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영혼, 정말 있을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5 ㅣ No.462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361) 영혼, 정말 있을까? (1)

 

 

문 : 어린 시절 영세했지만 제 친구들은 무신론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선지 사석에서 친구들이 저를 놀리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영혼을 봤니?’ ‘영혼이 있기나 해?’와 같은 말들이지요. 사실 저는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녔기에 교리도 잘 모르고 믿음도 약한 편이라서 친구들의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혹스럽습니다. 

 

의대에 다니는 친구는 인간의 감정은 모두 뇌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고, 영혼은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데다, 어떤 면에선 종교가 없는 영혼을 있는 것처럼 가르쳐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종교에 귀의하게 하는 영업행위를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반박하기에는 제가 영혼에 대한 체험이 없어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답 : 영혼은 눈에 보이는 실재가 아니고, 현대의학이 입증한 대로 인간의 모든 감정은 뇌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형제님이 한가지 생각할 것은 만약 인간의 마음이 오직 뇌의 기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한다면, 그래서 약물로 사람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더는 종교가 필요치 않다고 여긴다면 그런 생각은 인간을 ‘기계적인 존재’로 보는 위험한 발상을 낳을 수 있습니다. 즉, 뇌 기능이 멈추면 인간은 생명 없는 고철 덩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대로라면 생명을 잃은 인간은 애도니 장례 미사니 하는 헛고생을 하지 말고 그냥 다른 기계들처럼 재활용센터로 보내 쓸만한 부품을 골라내는 대상물이 돼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은 사람의 심성을 기계적 심성으로 오염시키고 우수한 종자만을 키운다는 히틀러의 관점으로 쏠리게 할 위험성이 큽니다. 게다가 인간을 좁은 시야로 보게 하는 위험이 다분하기에 하나의 견해로만 받아들여야지 전폭적으로 수용한다면 자칫 본인이 인간답지 못한 사고방식을 가진 기계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할 일입니다. 

 

그리고 옛 신앙인들이 ‘영혼의 구원’을 강조한 것은 그분들의 영적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지 허무맹랑하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즉, 신앙인은 일반인이 하지 못하는 영적 체험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체험 안에서 신앙인들은 신의 현존, 성령의 이끄심, 기도의 소통, 영적인 변화 등을 깊이 체험하고 영혼의 존재성에 대한 깊은 의미를 체득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영혼의 실재성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영혼은 마음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었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영혼의 구원 같은 느낌이 없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8월 중순 때아닌 몸 안의 염증으로 수술을 받게 됐고, 생각지도 않게 감염 재발로 인해 40일 이상 항생제와 약물로 버티며 아주 힘겹게 더운 여름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기도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 밤이 되면 후들거리는 몸을 기도 방으로 끌고 가서 감실 앞에 엎드려 간절하게 치유의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끈을 잡고 매달린 것인데 그런 불안한 마음이 극으로 달릴 때 성령께서 저에게 너무나 큰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너무나 선명하게 제가 살아온 과거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지은 수많은 죄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께서 제 영혼의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영혼에 암 덩어리가 들어찬 흉하고 볼썽사납게 병에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제 영혼의 실체를 마주한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사람의 영혼과 마음은 영역이 다른 것이고 우리가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은 영혼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구나. 진정 중요한 것은 영혼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신ㆍ구약의 모든 말씀과 교회 가르침의 의미가 확연히 보이더군요. [평화신문, 2016년 10월 16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362) 영혼, 정말 있을까? (2) 영혼과 마음은 같은 것인가

 

 

문 : 교리를 배우면서 영혼과 마음은 같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같은 것이라고 하는 분도 있고 다르다는 분들도 계시는데 어떤 것이 맞는지요?

 

 

답 : 흔히 마음과 영혼은 같은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영혼과 마음은 다른 것입니다. 마음은 오히려 몸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몸의 건강을 위해 기분을 좋게 하고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친구들과 자주 만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건강 유지 방법은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마음 역시 우울증이나 불안증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분 전환과 긍정적 마인드 등의 처방을 받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약물처방을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마음은 몸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학계에도 심신 의학 분야가 생긴 것이지요.

