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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현대문화 트렌드: 유비쿼터스 시대의 빛과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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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6 ㅣ No.338

현대문화 트렌드 - 유비쿼터스 시대의 빛과 그늘!

 

 

과학기술 지상주의가 빚어낸 물질문명은 이제 정보통신혁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전자사회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보통신혁명은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편리성을 제공해 주는 문명의 이기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통신혁명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전자사회가 마냥 장밋빛 유토피아인 것만은 아니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인공지능과 첨단 로봇에 밀려 생산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인터넷 공간은 음란물과 각종 일탈적 행동으로 날로 혼탁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은 이제 컴퓨터와 휴대전화 없이는 온전히 유지되기 힘들 정도로 기계 의존적 삶으로 변해가고 있다. 오늘날 어떤 경우에 과학기술은 인간 삶의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비인간화 사회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혁명은 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향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해 나갈 기세이다. 그것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정보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더욱 고도화된 유비쿼터스 시대를 의미한다. 

 

우리말로 “편재한다”는 뜻 정도로 해석되는 유비쿼터스(Ubiquitus)란 말 그대로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금 책상 위에 놓여있는 컴퓨터는 박물관 진열장 안으로 사라지고, 생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기기와 물품이 컴퓨터와 인터넷의 기능을 수행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인터넷 혁명이 현실 세계를 컴퓨터 네트워크 속으로 집어넣는 과정이었다면 유비쿼터스 혁명은 반대로 컴퓨터 네트워크를 현실 세계의 구석구석에 집어넣는 과정이라고 비유할 수 있겠다. 곧 인터넷 혁명이 사이버 공간을 창출해 냈다면, 유비쿼터스 혁명은 사이버 공간을 컴퓨터 안이 아닌 현실 세계에 구현한다. 따라서 유비쿼터스 혁명은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라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경계 자체를 허물어뜨리고 현실 세계의 네트워크화, 현실 세계의 사이버화를 구현한다. 장자(莊子)가 말했던,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걸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인간인 나로 변해있는 것일까?”라는 호접몽(胡蝶夢)의 세계가 마침내 실현되는 것이다.

 

 

유비쿼터스의 실례

 

그렇다면 유비쿼터스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가? 이를테면 냉장고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전통적인 기능에 더하여 스스로 인터넷 쇼핑몰에 식품을 원격주문하는 인터넷 냉장고로 탈바꿈한다. 가스 오븐은 요리 사이트에 접속하여 정보를 다운로드해서 스스로 음식을 조리한다. 화장실 변기는 소변 성분을 분석하여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의료 사이트로 보내주어 건강진단 기능을 하게 되며, 욕실의 욕조도 그 사람의 신체 상태에 가장 적절한 성분과 온도를 함유한 물을 자동으로 받아주게 된다. 

 

또 전동 칫솔은 치아 상태를 점검하여 자신의 주치의에게 정보를 전송해 주는 단말기 역할을 한다. 또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지불하느라 자동차가 길게 늘어설 필요도 없어진다. 센서가 자동차 번호판을 판독하여 휴대전화 요금으로 통행료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생활용품 속에 컴퓨터 칩을 집어넣어 인터넷으로 연결시키려는 실험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유비쿼터스는 가사 노동의 경감이나 건강관리, 교통체증 해소 등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을 얻는 대가로 우리는 다른 중요한 것을 잃게 될 것이다.

 

 

프라이버시가 사라진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프라이버시가 사라지고 철저한 전자감시가 이루어지는 빅브라더의 세계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일단 유비쿼터스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유비쿼터스 시스템은 다음 두 가지의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된다. 하나는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 무선주파수 인증)라 불리는 전자추적표이며, 다른 하나는 온라인의 주소라 할 수 있는 IP Address 체계를 IPv6로 전환하는 일이다.

