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그리스도교 영성의 뿌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09 ㅣ No.290

그리스도교 영성의 뿌리

 

 

1. 구약성서

 

구약 영성을 공부하는 것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영성의 기원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에게 있어 구약성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단순한 기록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계속해서 영적인 자양분을 제공해 주는 텍스트이다.

 

1.1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

 

1) 단체 혹은 개인

 

만일 우리가 ‘영성’을 ‘전례’로서 더 잘 분류되는 종교적 확신에 대한 집단적 표현으로서 보다도 오히려 개인의 영성생활로 이해한다면,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에 대한 증거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매우 많은 시편들과 기도들은 명확히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여러 시편에서 일인칭 복수로 된 화자(話者)는 예배 중인 공동체를 뜻한다(시편 20, 21, 33, 44, 46-48, 60 등등). 겉으로는 주체가 개인인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 개인은 공동체가 인격화된 것이다(모세의 노래: 탈출 15,1-18; 탄원시편들). 대부분의 경우 공동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시편에 대한 양식비평 연구는 대부분의 시편이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전례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순전히 개인적인 시편들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이스라엘 영성의 증거로서는 별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2) 전례적 영성

 

이스라엘 안에서 ‘전례’는 거의 우리가 이해하는 의미의 ‘봉사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축제는 카니발, 즉 모든 행위들이 신성시될 수 있는 거룩한 때(시기)에 더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 초기 이스라엘에서 각 경배자들은 축제 중에 성전에 와서 기도하였다(1사무 1장). 반드시 전례적인 거행 중에만 기도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기도는 분명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것이지만, 또한 공적이고 집단적이기도 하였다. 즉, 그 경배자는 국가(민족) 축제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대개 성소에 있게 된다. 축제 거행 중에 경배자가 거행되고 있는 사건들을 먼저 체험한 사람들과의 일치를 단언할 때, 여전히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전례적 신심’ 형태를 보게 된다. 따라서 신명 26,1-11에서 경배자는 자신의 추수감사를 위한 봉헌물을 가져와서 하느님께서 자기 선조들을 어떻게 이집트에서 구해내셨는가를 자세히 열거하면서 그것을 봉헌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처럼 개인기도와 공적기도의 혼합은 고대 이스라엘로부터 오늘에까지 내려오는 종교들의 흔한 특징이다.

 

1.2 영성에서 구약성서의 영향

 

구약성서 안에서 영성생활을 위해 중요한 개념들을 뽑아 볼 수 있다.

 

1) 하느님의 현존

 

희생제사, 예배, 찬양 등 모든 것이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일어난다. 경배자는 하느님 현존 안에 있다. 따라서 여러 시펀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 현존을 거두시어 경배자를 어둠 속에 버려두는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 현존은 본질적인 것이어서 다른 지상적인 재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이 부보다도 더 낫다.

 

2) 하느님의 감추어짐

 

구약성서에는 하느님의 현존이 축복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위협으로 간주되는 구절들과 또 하느님이 실제로 당신 얼굴을 감추기를 원하시는(시편 51,9) 구절들이 있다(시편 39,13; 139). 다른 곳에서는 하느님의 감추어지심이 하나의 처벌로서 나타난다. 의인은 그분의 현존 안에서 살 수 있지만, 죄인들은 그 강력한 능력을 견딜 수 없다(시편 5,4-6). 따라서 구약의 하느님은 감추어진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감추어짐은 그분 자신의 영광과 당신 피조물들의 무가치함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 감추어진 하느님은 당신을 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 뜻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다(이사 57,15).

 

3) ‘토라-신비주의’

 

하느님은 당신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신께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현존하신다는 이 믿음은 유배 이후 얼마간 유대교 안에 유입된 영성사조의 근간을 이룬다. 그 고전적인 표현은 시편 119편이다. 여기서 율법은 거의 공경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 유대교 율법 안에 ‘육화’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정도이다. 율법은 하느님의 마음과 인류를 위한 그분의 의향들에 대한 규범적인 표현이다. 율법의 모든 세부규정들을 준수함으로써 경배자는 그것이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한에서 하느님을 안다. 더욱이 율법을 준수하는 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묵상하는 일은 영성적으로 유익하다. 다시 말해 모든 단어, 심지어 모든 문자를 사랑스럽게 숙고하면서 하느님 현존 안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낭송하고 또 연구하는 것은 유익하다. 이러한 접근은 ‘토라-신비주의’로 묘사되어 왔다. 비록 이것이 구약 후기에 등장했다 하더라도 초기의 내용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신명기 역시 율법을 독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채우는 것으로 보려하기 때문이다.

