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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개인지도로 진행되는 영신수련 피정의 일반적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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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115

개인지도로 진행되는 영신수련 피정의 일반적 개요

 

 

새삼 영적지도에 대한 관심과 필요가 수도자들 사이에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영적식별’ 혹은 ‘영성지도자교육’이라는 제목으로 강좌들이 개설되어 많은 이의 호기심을 사로잡지만, 강좌 그 자체가 이러한 관심과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 신학적 지식 혹은 “이럴 땐 이렇게 한다”는 식의 방법적 도식은 하느님을 어떤 방법에 의해 체험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주장을 펴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솔직해야 한다. 타인의 영혼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활동을 감지할 수 있는 영적 감수성은 오직 기도하는 영혼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은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영적지도의 일반론을 전개하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지도 피정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지도자와 피정자 사이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이와 연관된 몇 가지 요소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영적지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밝혀 보겠다.

 

 

관계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에 따라 진행되는 피정, 특별히 개인지도로 진행되는 피정에서는 먼저 피정자와 지도자가 어떠한 양상의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하느님께서는 관계 안에서 관계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 개인지도 피정의 일차적 교훈이다. 이러한 점은 강론으로 진행되는 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단체로 함께 모여 피정 강론을 듣고 나름대로 기도하고 묵상하며 성찰하지만, 많은 시간이 면담을 위해 할애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느님께서 관계를 통해 그 안에서 일하신다는 확신은 이 관계가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반영하는 성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신학적 인식에 바탕을 둔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피정자와의 관계가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가 되도록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와 존경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비로소 피정자는 마음 속에 간직한 소망들 뿐 아니라, 여러 걱정거리와 두려움들을 지도자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게 된다. 신뢰의 분위기는 지도자와 피정자 모두 서로 기도하며 애쓸 때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은혜이다. 

 

불신의 문제는 단지 피정자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오히려 지도자의 태도나 자질로부터 파생되는 문제가 더 골이 깊을 수 있다. 그 누구도 신뢰를 강요할 수는 없다. 상대가 나를 신뢰하고 개방해야 한다고 요구할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신뢰하고 자신을 안심하고 개방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이 애써 노력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구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가끔 수도회의 장상이나 양성담당자들 혹은 피정지도자들이 자신의 책임 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꾸짖거나, 또 때로는 어떻게 하면 그들이 더 잘 자신을 개방할 수 있는지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문의를 받는 때가 있다. 신뢰가 요구되고 지나쳐서 권위에 의해 강요된다면, 그것은 영적으로 행사하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기보다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패한 지도자 자신에게 문제가 더 많을 수 있다. 나 자신도 신뢰와 개방이 강요되고, 덫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변명했어야 하는 상황들을 여러 번 겪었지만, 그런 때는 늘 강도를 당한 기분이었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마음의 비밀을 강탈해서는 안되며, 마음의 비밀을 나누는 것은 자신을 선물로 나누는 행위로서 오직 자유스럽고 신뢰하는 분위기에서만 이루어진다.

 

 

지도자의 역할

 

“모든 것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는 간단하지만 심오한 진리는 지도자가 피정자를 어떻게 사랑하고 대해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사랑하는 마음 앞에서는 모든 문젯거리가 일시에 그 문제성을 상실한다. 피정자에 대한 사랑과 정성어린 관심이 지도자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때, 피정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보게 해 주고 또 그것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랑과 관심은 피정자가 무엇을 필요로 해야 하는지를 엿보게 해 주기도 한다. 

 

개인지도 피정에서는 늘 주도권(initiative)의 문제가 제기된다. 성령이야말로 이 피정의 진정한 지도자이심을 계속해서 상기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삶의 운전사가 성령이셨듯이, 며칠 동안 진행되는 피정에 있어서도 운전사는 성령이시기에 지도자가 이 여정의 운전사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오히려 성령의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맡기고 피정자와 함께 옆자리에 앉아서 동반자로서 그의 영적여정에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함께 식별하고, 함께 앉는 모습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을 통해서 더 잘 드러난다 (루가 24,13-35). 

