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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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신앙의 섬 고토(五島)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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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3-27 ㅣ No.782

주일 교황대사 · 일본 순례단 함께한 신앙의 섬 고토(五島) 순례


처절했던 신앙 증거에 감사기도 올리다

 

 

고토 신자들이 금교령 후 처음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는 도자키성당에서 순례단이 주일 교황대사 알베르토 보타리 데 카스텔로 대주교로부터 강복을 받고 있다.

 

 

고토(五島)는 곳곳에 일본 가톨릭의 역사가 서린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 같다. 곳곳에 산재한 성당은 그 역사를 말한다. 박해를 피해 고토로 숨어든 가쿠레 키리시탄(陰れ切支丹, 잠복 그리스도인). 흡사 우리 신앙의 역사와 닮아 있기도 하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초월하고 더 없이 행복했던 고토 신자들의 이야기를 주일 교황대사 알베르토 보타리 데 카스텔로(Alberto Bottari de Castello) 대주교, 일본 순례단과 함께 되짚어본다.

 

 

26성인 순교제 미사

 

고토에 들어서기 전,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26성인 순교제 미사를 봉헌했다. 26성인은 일본 가톨릭 박해의 역사를 극렬하게 보여준다.

 

1596년 12월, 사제 바오로 미키를 비롯한 26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맨발로 순교를 향해 걸어왔다. 조리돌림을 당하고 왼쪽 귀가 잘려나갔다. 처절했지만 이들에게는 신앙을 증거하게 됐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미사에 참석한 메구미 다니구치(테레지아) 수녀는 “야카미 지역에 있는 수녀원에서부터 니시자카 언덕까지 5km를 걸어서 도착했다”며 “12살 어린아이를 비롯한 26성인도 먼 길을 걸어왔듯, 그 고생길을 되새기고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야 할지 생각해가게 됐다”고 미사 참례 소감을 밝혔다.

 

 

오우라천주당

 

오우라천주당은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교회 건축물이며, 이곳에서 신앙 역사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유명하다.

 

1865년 성당 봉헌식 당시, 박해를 피해 우라카미 마을의 가쿠레 키리시탄은 성당을 찾아와 “우리들은 모두 당신의 마음과 같습니다”라고 푸치창 신부에게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박해로 와해됐던 일본교회의 부활을 알렸다. 역사는 이를 두고 ‘신도 발견’이라 부므려, 이는 일본교회 재건에 신호탄이 됐다.

 

 

도자키성당

 

도자키성당은 고토에서 처음 성탄절의 기쁨을 함께 나눈 성당이다. 금교령이 풀리고 1873년 9월 신자들의 요청으로 프랑스 선교사 프레노 신부가 고토에 왔다. 프레노 신부는 1877년부터 고토에 상주하기 시작, 1879년 도자키에 임시성당을 세웠다.

 

카스텔로 대주교는 요하네고토 성인의 유골이 안치돼 있는 제대 앞에 서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뚫고 일궈낸 신앙의 증거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구스하라성당 · 감옥터

 

구스하라성당은 벽돌로 지은 성당이다.

 

구스하라는 소토메 지방에서 무카다의 바닷가에 상륙한 오무라 영주의 정책에 의해 이주해온 키리시탄이 살던 곳이다. 오우라천주당에서의 ‘신도 발견’ 이후, 신앙을 표명한 키리시탄에게 관에서의 가혹한 박해가 시작됐다.

 

1938년 세워진 미츠노우라성당은 현존하는 목조교회 중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관에서는 키리시탄 중 지도자의 집(구스하라감옥터)에 잡아들인 키리시탄을 모두 가둬 놓고 고문을 가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빨래판 같이 만들어진 철판에 무릎 꿇게 한 다음 무거운 돌을 얹었다. 배교하라는 뜻에 따르지 않으면 돌의 개수는 점점 늘어났다. 이 모든 고통을 주님이 옆에 계신다는 믿음으로 이겨냈다.

