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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도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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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2-28 ㅣ No.278

[기도, 한 걸음 더]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신앙생활의 첫걸음이라 합니다. 기도생활에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새해에는 기도의 정의부터 방법, 종류까지 기도영성에 대하여 배워보겠습니다(편집자).

 

 

기도에 관한 다양한 정의들

 

기도에 관한 정의들을 살펴보면 기도를 이해하고 기도생활을 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가장 흔한 정의 가운데 하나는 다마스쿠스의 요한 성인의 정의로,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차원에서 에바그리오 폰티코는 기도를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상승”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이나 정신을 들어 올린다는 것은 하느님을 향한 단순한 시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에 가득 찬 행위를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기도를 “애정을 다하여 하느님을 쳐다보는 행위”라고 하였고, 복자 샤를 드 푸코는 “예수님을 사랑하면서 그 사랑으로 예수님 앞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의 안에서는 아직 쌍방적인 관계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사랑으로 바라보고 머무는 것 자체가 이를 이미 말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쌍방적인 관계의 기도를 보통 대화라고 정의합니다. 하느님과 사람의 사랑 어린 만남 안에서는 서로 소통하고자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 현존의 인식이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이며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다”(오리게네스). “기도는 대화이다. 이는 사랑 안에서의 인격적인 만남이다”(토마스 그린). “기도 또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는 최고의 선이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이와 같은 모든 정의를 종합하면, 기도는 바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인 만남 안에서 상호간의 친밀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과 나의 친밀한 일치”이며, 니싸의 그레고리오 성인이 말하듯 “하느님과 나의 친밀함” 그 자체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정의를 가장 잘 요약해 주는 것은 바로 기도의 대가인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정의입니다. “묵상기도는 자기가 하느님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느님과 단둘이서 자주 이야기하며 사귀는 친밀한 우정의 나눔입니다”(자서전 8,4).

 

 

상호친밀한 관계로서 기도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기도하는 사람 사이의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기도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인간사 안에서 가장 친밀한 사이인 신랑과 신부,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녀, 절친한 친구들 사이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만남, 갈등, 오해, 대화, 사귐, 후회, 친밀함, 신뢰, 헌신, 하나 됨)이 실제로 기도의 순간에 일어납니다. 곧 기도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청하고 싶은 것을 일방적으로 독백하는 자리가 아니며, 동시에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자리도 아닙니다. 오히려 먼저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뵙고 하느님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고 소통하면서 하느님을 닮아가는 순간입니다.

 

과연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만나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설레기도 하고 애를 태우기도 하면서 갈등과 긴장의 순간들을 겪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싹트고 친밀함이 깊어지며 사랑하는 상대방의 뜻에 시나브로 자신을 맞추어 나가게 됩니다. 닮아갑니다.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집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말하듯이, 신랑은 신부를 당신과 동등하게 만들 만큼 신부를 사랑하며,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말씀처럼,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닮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로 비추어본 기도

 

삶과 기도에서, 인간은 자신을 창조하시고 먼저 사랑하시며 말을 건네시는 하느님께 자신을 열어가면서, 자신의 미숙함과 관계 맺기의 서투름으로 시작되는 성장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엄마와 아이의 관계 안에서 기도를 쉽게 알아들을 수도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옹알이나 표정을 보고 엄마는 용하게도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립니다. 처음에 아기는 엄마의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지만 분명히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느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엄마의 말을 따라 하면서 아주 간단한 표현을 하게 됩니다.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의 따뜻하고 달콤한 젖을 달라고 보채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엄마는 아이의 성장을 위하여 조금 더 단단한 이유식을 먹입니다. 아이에게는 절망의 순간이지만 이유기를 지나면서 아이는 더 단단한 음식에 맛을 들이게 됩니다.

 

이제 제법 말도 할 줄 알지만 아이는 주로 엄마에게 청하고 부탁하는 데에 익숙합니다. 날로 자라나면서 아이는 자신의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게 되고 엄마가 하는 말을 점점 더 구체적으로 알아듣게 됩니다. 이제는 엄마의 대화 상대가 되어 자신의 느낌과 삶을 나눌 뿐만 아니라, 엄마의 얼굴 표정만 바라보아도 엄마의 생각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사랑스러운 엄마를 닮아있습니다.

 

기도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초심자는 정해진 기도문을 반복해서 외우거나 어설프게 자신을 열어드리지만 하느님은 기도하는 이의 마음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기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자신만 말하는 것 같고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달라고 청할 때 하느님께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아직도 하느님과 친밀한 소통이 부족한지라 주로 필요한 것이나 원하는 바를 부탁드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충실하게 기도생활에 정진하다 보면 이제는 기도란 단순히 내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자신을 내맡기는 순간임을 알게 됩니다. 무엇을 말씀드려야 하는지 알게 되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점점 더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제는 전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전보다 더 자신을 잘 드러내 보이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사랑과 뜻에 동화되어 갑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과 사랑에 동화되어 감

 

이처럼 기도생활이 정상적으로 흘러간다면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릴 뿐만 아니라, 그 뜻에 자신을 맞추어나가다 보니 덕스러운 사람이 되어가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변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기도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것은 기도의 정의들에서 드러난 하느님과 나의 관계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하느님과 나의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만큼 그야말로 쌍방적인 성격임에도 혼자서 일방적으로 독백하듯이 기도하거나, 자신의 변화를 꾀하지 않는 채 하느님만 바라보려는 습관 때문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필요한 바를 청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사랑에 응답하면서 자신을 헌신하는 순간입니다.

 

기도가 상호 친밀한 관계를 말하고 있음을 망각할 때 우리의 기도는 마치 주문처럼 되어갈 수도 있습니다. 주문은 주문을 외우는 이가 정해진 기도문의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달달 외움으로써 이에 걸맞은 효과나 효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문에는 정상적인 기도와는 달리 인격적인 만남도 대화도 친교도 헌신도 사랑스러운 관계도 형성되지 않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함으로써 내가 하느님의 마음과 뜻을 바꿔놓는 데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변화되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 닮아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 김성봉 프레드릭 - 전주교구 신부. 2002년 사제품을 받고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영성신학을 전공했다. 현재 광주 가톨릭 대학교 영성신학 교수로 신학생 영적 지도를 한다.

 

[경향잡지, 2010년 1월호, 김성봉 프레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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