 

 

2. 신약성서

 

그리스도는 진정한 영성의 구현이며, 영성생활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에 관한 인식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약성서는 바로 그리스도의 언행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적인 영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구체적인 시대와 장소에서 복음적 영성생활을 해 왔다. 이 때문에 영성사와 영성학파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이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이 신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강생의 신비’, 즉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신비와 ‘구속의 신비’, 즉 빠스카의 신비이다. 이 신비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그리스의 신비의 핵심에는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오심도 또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도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신비들은 사랑의 지고한 표현들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이며, 그분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은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는가?

 

최후만찬에서 그리스도는 이웃 사랑을 하느님 사랑과 결부시키신다. 그리고 이웃 사랑을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사랑에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부여하였다. 이웃 사랑은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늘 중심 위치를 차지해왔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을 통해서 표현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신약성서의 영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겠다. “성령 안에서 믿음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귀의함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함이다.”

 

 

3. 그리스철학


3.1 플라톤(Platon, BC 428/7-348/7)

 

플라톤은 자기 스승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지적 회의주의와 윤리적 상대주의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사조는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의 다음 구절 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즉,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플라톤은 이 공리에서 윤리적 방종이 나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모든 철학적인 노력은 바로 이에 대한 치료법을 찾고자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플라톤의 체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즉 옳은 행위 -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 는 인식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덕은 인식이며 악은 무지이다. 그러나 인식은 감각-지각도 아니며, 설명할 수 있는 옳은 견해조차도 아니다. 인식의 근원은 변하는 ‘현실의 세계’일 수 없고 불변하는 ‘그것 자체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데아의 세계’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다워지는 길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은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고, 그 때는 이데아들을 직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있다. 따라서 영혼이 현실의 세계에서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 눈앞에 있는 그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을 통해서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그 사물 자체’(사물의 참된 모습, 원형)를 상기하는 것이다.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될 때, 비로소 ‘사물 그 자체’(이데아)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철학자는 영혼을 육체에서 해방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2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지만, 자기 스승의 이데아론을 비판한다. 그는 인식의 영역을 보이지 않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정신의 대상들에 국한시키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또 다른 면에서 그는 스승과 다르다. 플라톤은 인식의 추구를 선한 삶을 사는 것에 종속시켰고, 철학자는 자기 동료 시민들의 선익을 위해 동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윤리적인 삶은 본질적으로 관상생활(bios theor?tikos)에 종속되며, 관상생활을 위한 하나의 준비이다.

 

삶은 윤리적 덕행의 생활과 관상생활, 이 두 차원(단계)으로 존재한다. 관상생활(형이상학은 자연학(존재론 ontologia)과 신학(theolgia)에 대한 연구를 뜻한다. 관상생활은 참으로 축복받은 삶이며, 우리를 하느님처럼 변화시켜 준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자기-관상에 종사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최고선, 즉 인간의 행복은 진리를 관상하는 것이다.

 

3.3 스토아학파

 

‘스토이즘’(stoicism)이란 말은 그리스어 ‘스토아’(stoa) 혹은 아테네에서 철학자 제노(Zeno, BC 336-264)가 제자들에게 강의한 회당의 복도 porch에서 유래한다. 감각과 이성을 구분한 플라톤이 이원론자였던 것과는 달리 제노와 그의 동료들은 모두 유물론적 일원론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영향을 미친 것은 그들의 형이상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윤리적 가르침을 통해서이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며 이것은 ‘자연에 따른 삶’을 통해서 성취될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지 수용할 것을 요구하며, 우리 능력과 우리의 도덕적 선택에 달려있는 욕정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필요로 한다.

 

욕정의 억제(apatheia)는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수단으로 간주된다. 그들의 가르침에서는 도덕적 의지가 행위보다 더 중요하다. 필로스와 알렉산드리아의 끌레멘스는 ‘아파테이아’가 삶의 궁극적 목표인 관상의 획득에 있어 필요한 단계라고 믿었다.