 

지도자가 어떤 기술로서 피정자를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피정자의 나눔에 반응할 때 성령께서는 거기에 계시며 당신의 일을 하신다. 지도자가 바쁘게 지내며 기도하는 여유없이 단지 피정자에게 성서묵상거리를 제공하면서 피정을 이끈다면, 그것은 분명 피정 기술자의 행각일 뿐이겠다. 지도자의 마음 속에도 성령께서 일하실 공간이 필요하고, 지도자-피정자의 관계 속에서도 공간이 필요하다. 기도하는 마음이 없이는 이러한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도하는 마음이 만드는 공간은 그 자체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서, 지도자로 하여금 성령께서 현존하시며 일하시는 모습을 피정자 안에서 발견하도록 해 준다. 지도자가 자신의 삶과 기도 속에서 성령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 현존과 일치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지도자는 피정자가 자신의 신앙 여정에서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잘 성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현재는 결코 과거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피정이라는 짧은 기간이 결코 어떤 단기 코스처럼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때로는 지난 한해 동안 자신에게 어떤 내 외적 사건이 있었는지를 돌이켜 보는 기회가 필요하고,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하시는 하느님의 질문처럼 자신의 신앙 여정에서 어디에 와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영성생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피정이 계속되면서 어떤 경우에는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되어 가는 듯하기도 하다. 이럴 경우 지도자의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당황하게 되는 것이 쉽상이다. 영적지도의 일에서는 비상사태가 없기에 응급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도 없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오히려 마음의 긴장을 풀고 여유를 확보할 때 더 좋은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늘, 때로는 도움을 주고, 때로는 이끌어주며, 때로는 확인해 주고, 때로는 엉켜진 것을 함께 풀면서, 식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일 뿐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피정자의 마음을 들어야 한다. 영적으로 민감하고 훌륭한 지도자는 피정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단지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가 실제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마음 속에서 그가 진정 말하고 싶어하는 그것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마음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때론 얼굴 표정에서 때론 목소리의 울고 떨리는 모습에서 때론 눈동자에서 울리는 가늘고 여린 움직임을 통해서 들려온다. 지도자는 피정자가 성령의 이끄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듣고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격려하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피정자가 말한 것을 다시 되풀이해 말해 줌으로써 그 의미를 강조해 주고, 또 다른 경우에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대신 표현해 주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피정자에게 문제를 제기하며 도전하기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숨겨진 느낌들, 걱정들, 게으름들, 우상화된 것들, 오해들 등과 같은 마음 그늘진 곳에 숨겨진 그 어떤 것들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사랑에 찬 마음으로 피정자에게 도전해야 한다. 마음 속 깊이 그늘진 곳에 숨겨 있는 부정적 체험들이 남긴 상처들은 오직 하느님의 관대한 사랑 앞에서만 치유될 수 있다. 아니 지극한 정성어린 사랑만이 마음 속으로부터 이 상처들을 끄집어내어 하느님의 치유하시는 사랑 앞에 놓이도록 해 줄 수 있다. 지도자가 보여주는 사랑은 이러한 사랑이어야 하며, 하느님께서는 지도자의 이러한 사랑을 통해 당신의 지극하신 사랑을 성사적으로 드러내고 계신 것이다. 사랑은 마음 속에 응어리진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감싸주어 치유시킨다. 그러기에 때로는 지도자가 매우 엄격한 모습으로 임해야 할 경우도 있겠지만, 그 엄격함은 언제나 정성어린 사랑에 의해 다듬어진 엄격함이라야 할 것이다. 

 

[영신수련] 피정은 지도자가 피정자에게 단지 그날 그날 기도할 성서구절들을 나누어주고 묵상하도록 도움을 주는 양식의 피정이 결코 아니다. 개인지도 피정에서 성서구절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풍조는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여야 한다. 제시되는 성서구절들에 의해 피정의 주제나 기도의 주제가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하느님 체험과 기도 체험들이 성서의 구원적 관점을 바탕으로 성찰되고 심화되는 것이다. 지도자의 입장에서 피정자가 기도하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여겨지는 성서구절들을 미리 준비해야 하겠지만, 하느님께서는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피정자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피정자들 역시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있다. 때로는 피정자로 하여금 내부의 느낌들을 말로써 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방법들, 예를 들어, 진흙으로 빚는 어떤 형상, 그림, 노래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 보도록 권유해 볼 수도 있겠다.

 

 

피정의 역동성

 

[영신수련] 피정에는 아주 고유한 역동적 움직임이 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피정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피정자가 어떤 영적 분위기에서 더 잘 머물고 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아래 제시하는 영적 움직임의 진행 과정은 피정자가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 하느님 체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 즉 부르심과 응답이라는 측면에서 피정의 역동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영적 움직임의 진행 과정 요약

 

1. 좋으신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축복을 내려 주신다. 

2.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해야 하는데 나는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가? 

3. 그렇지 못하구나. 왜?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창조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렇게 자유롭지 못할까? 

4. 부끄럽구나. 하느님 죄송합니다. 

5. 괜찮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신다. 