 

 

미츠노우라성당

 

1938년에 세워진 미츠노우라성당은 하얀 목조 건물이다. 마치 하얀 드레스를 차려 입은 귀부인 같다. 현존하는 목조교회 중 일본 최대 규모다.

 

성당에서는 카스텔로 대주교 주례로 일본 순례단, 현지 신자가 함께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기도를 통해 드리는 신앙을 향한 염원은 과거와 현재가 일맥상통한다.

 

 

이모치우라성당(루르드)

 

프랑스 루르드 마사비엘 동굴을 본떠 만든 이모치우라성당 루르드 동굴. 신자들이 직접 날라 왔다고 전해지는 동굴의 돌에서 그들의 절실한 믿음이 묻어난다.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루르드 동굴이 있다. 이곳에는 성지 루르드의 샘물을 가져다가 혼입한 성수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루르드의 성모를 기리며 기도를 드리려는 순례단이 줄을 잇는다. 이날 성모상 앞에 모여선 일본 순례단에서도 ‘아베 마리아’가 터져나왔다. 모두 한마음으로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노래했다. 동굴을 구성한 돌들은 신자들이 직접 배를 타고 각지에서 날라 왔단다. 당시 신자들의 신앙에 대한 절실함이 묻어있다.

 

 

구 고린성당

 

메이지 14년(1881년) 히사가섬의 하마와키 지역 하마와키 교회당으로 지어진 것을 쇼와 6년(1931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현존하는 목조 교회당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린은 구가섬 동부에 있는 어항으로 6~7km 산길을 걷거나, 해상 택시로 타고 가야 할 정도로 벽지다. 박해로 내몰린 가쿠레 키리시탄에게 고린은 힘겹게나마 신앙을 이어갈 수 있는 희망을 밝혀준 곳이었다.

 

 

로우야노사코순교기념성당

 

박해시절, 성당이 있는 히사가 섬에서는 신자 200명을 6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로우야(감옥)에 감금하고 8개월 간 혹독한 고문을 했다고 전해진다. 고문을 견디다 못해 죽거나, 후유증으로 죽은 이도 상당수다. 성당 앞 마당에 이들을 위한 기념비가 모셔져 있다. 순례단은 잠시 눈을 감고 묵상을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신앙을 지킬 수 있게 해준 그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전해졌다.

 

 

주일 교황대사 카스텔로 대주교 - “순교영성 보존·전달에 힘쓸 것”

 

 

카스텔로 대주교는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믿음을 지켰던 신앙선조들의 순교영성을 후대에 잘 전달하는 것이 일본교회의 미래를 위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500년 가까이 미사를 비롯해 사제, 수도자 같은 성직자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신앙을 이어온 일본 가톨릭의 저력이 놀라웠습니다.”

 

주일 교황대사 알베르토 보타리 데 카스텔로(Alberto Bottari de Castello) 대주교는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신앙을 지킨 키리시탄의 모습을 2박3일 간의 고토순례에서 발견했다.

 

“극렬한 고통과 직면해도, 마음속에 굳건한 십자가가 있다면 하느님께서 이루시려는 바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신앙선조들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고토에 산재해 있는 성당이 바로 이러한 역사를 통해 이뤄진 신앙의 결정체다. 앞으로 일본교회의 남은 과제는 신앙선조들의 역사를 후대에까지 전달하는 것.

 

“교회의 미래는 주님께서 주관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속단할 수 없지만,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할 일은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공고히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신앙선조의 순교영성을 잘 전달해야 합니다.”

 

주일 교황대사로서 느낀 이웃나라 한국의 교회 역시 일본의 순교 영성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아시아 교회이기도 하다.

 

“한국교회 역시 순교영성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작년 이맘 때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야기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교회 역시 매우 강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신문, 2010년 2월 28일, 고토(일본) 이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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