 

3.4 필로스(Philos, BC 20-AD 41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이었던 필로스는 기원전 20년에 태어나 기원후 41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가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는 모른다. 필로스는 최초로 성서를 우의적으로 해석한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영향력은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자들, 끌레멘스, 오리게네스에게 미쳤으며, 이들을 통해 닛사의 그레고리오에게 전달되었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팔레스티나의 체사레아로 이전할 때 필로스의 전 작품집을 가져갔다. 따라서 필로스는 희랍 철학과 문화의 전달을 위한, 그리고 성서 해석 전통의 전달을 위한 주된 전달 통로였다. 필로스는 주석학과 신학, 교부들의 영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당시에 ‘관상생활’(bios theoretikos)이라고 일컬어졌던 철학적이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랍비로서 활동을 전개했던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의 수많은 작품들로부터는 그의 생애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그는 주요 희랍 저술가들을 인용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매우 수준 높은 고전 희랍 교육을 받았지만, 유대 신앙에 충실히 남아있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주석과 관련된 것이며, 이 때문에 주석사 안에 많은 해석의 모델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러한 모델들은 교부적 수도승적 주석 전통 안에서 발견되는데, 예를 들어 야곱을 ‘금욕가’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과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관상생활’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 등이다.

 

필로스를 통하여 희랍 철학의 많은 철학적 개념들과 용어들이 그리스도교 수도승 문화 안으로 들어왔다. 예를 들면, 아스케시스(askesis)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필로스는 이 용어의 유일한 전달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필로스의 중요성은 그가 철학적인 열쇠로 성서 주석의 한 예를 제시하면서 성서를 주석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리이스 로마 시대에 철학의 근본적인 측면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전 삶을 변형시키기 위한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하나의 존재 양식이라는 점이다. 철학은 구체적인 삶의 양식으로써 근본적인 회개와 변형을 요구하는 영적 진보의 한 방법이었다. 무엇보다도 철학은 고뇌를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치료법으로 제시되었다.

 

필로스가 그리고 있는 영적 이상은 스토아주의와 플라톤주의의 혼합이다. 즉 활동 혹은 수행생활과 관상생활의 혼합이다. 수행생활의 본질은「Quod Omnis Probus Liber Sit」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그는 꿈란 공동체와 동일시되는 사해 연안의 에세네 공동체를 설명하고 있다. 에세네의 주된 목표는 내적 자유였는데, 이는 욕정들을 극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었다. 필로스의 영적 이상의 두 번째 부분은「De Vita Contemplativa」(관상생활)에서 묘사된다. 만약 에세네의 분위기가 스토아적이었다면, 이집트인 공동체 테라페우테(Therapeutae 치유자들)의 분위기는 플라톤적이다. 그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자존자(自存者)에 대한 경배이다.

 

3.5 플로티노스(Plotinos, 205-270)

 

플로티노스는 205년경 이집트에서 출생하여 244년에 로마로 가서 학원을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쳤고 270년에 이탈리아 북부 깜빠니아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가장 탁월한 제자들 중 하나였던 포르피리오스(Porphyrios, 232-304)가 그의 전기를 썼다. 포르피리오스에 의하면 플로티노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암모니오스 삭카스(Ammonios Sakkas, +243)였는데, 그는 오리게네스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포르피리오스는 플로티노스가 죽은 후 그의 글들에 제목을 붙여 아홉 편의 글들을 한 권으로 묶어서 모두 여섯 권으로 된 전집으로 출판하였다. 동방에서 이교 철학자들에게 끼친 그의 영향은 대단했다. 프로클로스(Proklos, 412-485)를 통해서 플로티노스의 신비체험은 그리스도교 영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서방에서는 주로 그리스도교의 영향에 의해서 플로티노스의 사상은 처음부터 확산되었다.

 

마리우스 빅토리누스(Marius Victorinus, 300-380)가 플로티노스 전집의 일부를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이 번역본들을 통해 성 아우구스티노는 플로티노스의 형이상학을 접하게 되었다. 플로티노스가 아우구스티노의 사상에 끼친 막대한 영향은 특별히 내향(內向)의 중요성에 부여된 그의 강조 안에서 드러난다.

 

플로티노스는 자신이 플라톤의 추종자라고 말한다. 그는 플라톤을 인용하여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권위로 삼는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의 가르침 전체를 무비판적으로 반복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그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영역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플로티노스는 정치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플라톤은 세 가지 존재 원리를 말했지만, 그것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플로티노스는 그것들을 ‘하나’(一者, Hen), ‘정신’(Nous), ‘혼’(Psyche)이라는 하강하는 삼인조로 조직하였다. 더 나아가 플라톤에게 있어 ‘최상의 실재’는 실재의 불변하는 형태들인 이데아들로서 정적으로 이해되었지만, 플로티노스에게 있어 ‘최상의 실재’, 즉 ‘하나’는 형태 없는 무한한 존재로서 간주되었고, 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두 번째 실재인 ‘정신’은 ‘육체가 아닌 생명의 충만’으로서 묘사된다. 플로티노스적 우주의 두 가지 중심 특성은 그것이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1) ‘하강’ 운동(emanatio)

