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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성모 발현과 그 메시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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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13 ㅣ No.323

[성모 승천 대축일 특집] 성모 발현과 그 메시지들


“하느님 뜻 전하는 어머니따라 끊임없이 기도하고 회개해야”

 

 

교회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이요, 교회의 어머니로서 당신 아들의 이름으로 하느님 뜻을 알리는 초자연적인 현현(顯現) 현상을 여러 차례 보여왔다.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축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축일로 꼽히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 발현과 그 메시지들을 소개한다.

 

그간 교회의 정식 인가를 받은 성모 발현은 1858년 2월 11일~ 7월 16일 프랑스 루르드에서 보인 18차례의 발현을 비롯 멕시코 과달루페, 프랑스 라 살레트, 아일랜드 노크, 포르투갈 파티마, 벨기에 보랭과 바뇌 등 총 일곱 차례로 꼽힌다.

 

이 같은 발현을 통해 드러난 성모 마리아의 주된 메시지는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 그리고 어려울 때 자신을 찾아 의탁할 것을 간청하는 모습이었다.

 

 

과달루페(Guadalupe)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

 

1531년 12월 9일 멕시코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성모 마리아는 4차례에 걸쳐 나타나 이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언덕에서 성모 마리아는 인디언 피부의 용모를 보였다.

 

당시 멕시코는 스페인에 의해 정복된 지 10년 되는 해를 맞고 있었고 원주민들이 폭압과 폭정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 이 성모 발현은 이후 8년 만에 당시 800만 인구 중 700만 명이 영세, 입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프랑스 파리의 기적의 메달성당. 지구 위에 서 있었던 발현 당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재현했다.



파리(Paris)

 

성모는 1830년 11월 27일 파리의 뤼 뒤 박 소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지원자였던 카타리나에게 나타나 지구 위에 서서 두 팔을 지구 위로 활짝 펼친 형상을 드러냈다. 그 주변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때 자신이 나타난 모습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 했는데, 그 후 메달 착용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이라고 불리게 됐다.

 

이 발현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신심을 고조시켰고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라 살레트(La Salette)

 

성모 마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라고 밝힌 발현이다. 과학만능주의, 자유주의, 무신론의 풍조 속에 전통적 신앙과 성서 가르침이 위기를 맞던 19세기 후반, 1846년 9월 19일 프랑스 가르가스산 기슭의 라 살레트에서 11세의 막시망 지로와 15세의 멜라니 마티유 칼바에게 나타난 성모는 인류가 회개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면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으리라고 경고했다.

 

발현 당시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무시했으나 보불 전쟁과 대흉년으로 100만 명 이상이 굶어죽는 재앙이 닥쳐오자 회개하는 순례객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루르드(Lourdes)

 

성모는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 동굴에서 14세 소녀 베르나 데트에게 발현했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고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들이 교회 가르침을 의심하고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원죄없는 잉태된 자’로 본인을 소개했던 성모는 기도와 보속 행위, 회개를 촉구했으며 많은 묵주기도를 권했다. 이후 루르드에는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방문하고 있으며 수많은 기적이 보고되었다.

 

프랑스 퐁멩. 1871년에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되살렸다.



퐁멩(Pontmain)

 

1871년 1월 17일 프랑스 부르타뉴와 노르망디 접경 지역 라발 교구 작은 마을 퐁멩에 12세 외젠느와 11세 요셉 바르베데트에게 성모가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스도가 못 박힌 붉은 십자가를 양손에 잡은 모습이었고 검은 면사포에 허리띠 없는 짙은 하늘색 바탕에 별들이 그려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이때 성모 마리아는 ‘얘들아 언제나 기도하여라. 내 아들은 너희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신다’는 글씨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러시아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침략, 위태로운 상황을 맞던 처지에서 발현 후 10여일 만인 1월 28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자 많은 이들이 발현한 성모를 ‘희망의 여인’으로 부르며 순례를 했다고 한다.

 


노크(Knock)

 

19세기 후반 아일랜드는 영국의 억압과 대기근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1879년 8월 21일 아일랜드 노크에서 마을 주민 15명에게 나타난 성모는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성 요셉과 사도 요한과 함께였다.

 

제대와 어린양 주위로 천사들이 돌고 있는 모양의 발현이었다. 특별하게 말씀으로 전한 메시지는 없었으나 미사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기려 포르투갈 파티마에 세워진 파티마성당.



파티마(Fatima)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갈 레이리아 교구 작은 마을 파티마에서 10세의 루치아, 7세의 히야친타, 9세의 프란치스코에게 발현했다.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자신을 밝힌 성모는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칠 것과 죄인을 위해 희생할 것, 그리고 성모성심을 공경할 것을 요청하였고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 영성체 할 것을 당부했다. 또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 평온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보랭(Beauraing)

 

1932년 11월 29일부터 1933년 1월 3일 사이, 벨기에 남부 지역 보랭에서 9~15세 다섯 아이들에게 33회에 걸쳐 나타났다. 흰옷에 황금관을 쓰고 양손을 들어 티없는 황금빛 성심을 드러내 보인 성모는 자신을 ‘원죄없이 잉태된 티없는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요 천상 여왕’ 으로 전하고 끊임없는 희생과 기도 및 죄인들의 회개를 청했다. 이후, 공산주의 영향으로 교회를 떠났던 많은 신자들이 회개하고 돌아왔다. 발현 첫해의 순례자가 20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병의 치유와 영적 치유(회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뇌(Banneux)

 

1933년 벨기에 바뇌에서 비신자였던 12세 소녀 마리에트에게 발현, ‘가난한 자의 동정녀’라고 자신을 칭했다. 루르드 발현 때처럼 흰 옷에 푸른 허리 띠를 두르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채 합장하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이때 성모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러 왔다고 밝히고 기도를 많이 바칠 것을 요청했다. 그후 수많은 성당이 바뇌의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됐다.

 

[가톨릭신문, 2011년 8월 14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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