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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 발전적인 통합사목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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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6 ㅣ No.340

발전적인 ‘통합사목’을 기대하며

 

 

‘통합사목(Integral Pastoral)’이 미래 한국교회를 위한 새로운 사목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분명 새로운 복음화를 통한 교회 쇄신과 새로운 교회상 확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산하 평신도위원회와 인간발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1993년 10월 3일에서 11월 3일까지 말레이시아의 페탈링 자야(Petaling Jaya)에서 열린 모임에서 ‘아시아에서 새로운 교회상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아시파’(AsIPA), 곧 ‘아시아의 통합사목적 접근’이라고 부르기로 한 바 있다. 이러한 착안에 근거하여 한국교회의 새로운 교회상 확립을 위한 미래 사목의 대안으로 ‘통합사목’이 제안되고 있다.

 

이 용어의 기원이 어디에 있든 지금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사목의 대안으로 ‘통합사목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중에 ‘통합사목’에 대한 발전적인 의미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에 한국사목연구소는 2005년도 연간 연구과제 가운데 하나로 ‘통합사목모델개발’을 선정하고 ‘통합사목모델연구위원회’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연구위원회는 잠정적으로 ‘통합사목’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통합사목’이란 초대교회의 이상적인 모습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친교와 참여의 교회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사목의 다양한 차원과 분야를 따로따로 나누어 보지 않고 사목의 다양성 가운데 일관성과 조화를 추구하는 통합적 사목 정신과 방법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영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의 통합, 개인 차원과 공동체 차원의 통합, 성직자/수도자/평신도의 협력, 전국/교구/지구/본당/소공동체/가정 차원의 수직적 수평적 관계에서 일치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통합사목’에 대한 한국사목연구소의 이러한 제안들에 근거하여 한국교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통합사목의 우선적 과제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서로 연관된 몇 가지 주제만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동반자 사목

 

오늘날 친교와 참여의 사목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동반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동반자는 다른 사람 옆에서 걸어가지만, 그 사람의 주동적인 역할을 대체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동반자는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변모시키지 않고 그가 주체가 되도록 돕는 사람이다.”1) 

 

‘동반자’라는 이러한 의미를 살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하는 협력관계의 사목을 ‘동반자 사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통합사목에서 지향해야 할 최우선적인 과제 중 하나가 이러한 ‘동반자 사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통합사목에서 강조하는 친교와 참여의 사목이 바로 여기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말마디 중 하나가 “친교”라는 말이다. 공의회는 이러한 친교의 교회를 ‘신비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교회의 각 구성원들이 한 몸의 지체로 신비스럽게 조화를 이루어 신비스럽게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신비체’에 대한 교회 용어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에 적용되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적용되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계기로 이 용어는 성체성사는 물론 교회의 신비로운 친교의 모습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Henri de Lubac). 

 

따라서 우리가 지금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 내용 안에는 성체 안에서의 그리스도 친교와 거기에 따른 성찬의 삶의 내용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교회의 친교의 삶 자체가 성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준다. 그리고 ‘친교(communio)’의 어원을 보면, ‘책임을 함께 다하는 것’ 또는 ‘책임을 나누어 완수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래 ‘친교’는 획일적인 하나의 결합이 아니라, ‘일을 함께 나누어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적인 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함께 나누어 함으로써 신비로운 조화 가운데 신비로운 일치를 이루어낸다는 사목적인 ‘친교와 참여’의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사랑을 본질적인 의미로 하는 ‘친교’가 ‘일을 함께 나누어 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은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일을 함께 나누어 하며 책임을 나누어 완수한다는 것’은 함께 더불어 살고 싶다는 사랑의 간절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반자 사목’이란 하느님 백성의 전체 구성원인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함께 나누어 하며 책임을 나누어 완수하는 사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할 친교와 참여를 통한 ‘교회의 삶’인 동시에 ‘성찬의 삶’이 될 것이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본당은 물론 모든 사목 분야에서 아직도 성직자 주도형의 사목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친교와 참여를 통한 발전적인 통합사목의 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의 사목방향을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참여하여 협력하는 ‘동반자 사목’에 둘 필요가 있다. 사목은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대화하는 사목

 

