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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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하나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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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7 ㅣ No.590

[현대 교회의 가르침] (32) ‘하나되게 하소서’ (1)


21세기 교회의 주요 과제… ‘교회일치운동’

 

 

배경과 성격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개신교 신자들을 대하는 자세와 불교 신자들을 대하는 자세를 자문해 본다면 어떠한 대답을 얻게 될 것인가? 물론 개인의 경험과 환경마다 다르겠지만, 적지 않은 신자들이 개신교 신자들보다 불교신자들이 대하기 더 편안하다는 의견들을 내놓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단순히 표현하자면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 경쟁과 대립 관계에 놓인 시간이 적지 않았고 천주교와 불교는 사실 직접적으로 대면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식구이면서도 서로 많이 다툰 형제들 보다는 피붙이가 아닌 친구들이 더 편안한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리스도교에도 해당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교회는 단일하게 설립되었고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지만(요한 17,11 참조) 이천 년의 역사 안에서 교회는 분열을 거듭하였고 같은 형제들에게 서로 큰 상처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특히 11세기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 및 16세기 종교개혁을 계기로 한 천주교와 개신교로 나뉘는 서방교회 내부의 분열은 당신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다. 다행스럽게도 20세기 초반에 가톨릭 교회 밖에서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고자 하는 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성령의 움직임으로 파악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를 가톨릭 교회 안에 수용하여 지난 50년 동안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교회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서 교회일치를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제 삼천년기를 앞두고 갈라진 그리스도교의 모습은 예수님의 원의와 교회의 사명에 배치되고 복음화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반목한 형제를 대하는 것보다는 사이좋은 친구들 대하는 것이 더 용이할 수 있으나, 예수님의 오심을 기념하고 다시오심을 기대하는 희년에 집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집안 어른을 모실 수 없다는 것이 교황님의 입장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난점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님은 이 문제를 주제로 삼음으로써 교회일치운동이 갈라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실질적인 화해와 상호이해의 결실을 가져오기를 희망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 5월 25일 반포한 이 짧지 않은 사목적 회칙을 통해서 교회일치운동에 관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1부), 지난 30년간 교회일치운동의 성과를 일별하며(2부),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한다.(3부)

 

 

주요 내용

 

상당히 긴 분량의 회칙을 빠짐없이 요약하는 것은 필자의 부족함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회칙의 이해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아래에서는 회칙에서 교황님이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고유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교회일치운동을 영성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교황님은 일치, 회개, 기도, 양심성찰로서 대화 등의 표현을 통해 그동안 상호 이해와 신학적 대화, 공동의 활동에 중점을 두었던 교회일치운동에 영성적 차원을 강조한다.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일치 개념의 이해이다. 그동안 교회일치라는 단어는 갈라진 그리스도교 교회들 사이의 일치를 우선적으로 의미했는데, 교황님은 일치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이 일치는 단지 개인들의 집합인 사람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가톨릭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친교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 안에 드러나는 것입니다…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일치를 갈망하는 것이고, 그것은 교회를 갈망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계획에 부합하는 은총의 친교를 갈망한다는 것입니다.”(9항) 

 

교회일치의 근본은 하느님과의 일치이고 하느님과의 일치 없이는 교회일치가 있을 수 없다는, 거꾸로 말한다면 교회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과 진정으로 일치하여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근본적인 지적이다. 

 

둘째, 교황님은 회개를 강조한다. 가장 먼저 교황님은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루카 22, 32)의 말씀을 가리키며 교황의 회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모든 이들에게 청한다.(4항) 아울러 일치운동과 관련하여 신앙인들의 회개를 촉구한다. 

