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재미있는 신앙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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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나눔’] 재미있는 신앙생활
예전에 사목하던 본당에는 ‘우정의 모임’이란 이름을 가진 모임이 있었습니다. 모임의 이름은 당시 인기를 끌던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서 따온 것입니다. 둘 사이의 공통점을 찾자면 순전히 남자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정의 모임’은 본당 내 8개 지역단체로 구성된 남성 세대주들의 모임의 이름이었습니다.
이 모임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남자 교우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성 교우들은 성당 안팎에서 서로 만나고 사귈 기회가 많지만 남자 교우들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물론 본당 내 단체가 여럿 있지만 여간한 결심과 각오가 아니고는 활동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매주 회합시간에 맞춰 출석하고 정해진 규칙과 활동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어떤 자매님이 오셔서 걱정스런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부님! 우리 남편이 레지오 회합은 가는데 주일미사에는 잘 참여하지 않으니 어쩌죠?” 평일 단체회합은 참석하는데 신자의 가장 큰 의무인 주일미사는 궐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의 본당 내 남성 레지오 회합은 대개 1차로 끝나지 않고 2차, 3차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회합이 끝나고 나면 그냥 집에 가기가 아쉬워 주회(酒會)로 이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며 자매님께 “그래도 레지오 나오는 것도 어디입니까? 그냥 두시면 언젠가는 성당 미사에도 열심히 나오시겠죠…?”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일이 재미가 없으면 어렵고, 어려운 일이라도 재미가 있으면 즐겁기 마련입니다.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어떻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에 재미를 붙이든, 강론 듣는 것에 재미를 느끼든, 친구를 만나는 것이 재미가 있든지 해야 성당에 계속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형제님은 미사보다는 레지오 회합이 더 재미있었을 것입니다.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어떻든 재미가 있어야
당시 이 본당에는 만남의 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친교와 사귐에 보탬이 되고자 생각한 것이 각 지역별 ‘우정의 모임’이었던 것입니다. 본당이 생긴 이래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사실 형제님들을 모으고 만날 엄두가 잘 나질 않았습니다. 남자 형제님들은 늘 입버릇처럼 “지금은 시간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있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어떻게든 시작을 하면 이루어지겠지 하는 마음에서 용기를 내어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각 모임별로 한국 103위 순교성인의 이름을 따서 ‘대건 안드레아회’, ‘하상 바오로회’ 등으로 이름을 붙이고 임원도 구성했습니다. 정식 프로그램으로 마지막에 적당히 소주잔을 기울이는 시간도 만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프로그램에 거부반응(?)은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첫모임은 미사를 각 지역에서 지내고 임원들을 임명키로 했습니다.
지역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본당에서 가장 먼 벽제지역으로 미사를 드리러 나갔을 때였습니다. 깜깜한 밤, 비포장 길을 달려 봉사자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큰 비닐하우스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삼십여 평 남짓 되는 비닐하우스 안에 신자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늦은 시각, 불편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저 뒤편에서 운동복 차림의 형제님 한 분이 내내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습니다. 자꾸 사람들의 시선이 그 형제에게 머물렀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간단한 음식을 나누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차례가 되자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근처에 사는 사람입니다. 신자임에 불구하고 바쁘게 살면서 성당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돈도 벌고,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성당을 찾기는 어렵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형제분이 찾아와, 오늘 이 지역에서 미사가 있으니 나오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대답했는데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나를 찾아와서 꼭 미사에 와달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오늘 미사에 참석할 마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처 친구 집에서 한잔하려고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 매일 찾아오던 그 형제님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내가 무엇인데 그토록 정성을 쏟아주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미사에 참석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이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운동복 차림이라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뒤늦게 미사에 참석해서 몇 십 년 만에 성가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앞을 가려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젠 정말 열심히 성당에 나오겠습니다.” 신자들은 모두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고, 환하게 웃던 그 형제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재미 중의 큰 재미는 사람 만나는 재미
성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오늘 그 형제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것, 사람들이 서로 기쁘게 만나 미사를 봉헌한 것 등, 이런 일보다 우리에게 더 큰 재미가 있을까? 신앙을 가진 사람들만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재미, 너무 재미있어서 그저 눈물이 흐르고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감사의 정과 함께 사는 맛을 느끼게 하는 재미, 그런 재미가 정말 사는 재미가 아닐까?
신앙생활도 좀 더 재미를 느끼면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재미 중의 큰 재미는 사람 만나는 재미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보면 서로를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을 느끼고 나누게 됩니다.
특히 믿는 이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 교회는 진정한 친교와 사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과 주님을 사귀고, 알고, 섬기는 그런 공동체 말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레지오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재미있는 신앙생활을 만들어 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6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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