서한 신앙 선조

 

 

초기 일본교회 복음화를 위해 활약했던 수도자 바스챤이 숨어살던 움막. 소토메 지역 잠복 키리시탄들에게 믿음의 디딤돌이 돼 온 이곳은 작은 움막 안에 십자가와 아궁이, 물을 끓이는 주전자 등이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소토메

 

소토메를 이야기하자면, 수도자 바스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바스챤은 사제는 아니지만 순교, 추방 등으로 자리가 빈 사제직을 대신해 자신의 스승 지완과 함께 활약한 일본 수도자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스승에게서 배운 ‘바스챤의 교회력’ ‘바스챤의 예언’ 등을 남겼다.

 

바스챤은 마키노에서 잡혀 나가사키의 사쿠라마치옥에서 참수됐지만,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소토메와 인근 교토, 나가사키의 잠복 키리시탄들은 음력을 버리고 바스챤의 교회력을 통해 같은 날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됐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가운데 ‘바스챤의 예언’이란 것이 흥미롭다. 그 예언이란 ▲ 7대를 기다리면 사제가 다시 온다 ▲ 고백을 들어주는 사제가 큰 배를 타고 와 언제나 고백을 들어준다 ▲ 어디에서도 키리시탄의 노래를 부르며 다닐 수 있다 ▲ 길에서 이교도를 만나게 되면 그들이 먼저 길을 비켜주게 된다 등으로 당시 숨어있던 키리시탄들의 소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바스챤이 숨어 살던 움막이다. 바스챤은 이 움막에서 밥을 짓다가 그 연기로 발각돼 처형당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알 수 없다. 다만 이 장소가 소토메 지역 잠복 키리시탄들의 ‘믿음의 디딤돌’이 돼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1945년 원폭으로 파손된 우라카미 성당의 성모상 모습.

 

 

바스챤의 움막은 깊고 울창한 산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삼나무 껍질과 흙으로 이뤄져 있었다. 사람 하나가 들어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움막 안에는 십자가와 아궁이, 물을 끓이는 주전자 등이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소토메는 가톨릭 작가 엔도우 슈사쿠의 작품 ‘침묵’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바스챤의 움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엔도우 슈사쿠의 문학관이 있으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또 빈민들을 위해 생애와 재산을 모두 바쳤던 드 로 신부(파리외방전교회)의 작업장, 그가 세운 시츠 성당, 오노 성당 등은 현재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나가사키

 

우선 일본 26위 성인 순교지 니시자카를 찾아볼 수 있다. 니시자카 공원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순교지로 ‘26위 순교자 시성 100주년’인 1962년, 기념비와 기념관이 세워지며 조성됐다.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26성인을 교토와 오사카에서 체포한 후 약 한 달간 수난의 길을 걷게 하고 이곳에서 처형한다. 이 가운데 일본인 성 바오로 미키 신부가 십자가에 달린 채 군중들에게 한 마지막 설교는 인상적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을 잘 들으시오. 나는 어떤 죄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나는 이 이유 때문에 죽으며, 죽는 것을 기뻐하고 이것은 하느님께서 내게 내려주신 커다란 은혜입니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들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길 이 외의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단언하고 주저하지 않고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원수,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나는 국왕(히데요시)과 나를 사형에 처하는 모든 이들을 용서합니다. 국왕에 대한 증오도 없고, 오히려 그를 포함한 모든 일본인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니시자카에서 순교한 26성인 중 한명인 멕시코인 수도자 성 필립보를 기념해 건립된 성 필리피교회.

 

 

원래 기념관과 사제관만을 짓기로 했지만, 26성인 중 하나인 멕시코 수도자 성 필립보 데 헤스스를 위해 보낸 멕시코 정부의 기금으로 26성인 기념성당 성 필리피교회도 설립됐다. 이 성당은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26성인이 걸어온 길에 위치한 도자기 가마의 도자기 조각을 모자이크해 지붕에 탑을 세웠으며, 제대에는 26개의 십자가가 조각돼있다.

 

이 밖에도 1945년 원폭으로 파괴됐다가 재건된 우라카미 성당, 250년 만에 숨어있던 키리시탄들이 모습을 드러내 ‘신도 발견’이란 역사적 사건을 이뤄낸 국보 오오우라 성당도 찾아가 볼 수 있다.

 

특히 우라카미 성당에는 원폭 당시 피폭된 마리아상이 제대 위에 전시돼 있으며, 원폭으로 검게 그을린 천사상, 성인상 등도 찾아 볼 수 있다. 1945년 8월 9일 원폭으로 이 성당에서는 성모승천대축일을 준비하던 신자 24명과 사제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마을 주민 1만2000명 가운데 85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나가사키대교구장 다카미 미츠아키 대주교

 

꼭 일 년이 지났다. 지난해 11월 24일, 일본 나가사키에서는 ‘베드로 키베 신부와 순교자 187위 시복식’이 열렸다. 지난 1년간 일본교회는 어떠한 변화를 맞이했을까.

 

나가사키대교구장 다카미 미츠아키 대주교는 일 년여 동안 일어난 일본교회의 변화와 관련하여 ‘시복식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 또 시복식 이후의 변화보다 행사를 준비하며 더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했다.

 

다카미 대주교는 “우리 교구에는 일곱 개의 지구가 있는데 각 지구의 어린이부터 교리교사까지 순교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발표했다”며 “시복식까지 착실한 준비로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들에게까지 감동을 주었다”고 말했다.

 

박해를 피해 숨어지내던 우라카미의 잠복 키리스탄들이 파리외방전교회 뿌치잔 신부와의 만남을 통해 250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신도 발견’을 표현한 부조.

 

 

또 종교 지도자들과 나가사키 주요인사들이 참석했으므로 일본 전 지역의 관심이 집중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나가사키대교구가 시복식 이후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순교성지 정비 사업이다. 어려운 사정이지만 신자들의 도움으로 땅을 매입해 십자가와 기념비를 세우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순례미사와 강연회도 계획 중이다.

 

그는 “나가사키는 오래 전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박고 있었던 곳이지만 현재 정비가 제대로 돼있지 않은 순교지가 많다”며 “빠른 시일 안에 순교지를 정비해 한국의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나가사키대교구는 11월 28~29일 ‘사제의 해’를 맞아 복자 188위에 속한 4명의 사제, 즉 베드로 키베, 나까우라 쥬리안, 킨쯔바, 유우키료세츠 신부를 위한 기념미사와 행사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러 변화 가운데 ‘한국교회와의 더 많은 교류’도 일본교회의 빼놓을 수 없는 변화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다카미 대주교는 “앞으로 한국의 더 많은 신자들이 나가사키를 찾아와 친교를 돈독히 한다면 ‘한국 신자들에게 자극을 받아 일본 가톨릭도 앞으로 발전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가톨릭신문, 2009년 11월 29일, 나가사키(일본)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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