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기도 배움터: 욕망에서 거룩한 갈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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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6 ㅣ No.649

[기도 배움터] 욕망에서 거룩한 갈망으로



사람마다 ‘욕망’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신앙생활에서는 왠지 욕망이 하느님께 멀어지는 것 내지 유혹과 동일시되지 않는가? 야고 1,14-15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다.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다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안에 담긴 순수한 욕구를 바라보려 하며, 과연 우리가 욕망을 피할 수 있을지 질문해보는 것이다.

우리에게 욕망이 없다면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지도, 집 밖으로 걸어 나가지도 못할 것이다. 욕망이란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력이며, 세상 안에서 뭔가를 창조해내는 힘이다. 질병을 치유받길 바라고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하길 기대하며 오래 살기를 소망하는 등, 우리의 욕망이 바로 우리 모습이다. 때때로 욕망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욕망하는 인간을 굽어보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떤 것을 청하고 또 무엇을 받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무엇을 갈망하는 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깊숙한 욕망이 무엇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신앙생활에서는 성경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묵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성경을 읽을 때 교훈을 얻은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기 쉬운데, 성경을 통해 기도한다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는 이사 55,11의 말씀처럼, 성경말씀은 우리 영혼을 불사른다. 곧 말씀은 우리가 일상을 사는 동안 내내 마음속에 잠재된다. 그리하여 우리도 성경인물들처럼 문제를 대면하여 극복함으로써, 하느님께서 본디 우리 안에 세우신 사람됨(온전함)을 회복하도록 초대하기 때문이다.

욕망과 관련하여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과 모세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은 야뽁 강에서 자기를 축복하지 않으면 절대 놔주지 않는다며 밤새 하느님과 씨름한다. 야곱은 장자권을 얻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여먹은 전과가 있어, 되돌아가는 고향 길에서 형에게 잡혀 죽을 지도 모를 지독한 두려움 속에 떨었다. 그럼에도 야곱은 하느님의 축복을 얻어 살 길을 찾아보려는 엄청난 욕구를 드러낸다. 탈출기 3장에서 모세는 민족애를 향한 열망으로 예기치 않은 살인을 하게 되고, 화려한 환경에서 도망쳐 나와 광야에서 평범한 양치기로 40년간 숨은 생활을 한다. 이집트에서 활활 타올랐던 그의 욕망은 메말라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때, 더 이상 그 무엇이 아닌 모세에게 하느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스스로 알도록 ‘불타는 떨기나무’의 상을 보이며 그를 자극하신다. 모세는 나무가 불에 타면서도 떨기는 건재한 것을 바라보는데, 이는 앞으로 모세를 통해 하실 하느님의 일을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그의 개인적 욕망이 아닌, 곧 모세 안에 있던 거룩한 갈망에 불을 다시 지펴주시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 하실 일은 설사 물리적으로 혹독한 화마를 입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결코 사그라져 망하지 않을 거룩한 사명으로 변화될 것을 예시한 것이었다.

야곱과 모세에게 일어난 일은 똑같이 그들이 인간의 온전함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백성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완전한 삶의 사명을 받는 것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야곱 곧 ‘사기꾼’의 뜻을 담은 이름에서 ‘하느님과 겨루다’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개명시켜주신다. 그렇게 됨으로써 야곱의 욕망은 하느님과 함께 걷는 ‘거룩한 갈망’으로 변혁된 것이다. 모세의 경우에는 그가 하느님의 이름을 여쭙자, 하느님께서는 “나는 나다”임을 기꺼이 가르쳐 주셨고, 그가 당신의 거룩한 땅에 설 수 있도록 그에게 묻은 부정을 벗겨주시는 뜻으로 그에게 “신발을 벗으라” 명령하신다. 이로써 모세는 이집트 권력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그 세상에 다시 돌아가, 오히려 세상의 권력가 앞에서 자신이 하느님의 뜻에 마음을 합하게 된 거룩한 갈망을 지속적으로 선포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은 환자들에게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며 굳이 질문하신다. 그것은 당신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 자신의 욕구를 명확히 깨닫게 도와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상 안에서 온갖 감정이 들끓거나 본능적 욕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여 그걸 물리치거나 덮어두려 할 것이 없다. 하느님은 다 아시기 때문에(시편 139,2 참조) 도리어 이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들고 하느님 앞에 펼쳐 놓을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보시는지 내어드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동안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도이다.

우리 삶의 무게나 고통은 그저 참아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통해 우리가 어떤 결단이나 변화 또는 전보다 더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이다. 우리는 일종의 구멍 난 양동이와 같이 실로 나약하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구멍 나지 않고 멋진 양동이를 바다에 넣어보라! 균형이 있으면 있을수록 바다 위에 떠 있게 된다. 반면에 구멍 난 양동이는 바닷물 위에 놓으면 아주 서서히 물속 깊이 들어가 바다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 구멍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가고 나가니 말이다. 우리가 가진 한계와 나약함이 우리를 구멍 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구멍이 있어서 바다이신 하느님 안에 깊이 빠져 기도할 수 있고, 기도 안에서 우리 나약함을 통해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고,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품으신 하느님의 꿈 곧 하느님의 거룩한 갈망을 살게 된다.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하느님이 나에게 심어주신 욕망이 나에게 있는가? 그 욕망은 무엇인가?

2015년 새해가 밝았고 이미 새해 발걸음을 뗐다. 하느님께서는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떻게 새로 만들어지기를 욕망하는가? 어떤 면에서 내가 새롭게 된 모습을 보고 싶은가? 하느님께서 새롭게 만드셨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하느님께 말씀드려보라.

* 이명기 수녀는 1986년 성심수녀회 입회, 첫서원 후 성심여고에서 교육사도직 수행, 종신서원 후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대학원에서 문학박사 취득, 2006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에서 기초교양필수과목인 ‘인간학’과 ‘영성’을 가르치고 있다.

[외침, 2015년 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글 이명기 수녀(성심회, 가톨릭대 성심교정 ELP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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