 

그의 체계에서 가장 현저한 요소는 ‘하나’(一者)이다. 이 실재는 한편으론 감각 세계와 형상과 이성의 세계를 모두 초월한다. 그것은 또한 존재를 넘어있다. 또 다른 한편으론 ‘하나’는 그것 밖에 있는 모든 것, 즉 생명, 지성, 운동의 원인이기도하다. 플로티노스는 이런 것들을 정신의 영역에 포함시킨다.

 

‘정신’은 유출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로부터 나오며, 물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물질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정신’으로부터 ‘혼’이 나오는데, ‘혼’은 물질과 결합되어 있어서 물질의 구애를 받는다. 끝으로 ‘혼’으로부터 ‘물질’(Hyle)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플로티노스의 유출설(Emanatismus)이다. 물질은 ‘하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 즉 ‘악한 것’이어서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이처럼 모든 것은 ‘하나’로부터 나와서 ‘하나’에로 되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하강’과 ‘상승’ 운동이 전개된다.

 

2) ‘상승’ 운동

 

‘혼’은 물질에 붙들려 있어서 죄를 짓게 된다. 따라서 먼저 물질을 벗어나서 스스로를 ‘정화’(purificatio)하는데 힘써야 한다. 플로티노스에게 있어 이것은 덕을 닦는 것(修德)을 뜻하며, 이 정화의 과정은 ‘하나’(하느님)와의 유사성에로 이끈다. 그 다음 ‘혼’은 ‘정신’의 ‘조명’(illuminatio)을 받아 정신의 단계로 올라서야 한다. 마지막 단계로 ‘정신’은 모든 것의 근원이요 원천인 ‘하나’와 일치(unino)되어야 한다. 이로써 일체의 것은 완성된다.

 

플로티노스를 통해서 고대 희랍 철학은 하나의 종합된 체계를 갖추게 되고 이로써 완결된다. 플로티노스의 이 사상은 후대에 특히 중세 철학과 신학에 하나의 확고한 틀을 제공해 주었다.

 

3.6 프로클로스(Proklos, 412-485)

 

프로클로스는 아테네의 신플라톤학파에 속했고, 아테네 철학 학교의 교장이었던 시리아노스(Syrianos)의 제자였다. 프로클로스는 아마도 자신의 철학체계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하는 플로티노스적 신플라톤철학의 새로운 요소들을 시리아노스에게서 전해 받았을 것이다.

 

1895년에 J. Stiglmayr가 지적한 것처럼 위(僞)디오니시우스의 작품들이 프로클로스에게서 현저히 영향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그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디오니시우스를 통해서 프로클로스는 전(全) 신비전통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방에서는 증거자 막시무스를 통해서, 그리고 서방에서는 에리우제나(Eriugena), 생 빅톨 학교, 라인지방의 신비가들, 십자가의 성 요한을 통해서 신비전통이 형성되었다.

 

상승과 일치에 대한 핵심 가르침에서는 플로티노스와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프로클로스는 다음 세 가지 중요한 점에서는 다르다. 즉 1) Henads 2) 영혼의 타락 3) 악의 본성과 기원.

 

1) 그는 플로티노스가 단지 ‘하나’, ‘정신’, ‘혼’ 이 세 가지 원리(실재)가 있다고 하면서 이성 세계 안에 보다 완전한 체계를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했다고 불만족스러워했다. 플로티노스 체계의 역동적 측면을 이해하지 못한 그는 플로티노스가 전적으로 초월적인 ‘하나’와 나머지 실재 사이에 놓인 공백을 잇는데 실패했다고 느꼈다. Henads 라고 하는 많은 매개물들로 그 간격을 채우려는 갈망이 있었다.

 

2) 플로티노스는 영혼 전체가 타락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실 그는 많은 능동적 이성 세계가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이 점에서 그는 플라톤 학파의 전통적 견해를 의도적으로 벗어난다. 플로티노스의 이런 새로운 견해를 거슬러 프로클로스 자신은 영혼 전체가 변화하는 시간 세계 속으로 완전히 하강했다고 주장하면서 의식적으로 반응한다.