 

특히 근래에 명상요법 등의 방법들로 마음의 평화와 몸의 건강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났고, 적지 않은 종교인들이 명상에서 신앙생활의 길을 찾고자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마음과 영혼은 그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영성 신학을 공부하신 분들도 같은 말씀을 하시는 바, 마음과 몸은 행복감과 평안함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영혼은 정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마음이 병든 것과 영혼이 병든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울ㆍ불안ㆍ분노 같은 불편한 감정이 지나쳐 마음이 심리적인 균형을 상실하게 되면 이를 치료하는 심리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상처와 콤플렉스 등 성장 과정에서 얻은 심리적 문제들을 상담가와 깊은 대화를 하며 치유하게 하는 것이지요. 인지치료와 분석치료가 거기에 해당하는 치료법입니다. 

 

영혼의 병은 마음이 병든 것과는 근본 원인이 다릅니다. 영혼의 병은 ‘죄’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앙관은 특히 구약 시편에서 적나라하게 표현됩니다. 

 

“악한 자는 망하게 마련이요, 야훼를 기다리는 자 땅을 물려받으리라. 조금만 기다려라, 악인은 망할 것이다. 아무리 그 있던 자리를 찾아도 그는 이미 없으리라. … 악한 무리 칼을 빼 들고 활을 당기지만 제 칼에 염통이 터지고 활은 부러지리라”(시편 37,9-15 참조).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영혼이 서서히 오염되고 나중엔 영혼의 암에 걸리는 비참한 결과까지 이르게 됩니다. 죄가 사람을 영혼의 암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영혼이 암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이 병든 줄 모릅니다. 몸은 암에 걸리면 통증이 나타나고 마음도 병에 걸리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을 보입니다. 영혼은 암에 걸려도 일반적인 병적 증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몸이 건강하고 기분도 좋은 사람 중에서 영혼이 말기 암에 걸린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해 가진 것도 많고 이룬 것도 많은 사람과 스스로 백수를 누리겠노라 호언장담하는 사람 중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갑질하는 사람들, 크고 작은 거짓과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영혼이 이미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오염되고 영혼의 암 덩어리가 커졌음을 봅니다. 영혼이 암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마치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 양 착각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미 그 영혼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병든 상태라는 것이 대다수의 영성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은 명상이나 심리치료 차원이 아닌, 주님 앞에서 깊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밖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즉, 십자가 앞에 엎드려 1시간은 자신을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영혼의 암을 치유해 주시길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23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363) 영혼, 정말 있을까? (3) 영혼의 병은 어떻게 치유하나

 

 

문 : 신부님께서는 영혼도 병에 걸리고 심지어 암에 걸린다셨는데 심리적인 병과 영혼의 병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요?

 

 

답 : 말씀드린 대로 ‘영혼의 병’과 ‘심리적인 병’은 원인이 다릅니다. 심리적인 병은 대개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 콤플렉스가 주원인입니다. 따라서 상담자와 대화를 통해 대부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응어리진 것들을 해소하면서 상처가 아물게 됩니다. 심리적인 병에 걸린 분에겐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모두 동원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병은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영혼의 병은 죄에서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허약한 존재이기에 하루라도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살면 안 됩니다. 매일 좋지 않은 습관을 들이면 나중엔 돌이킬 수 없듯, 죄도 그렇습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며 스스로 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할 때 자기도 모르게 죄에 중독됩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법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매일 자신의 하루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빛으로 하루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죄를 끊어버릴 결심을 해야 합니다. 세례식 기도문에는 ‘죄를 끊어버립니까’ 하는 물음이 나옵니다. 이 물음은 인간의 영혼에 있어 아주 중요한 물음입니다. 때로 심리 치료적 관점에서 죄와 악습에 대해 관대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 명확한 식별이 필요합니다.