 

먼저 RFID는 사물에 장착하는 0.3mm 크기의 미세한 전자 칩인데, 스스로 자기장을 발생시켜 자신의 정보를 외부로 송출시키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RFID가 사물에 장착되면 그 사물을 제3자가 원거리에서 추적, 식별, 정보 수집을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RFID는 IPv6 체계와 결합되면서 더욱 강력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구현하는 필수 요건 가운데 하나가 우리 생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IP 주소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32비트의 IPv4 주소 체계를 128비트의 IPv6 주소 체계로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졌다. 

 

43억 개의 주소밖에 만들지 못하던 IPv4 체계는 IPv6 체계를 통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주소를 생성할 수 있게 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래알 하나하나에까지도 IP 주소를 할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주소 자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사물에 고유한 IP 주소가 부여된다면 그 때문에 빚어질 프라이버시 문제는 실로 가공할 수준으로 치달을 것이다. 

 

냉장고와 가스 오븐, 화장실의 변기와 욕조, 그리고 전동 칫솔과 자동차 번호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개체마다 RFID가 장착되고 고유한 IP 주소가 부여된다면 모든 행적의 감시와 기록이 용이해지며, 심지어 특정 집안의 재산목록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 냉장고와 인터넷 가스 오븐은 오늘 저녁 당신의 식탁 위에 어떤 음식이 올라왔는지, 그리고 당신의 가족들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속속들이 기록하고 그 정보를 쇼핑 사이트에 제공해 줄 것이다. 인터넷 변기와 인터넷 욕조 그리고 인터넷 전동 칫솔은 당신도 몰랐던 자신의 건강정보를 의료 사이트에 알려주게 될 것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판독기는 통행료만 부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제 어디를 다녀왔는지도 기록해 놓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네트워크가 편재하는 유비쿼터스의 시대는 뒤집어 보면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전자감시 시스템이 편재하는 프라이버시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동하는 인간은 필요없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또 다른 그늘은 인간의 배제와 실업의 위험이 편재하는 사회이다. 일례로 슈퍼마켓의 계산대 풍경을 생각해 보자. 여기서 우리는 과거에 바코드의 도입이 가져온 유통혁명의 전망과 그 결과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코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통혁명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전망되었다. 하나는 생산자 영역에서 상품의 판매량과 재고량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공해 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 영역에서 빠르고 편리한 계산 처리로 쇼핑환경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자 영역에서의 혁명은 이루어졌지만 소비자 영역에서의 혁명은 실현되지 않았다. 바코드의 도입으로 계산대에서 처리 속도가 빨라지자 슈퍼마켓 운영자는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계산원의 숫자를 줄여버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산대 앞에서 소비자들이 줄을 서있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슈퍼마켓에 고용된 계산원들의 실업만 늘어났다. 

 

계산원의 손을 일일이 거쳐야 하는 바코드 대신 RFID가 상품에 장착된다면 계산 시간은 바코드 시절보다 훨씬 획기적으로 단축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줄어든 계산 시간만큼 슈퍼마켓 종업원의 숫자 역시 이에 비례하여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사라지는 종업원들은 유비쿼터스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와 함께 나타날 노동시장의 현실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인간이 배제된 채 사물과 사물의 네트워킹만으로 모든 업무가 처리되는 유비쿼터스 시대는 곧 영화 속에서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그려진 매트릭스의 출현을 예고한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예견되는 문제점들은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정보격차의 심화와 보편적 정보접근권의 침해, 인터넷 중독을 능가할 유비쿼터스 중독, 유비쿼터스 관련 각종 신종 범죄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포와 위험이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다. 빛이 밝으면 그늘도 짙은 법이다. 유비쿼터스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얻는 대가로 우리는 또 다른 소중한 것들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잊지 말아야 한다. 장밋빛 약속 이면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를 해소할 제도적 정책적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기술문명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것은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의 처량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유비쿼터스 시대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를 남겨놓고 있다. 설령 과학기술의 발달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 하더라도 이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현안과 문제점들을 사전에 철저히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다. 인간 중심의 성찰적 정보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그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사목, 2005년 5월호, 민경배(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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