 

3) 플로티노스는 물질 자체는 본질적으로 악하며, 악은 물질의 부정적인 성격과 물질을 향한 영혼의 움직임이 합해짐으로써 야기된다고 보았다. 하지만, 프로클로스는 물질이 악일 수 있다는 사실과 또 물질이 자존(自存)하는 악과 같은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아무리 나빠도 악은 윤리적인 악이며, 보다 높은 선에서 멀어짐으로써 생겨난다고 보았다. 프로클로스의 이 견해는 확실히 두 번째 가르침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결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 쪽에서의 참된 하강 운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로클로스는 최종 산물로서 일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최종 산물은 ‘신화’(神化 deificatio)로서 묘사된다. 그 이전의 플로티노스와 이후의 디오니시우스와 같이 이 목표를 향한 나아감은 일련의 물러남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먼저 시민 사회로부터, 그 다음 감각의 폭군으로부터의 물러남을 통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향(內向)과 자아인식의 과정을 통한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인식에로 나아감이다.

 

철학을 통해서 이 물러남과 상승의 여정이 이루어진다. 철학은 바로 이를 위해 선택된 수단이다. 더 나아가 영혼은 자신을 정화하면 할수록 자기가 갈망하는 대상과 더욱 더 닮게 된다. 프로클로스는 ‘정신의 개화’를 통한 현시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영혼의 완전한 하강과 그 존재의 근원으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을 믿는 것처럼 보인다.

 

 

4. 지혜문학

 

‘지혜서들’이란 명칭은 전통적으로 구약성서의 욥기, 시편, 잠언, 집회서, 아가, 지혜서, 전도서를 일컫는 말이다. 지혜문학은 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관련하여 현자의 격언들을 수집해 놓은 것들이다. 이 수집물들의 비체계적인 유래는 특히 잠언서와 집회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거기서는 한 격언과 다음 격언을 이어주는 연결어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잠언서와 집회서가 전통적인 윤리 속담들과 격언들인 반면, 속화된 우주를 억지로 받아들이는데 있어 실재에 대한 전도서의 태도는 에피쿠루스(Epicurus)의 작품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지혜서는 플라톤적이자 스토아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에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지혜 1,9-10) 이 구절은 틀림없이 윤리적인 정화와 영혼과 육신의 구분 모두를 암시하고 있다.

 

영혼과 육신에 대한 유사한 태도가 지혜서 제9장에서도 함축되어 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지혜 9,38-39) 7장 37절부터는 지혜의 열매들이 열거된다. 즉, 만물에 관한 어김없는 지식, 세계의 구조와 그 요소들의 활동에 대한 지식 등이다. 이러한 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관상생활에 약속된 열매들과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교 영성사에서 지혜문학의 항구한 위치는 지혜서의 절정인 7-9장에서 밝혀지는데, 곧 신적 지혜와 인간적 지혜의 유사성과 관련한 가르침과 더불어서 이다. 이는 솔로몬이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바와 같다. “당신 어좌에 자리를 같이한 지혜를 저에게 주시고...제 곁에서 고생을 함께 나누게 하시고...제가 일을 할 때에 저를 지혜롭게 이끌고.”(지혜 9,7-26)

 

 

5. 영지주의

 

영지주의가 후에 그리스도교에 스며든 그리스도교 이전의 운동인지 아니면 원래 그리스도교적 현상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리고 영지주의를 동방 유대교의 학설로서 간주해야 하는지 아니면 ‘복음의 심각한 희랍화’로서 간주해야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역사적으로 신약성서 형성기 동안에 이미 위험을 드러낸 이교적 영지주의에 대해서 언급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몇몇 양상들을 특징짓는 그리스도교 영지는 오로지 2세기 말에서 3세기에 번성하게 된다.

 

요나스(H. Jonas)는 하나의 ‘영지주의적 현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영지주의 사상의 주요 특성을 하느님과 세상의 관계를 다루는데 있어 근본적인 이원론으로 보고 있다. 즉 ‘세상은 열등한 작품이며 인생의 목적은 주어진 계시를 통해서 세상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본질적으로 이 세상에 대한 철저한 거부에 있다.

 

물질계, 육체, 성, 역사, 윤리에 집착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림(parousia)이 무시되고 그리스도의 생애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영지주의의 핵심 메시지는 동방 그리스도교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떤 요소들은 덜 적대적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즉, 위로부터의 호소, 깨어나 자기 실재(잊혀진 자아)를 발견하라는 초대, 자아와 하느님께 돌아섬과 환상의 세계와 육체로부터의 이탈, 악은 무지이고 인식으로 파괴되어야 한다는 신념, 통교 등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1,25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