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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 속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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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영화 이야기] 영화 속 정치
우리나라 영화의 경우는 어떠할까? 영화 ‘내부자들’, ‘마스터’, ‘더 킹’ 등 유독 우리나라에는 부패한 정치인들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영화가 많다. 왜 그럴까? 영화를 제작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관객이다. 어떤 관객층을 타깃으로 할 것인가에 따라 스토리의 방향을 잡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부패한 정권과 정치인들을 응징하는 영화가 많이 제작되는 것은 현 사회현상에 대해 답답해하고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답답한 상황을 영화를 통해서라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려는 것이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냉소주의다. 냉소주의는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선의를 지니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실망시키고 좌절시키는 상황이 반복해서 벌어질 때 일어나는 일종의 ‘번 아웃(Burn out)’현상이다. 냉소주의는 ‘번 아웃’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다. 냉소주의는 아직 ‘번 아웃’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가지고, 선의를 가지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실망시키는 전염병이다. 냉소주의는 불합리한 상황의 반복에 대해 생존을 위한 자기 방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자신은 악한 자들과는 다르며, 불합리한 세상에 대해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갈등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소주의’가 아니라 ‘인내’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분도출판사, 2016)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라하의 사제 ‘토마시 할리크’는 “신앙과 무신론의 가장 큰 차이는 ‘인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께서 베푸시는 수많은 기적과 말씀에도 불구하고 비아냥과 음모, 심지어 당신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배신까지 당하시지만 그분은 냉소주의자가 되지 않았다.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인내’이다. 그리고 지금도 인내하고 계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다. 인내를 뜻하는 영어 단어 ‘perseverance’는 단순히 자신의 감정이나 불편한 상황을 참고 억제하는 ‘Hold’의 뜻만이 아니라 ‘steady persistence’, 즉 어려움들, 장애물들 혹은 절망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계속해서 해 나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인내이며 세상을 바꿔 나가는, 하느님 뜻대로 우리를 바꿔 나가는 힘이다.
지난 몇 개월간 우리나라는 크나큰 홍역을 앓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더 이상 영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마음을 모아 인내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을 만드는 기쁨을 누리는 시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월간빛, 2017년 5월호, 한승훈 안드레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0 2,371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