 

“그 회개란 곧 형제적 사랑을 심각하게 해치는 배타행위, 용서의 거부, 오만, ‘상대편’을 단죄하는 복음에 어긋나는 고집, 그릇된 편견에서 비롯된 경멸 등에 대한 자각입니다.”(15항)

 

셋째, 교황님은 특별히 교회일치에 있어서 기도의 차원을 강조한다.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하는 기도를 “모든 일치운동의 영혼”이라고 표현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교황님은 신자들에게 갈라진 형제들과의 공동기도를 권유하며 이를 통해 분열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표명한다. 교황님은 자신이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과 함께 기도했던 감동적인 순간들을 상기시키며 이미 교회 안에 정착된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뿐만 아니라 모든 기회에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기도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스도인이 함께 모여 기도하지 않는다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25항)라는 말씀과 “일치 추구의 본질적인 조건인 마음의 회개는 기도에서 우러나오며 그것을 실현으로 이끄는 것 또한 기도입니다”(26항)라는 말씀은 교황님이 기도를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으로 여긴다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기도의 관한 교황님의 이해는 대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도가 교회일치를 위한 쇄신과 일치를 위한 갈망의 ‘영혼’이라고 한다면, 기도는 공의회가 ‘대화’로 규정한 모든 것의 토대이자 기둥입니다.”(28항) 이로부터 네 번째 특징인 대화의 영성적이며 실존적 성격이 드러난다. 여기에서 교황님은 교회일치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대화’가 지녔던 기존의 이해와 다른 새로운 이해를 제시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만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대화는 인간의 자아실현, 곧 개인과 모든 인간 공동체가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서 피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대화’(dia-logos)의 개념에서 인식의 차원이 우선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모든 대화는 보편적이며 실존적인 차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대화는 단순히 사고의 교환만은 아닙니다. 어느 면에서 대화는 언제나 ‘은총의 교환’입니다.”(28항)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화를 상대방과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의사소통으로 여기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황님의 이해에 따르면 대화는 단순히 무엇인가를 안다는 인식의 차원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에서 인간의 자아실현과 관련된다. 개인이면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홀로 자아실현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상대방과 마주하는 대화는 이러한 자아실현 과정에서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선택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을 실현하고 그를 통해 하느님이 베푸시는 은총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러한 대화는 인간 구원에 또한 필수적이다. 

 

“기도와 대화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그러한 대화는 양심성찰이 되어야 하며…‘회개의 대화’…‘구원의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대화는 수평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대화는 우선적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시며 역사의 주님이시고 우리의 화해 자체이신 분을 향하는 수직적 추구여야 합니다.”(33항) 

 

이와 같이 교황님은 대화의 실존적 차원을 강조하며 모든 대화가 하느님과의 대화로부터 비롯된다는 대화의 원천을 지적한다. 

 

영성적인 특징을 강하게 지니는 위의 네 가지 점을 볼 때 교황님은 그동안 진행되었던 교회일치운동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교회일치운동의 궁극적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교회일치운동은 결국 하느님과의 일치를 지향하며 인간 구원에 있어 불가결한 교회와 신앙인들의 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신정훈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후 2001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 연희동본당 부주임을 거쳐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봉직 중이며,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 자문위원과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10월 5일, 신정훈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33)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하나되게 하소서」 (2)


“개신교 신자도 모두 한 형제” 갈등 넘어선 화합 강조

 


새로운 점과 평가

 

이 회칙이 쓰여질 당시 가톨릭 교회 안에서 교회일치운동은 3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중 17년 동안 교황으로 재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서 교황님이 언급하고 있는 일치운동의 성과들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점이 적지 않다. 실제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일치를 이론적으로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주도해 왔다. 

 

교황님이 교회일치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관계에 대한 다음의 표현이 잘 드러내고 있다. 

 

“교회는 두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한다”(54항). 한쪽 폐로만 숨을 쉬는 이는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갈라져 있는 그리스도교 교회는 현재 건강한 상태가 아님을 이 표현은 극명하게 드러낸다. 