6. 좋으신 하느님, 당신께 감사 드립니다. 

7. 예수께서 “너는 진정 나를 따를 만큼 자유로우냐? 나를 따르려무나!” 하고 말씀하시고, 나는 “예, 당신을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하고 결심한다. 

8. “좋다. 나에게서 배워라.” 하느님께서 “내 사랑아, 그에게서 배워라” 하신다. 

9. 두 가지 깃발 : 청빈과 모욕 

10. 셋째 겸손의 단계 

11. 그분께서 고난을 당하셨다. 가난, 모욕, 고통, 죽음 

12. 그분께서 부활하셨다. 

13. 당신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내 모든 것을 당신께 되돌려 드립니다.

 

이것은 단지 [영신수련] 피정의 일반적 개요일 뿐이다. 이냐시오의 관점에서 어느 영적 체험은 늘 또 다른 영적 체험으로 이끌어 가는 바탕이 된다. 하느님 체험 안에는 그 나름대로의 역동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피정 중에 얻게 되는 체험들 속에서도 그 체험이 지니고 있는 역동성을 파악하고 알아듣는 것은 중요하다.

 

 

피정자의 몇 가지 개별적 특성들

 

피정을 지도하다보면 때로 관상생활에 깊이 불림을 받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이들은 기도생활의 새로운 차원을 체험하기 시작한 사람들로서, 기도하는 중에 오히려 조용하게 머물기를 더 좋아하며, 또 기도 중에 아무런 내적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내적생활에 대한 은근한 매력과 필요성을 느끼면서 보다 더 조용히 침잠하면서 내적 고요에 대한 갈망이 마음 속에 자리잡는다. 이런 경우 지도자는 피정자의 고요함과 단순함이 과연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가를 식별하기 위해 피정자를 여러 면에서 시험해 보아야 한다. 혹시 이것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지도자는 피정자가 이러한 평평한 분위기에 그냥 머물도록 권유하면서 그것이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이라고 확인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피정 중에 겪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성적 느낌을 동반한 내적 움직임들이 피정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감성적 느낌을 동반하는 기도 체험들이 때로는 의지의 수준으로 다가오는 하느님의 은혜보다 더 낮은 수준의 체험일 수가 있다. 더 조용하고 평평한 가운데 머무는 양상의 기도 중에 있는 피정자에게는 오히려 지도자가 면담시간의 길이와 그 횟수를 조절해 주면서 그 고요 속에 더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갱년기의 위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이제까지 살아온 가치관의 변화를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 변화의 체험은 매우 아프고 이 체험을 듣는 지도자 또한 마음 속에서 아픔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창조의 손길은 늘 아픔을 동반한다. 이제까지 나에게 기반이 되어온 인생의 지침과 신앙생활의 뿌리가 송두리째 의미를 상실하는 듯한 체험 속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참고. 계시 21,5; 이사 65,17)을 알아듣기는 오직 사랑 어린 마음에서만이 가능하다. 

 

또 어떤 이들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로 피정에 임한다. 바쁘게 지내온 사도직 현장에서 이런 저런 일로 혹은 이 사람 저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칠 대로 지쳐 거의 탈진 상태로 피정에 임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현실적 갈등이나 고통 혹은 상처투성이의 증오심이 피정자의 마음을 번잡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피정자들은 비교적 쉽게 자신들의 느낌을 지도자에게 개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보이는 피정자의 개방은 크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이지만,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영신식별을 위한 질적인 개방은 아니다. 오히려 지쳐버린 심신이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얻은 후에, 영적인 자유를 통해 형성된 개방과 신뢰가 영신식별과 선택에 도움이 되는 태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피정 초기의 첫 며칠 동안에 피정 지도자는 최선을 다해 피정자로 하여금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도록 권유하면서 신체의 요구와 그 율동에 민감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마무리

 

마지막으로 피정을 마무리하면서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혜들을 돌이켜 보며 감사드리는 기도는 그 은혜들이 피정자의 마음 속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데 도움이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양상의 기도는 사실상 일상의 체험으로 되돌아가는데,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상을 바라보는데 적극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는 기도인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양심성찰, 즉 매일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의 일을 하느님께 아뢰는 성찰의 순간은 영적체험의 열매들이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점차로 자리잡고 실천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피정지도자는 피정자가 피정의 영적 여정 중에 받는 하느님의 은혜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면서 일상의 삶에서 양심성찰을 실천할 수 있도록 실천적 지혜들을 거두어 결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영성생활, 1995년 5월호, 심종혁(예수회 신부, 서강대학교 수도자대학원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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