교회는 세상 위에 군림하거나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 존재하며 세상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에 속하지 않으시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의 신비를 산다. “이렇게 교회는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로서 온 인류와 함께 걸어가 세계와 함께 동일한 지상 운명을 체험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쇄신되고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어야 할 인류 사회의 누룩으로서 마치 그 혼처럼 존재한다”(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 40항).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와 세상의 관계는 결코 적대관계가 아니라 상호관계에서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사목 헌장, 41-45항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세상 안의 교회’로 규정하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세상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복음에서 이끌어낸 빛으로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각 시대에 알맞은 방법으로 인간의 끝없는 물음에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사목 헌장, 3-4항 참조).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회가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면서 세상 안에 존재하면 할수록 시대의 징표를 더 잘 헤아리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끊임없이 ‘세상과 대화하는 사목’을 펼쳐야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당사목이든 특수사목이든 교회의 사목 대상을 신자들에게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 본당이면 본당 관할지역 내의 모든 사람이 사목의 대상이며, 특수사목이면 그 특수사목의 목적에 포함되는 모든 사람이 사목의 대상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목의 폭을 너무나 제한하고 있다. 신자들에게만 치중하고 있다. 사목적인 안목을 넓힐 필요가 있다. 세상의 변화에 섬세하고 예민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세상과 대화하는 사목’으로 새로운 통합사목의 모델을 재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목을 더 효율적으로 펼쳐나가려면, 세상을 생활체험현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세상과 대화하는 사목’이 ‘동반자 사목’의 공동과제로 선택된다면, 교회는 좀 더 효과적으로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소공동체 교회 사목정신의 확장

 

한국 천주교회는 ‘소공동체 교회 사목’을 2000년대의 새로운 복음화의 방법으로 선택해서 발전시키고 있다. 현대세계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속출하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설 자리가 교회 내에서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이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방향’을 촉구했다고 본다. 본당의 비대화는 차선의 이유로 보는 것이 더 마땅할 것이다. 이처럼 ‘소공동체 교회의 사목’은 우선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들의 설 자리를 되찾아줌으로써 교회가 참으로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더욱 효율적으로 나누는 교회가 되는 데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스스로 신앙의 주체로 사는 데 도움을 주고, 일상과 신앙을 하나로 살도록 자극하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들이 모여서 교회 전체가 ‘공동체들의 공동체’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는 아직 미흡하다.

 

소공동체 교회 사목이 한국 천주교회의 쇄신과 새로운 교회상 확립에 기여하는 사목이 되려면 그 정신을 통합사목적인 차원에서 더 넓게 통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소공동체 교회 사목정신이 전체 교회 곳곳에 스며들도록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작은 사람과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데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이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특별히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놀라운 친교를 통해 모든 소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소공동체’가 될 때 교회의 모습은 날로 새로워질 것이다.

 

 

사목의 일관성과 보편성

 

모든 사목계획은 수립, 집행, 평가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음 단계의 사목을 위한 발판이 된다. 사목의 이러한 일관성과 보편성을 유지하려면 일정 기간 동안만 어느 한 곳에 재직할 수밖에 없는 성직자나 수도자들 주도형의 사목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곳에 상주하는 평신도들의 협조와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일정 기간 동안 어느 한 곳의 사목 책임자로 파견된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평신도들의 이러한 참여를 적극적으로 배려하여야 할 것이다. 사목계획의 수립과정에서부터 평가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참여하도록 배려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목 책임을 맡고 일정 기간 동안 파견된 성직자나 수도자는 사목의 연계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의무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통합사목적인 측면에서 지구, 교구, 전국, 세계교회 차원으로 사목의 보편성이 연계되어 확장되어 나갈수록 사목의 효과가 그만큼 더 커질 뿐만 아니라 보편교회의 하느님 나라 가치도 더욱 충만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전체 교회의 어떤 사목방향이나 과제가 가정이나 개인에게까지 연계되어 확장될 때에도 사목의 보편성은 같은 효과와 같은 가치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세계교회 입장에서 사제성소가 부족해 해외 선교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지역교회인 한국교회가 해외선교 사목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도 통합사목적인 측면에서 사목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사목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새 번역 성서 1고린 15,28 참조).

 

1) 세르지오 핀토르, 『사목신학』, 노영찬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1999년, 326-327면.

 

[사목, 2005년 6월호, 권혁주(안동교구장 ·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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