 

자기 마음의 편안함을 위해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은 일시적인 치유는 될지 모르지만, 습관이 될 경우 죄의 중독성에 빠질 위험이 큽니다. 죄에 중독된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자와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한 잔 마시던 것이 점차 술에 의존하는 습관이 강해지고, 나중엔 술을 안 마시면 심한 심리ㆍ신체적 고통을 겪는 중독자가 돼버립니다. 이런 중독자들이 술을 끊으려면 몸에 밴 술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는 단호하고 엄격한 수도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의 중독은 알코올 중독보다 더 심각합니다. 술은 외부적으로 드러난 것이고 많이 마시면 좋지 않다는 보편적인 인식이라도 갖고 있기에 절제할 가능성이 높지만, 죄의 중독은 그런 징후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공부 잘해 출세만 하면 다른 것들은 모두 용서받는 비인간적이고 기형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는 심리적으로 기형적인 인간들이 양육됩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기득권자가 되면 아무도 그에 대해 영성적인 진단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오히려 죄에 중독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 사회에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제도 문제가 아니라 영혼이 암에 걸린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탓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심각한 영혼의 문제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해 왔고, 이를 예방하는 가르침을 전해 왔습니다. 죄에 중독된 사람들, 죄를 짓고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술을 끊듯이 죄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현대 문명은 사람들에게 정신과 육체의 편안함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말하는 속죄와 회개 등의 용어는 특정한 사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비아냥거리는 풍조도 만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암에 걸리면 개인 구원뿐 아니라 사회도 점점 정신적으로 오염돼 가고 크고 작은 범죄도 끊이지 않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묻지마 살인과 성폭행, 권력층의 부정부패, 전쟁에 대한 광신적 분위기 등은 모두 영혼이 암에 걸린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사람들 영혼이 건강해져야 합니다. 영혼의 건강은 기도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6년 10월 30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364) 영혼, 정말 있을까? (4) 양심적인 삶은

 

 

문 : 남편은 아주 고집 센 사람입니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예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성당에 나가자고 했더니 자기는 양심을 어기고 산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성당에서 신자들을 죄인 취급하는 꼴이 보기 싫어 절대 안 가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요?

 

 

답 : 사실 자매님의 남편 같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직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여간해선 종교를 가지려 하질 않습니다. 심지어 “성당에 가면 돈이 나오느냐 밥이 나오느냐” “돈 벌어다 주는 남편을 하느님처럼 섬겨라”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호언장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법을 어기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분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요. 그런데 양심이라는 것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합니다. 즉, 어떤 사람에게 양심적인 행위가 다른 사람에겐 파렴치한 행위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주관적인 경향이 강하고 때론 본인의 콤플렉스가 양심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도 하기에 자기 양심에 대해 지나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자가당착적인 행위를 범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양심보다는 회개하는 마음, 자신의 죄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더 중요시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보았을 경우 심하게 억울해 하고 분노에 사무치고 다른 사람들을 쉽사리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억지 용서를 하다 화병에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 스스로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다며 부끄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오히려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용서받은 대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화해의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많다는 옛 말씀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교회는 회개하는 기간인 ‘사순 시기’를 정해놓고 자기 영혼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죄인 의식, 우리가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아주 큰 용서를 받고 살아온 존재라는 깨우침은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갖게 하는 아주 중요한 신앙인들의 과제입니다. 

 

그런데 남편분이 지적한 대로 지나친 죄의식은 심리적인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하니 주의해야 합니다. 죄인 의식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속죄하고 싶은 마음, 과거의 허물을 벗고 새롭게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죄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주눅이 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용서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어떤 곳이건 어떤 일이건 기꺼운 마음으로 하고자 합니다. 부끄러움이 오히려 하느님과 삶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 병적인 죄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어두운 감방에 처넣고 자기 고문 게임을 하게 합니다. 마음 안의 포악한 재판관이 영혼을 혹독하게 다루고 ‘하느님께서 절대 너 같은 죄인을 구원하실 리가 없다’고 공갈을 해대서 구원 불안증과 종교적 우울증에 시달리게 합니다. 이런 분은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더 기도하면서도 마음의 평안함을 갖지 못해 하느님을 잔혹한 재판관처럼 여기는 망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영적인 식별을 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사람은 영혼과 마음과 몸의 삼위일체성으로 구성된 존재입니다. 이 세 가지 삶의 요소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남편분은 사회적으로는 흠 없는 분일지 몰라도 영혼의 건강에 대해선 염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성당에 데려오는 것은 별 의미가 없고, 사람마다 때가 있으니 조급하게 마음먹지 마시고, 자매님께서 우선 신앙생활을 통해 행복감과 믿음을 키우길 바랍니다. 

 

※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평화신문, 2016년 11월 6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45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