 

동방교회와의 일치에 대한 교황님의 적극적인 의지는 동방교회 출신인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선교 1100주년을 맞이하는 1984년을 희년으로 선포하고 서방교회 출신의 베네딕토 성인과 더불어 두 성인을 유럽의 공동 수도성인으로 선포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폴란드 출신의 교황님의 적극적인 활동에 대한 구공산권 지역의 유보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동방교회와의 화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아울러 교황님은 교회를 대표하는 베드로의 직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완전하고 가시적인 친교를 위해서 “새로운 상황에 개방적인 수위권 행사 방식을 찾도록”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의 목자들과 신학자들에게 대화를 제안한다(95-96항). 이는 교회와 종파를 초월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파격적인 제안이다. 

 

교황님의 수위권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당연히 인정되기는 하지만, 동방교회와 성공회와 개신교 측에서는 그 필요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수행 방식을 수용하기를 거부한다. 교황님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수위권 수행방식이 아니라 할지라도 교황직이 하느님 자비에 봉사할 수 있다면, 백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평화로운 풀밭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일치의 첫째 종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연구할 의지를 표명한다. 

 

아쉽게도 이러한 제안은 가톨릭 교회 밖에서나 가톨릭 교회 안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안은 현재의 수위권 행사 방식이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며 수위권의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서 변경 가능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는 점에서 미래의 신학적 토론을 위한 문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이 회칙이 선포될 무렵 교회일치운동은 어느 정도 누적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꾸준히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들과 신학적 대화가 진행되어 왔지만, 타협을 모르는 절대적 진리에 대한 충실성 및 교의를 명확히 제시하라는 요구는 신학적 대화로 하여금 좀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일치운동의 영성적 차원을 강조하고 교회일치운동은 전체 교회의 과제로 재천명하며 모든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 있다.

 

 

한국 상황에 적용 

 

이 회칙이 반포된지 20년이 가까워 오지만 이 회칙은 우리나라 교회가 여전히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교황님의 권고를 적지 않게 담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1965년 최초의 일치기도회가 열린 이후 70년대는 공동번역 성경이 출간되었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공동선을 위한 천주교 개신교 간의 협력은 교회일치운동의 이상에 부합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이 바뀌면서 다시금 한국에서 천주교회와 개신교회는 보다 가까워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를 지내고 있다. 

 

2002년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이 새로이 출발한 이후 올해 ‘한국 그리스도인 신앙과 직제 협의회’가 설립되었다. 예수교 장로회 통합, 기독교 장로회, 감리교, 구세군, 성공회, 정교회, 루터회, 기독교 하나님의 성회, 복음교회 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참여하는 교단들과 천주교에 의해 마련된 이 기구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공동기구로서 한국 교회일치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교회 사목일선에서는 교회일치운동이 그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부 신자들의 관심사 이상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회칙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시대의 징표를 인식하고 일치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일치운동은 신앙의 빛과 사랑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 양심의 의무입니다”(8항),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촉진하는 교회일치운동은 교회의 전통적 활동에 덧붙여진 일종의 ‘부속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치운동은 교회생활과 활동의 근본적인 고유 부분입니다”(20항). 

 

일치운동은 성령의 움직임에 의한 시대의 징표로 드러났다는, 더 이상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라는 교황님의 권위있는 해석을 한국교회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교황님은 또한 교회일치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개신교신자들을 비롯하여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로 인정하라는 호소이다.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도 성경, 참된 경건함,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세례 등이 발견됨을 지적하는 교황님은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안에 이러한 요소들이 발견되고 있는 만큼, 하나인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들 가운데 실질적으로 현존”한다고 단언한다(11항). 이어 “적대감과 갈등을 넘어 모든 당사자가 상대를 동반자로 인정”하라고 호소한다(29항). 

 

일치운동에는 여러 가지 과제와 단계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이다. 개신교 신자도 그리스도인이고 천주교 신자도 그리스도인이다.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거리감을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찾으려 애쓰기 전에 그들과 천주교인들은 모두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났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같은 제자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선종하신 교황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시는 가르침이다. 

 

회칙의 본문은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편, 교회일치 문헌 1권, 43-137쪽에 실려 있다. 또한 주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cbck.or.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10월 12일, 신정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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