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 단원은 덕과 친구 되려 악습을 멀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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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영성] 레지오 단원은 덕과 친구 되려 악습을 멀리합니다
레지오 마리애 잡지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고민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될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게 버겁게 다가왔던 겁니다. 문득 이 좁은 소견으로 레지오 훈화집, ‘성모님 가슴에 달린 어여쁜 노리개’를 낸 일이 떠올랐고 ‘성모님, 할 말 있어요’라는 어린이 훈화집까지 만들었던 겁 없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럼에도 레지오 단원을 일깨워 이끌어가는 것은 사제의 지식이나 역량이 아니라 예수님과 성모님의 사랑일 테니, 겁먹은 마음을 치워냅니다. 부디 당신들의 뜻에 맞갖도록 ‘꼭 필요한’ 말씀으로 이끌어 주실 줄 믿으며…… 기쁘게 글을 엽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매년 많은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자주 교육을 하는 이유는 모든 레지오 단원들이 레지오 영성을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단원들이 레지오 영성을 잘 알게 될 때에 성모님을 더 닮아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닮는 것이야말로 삶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레지오 단원 교육의 목표는 예수님을 더 많이 사랑하도록 도와서 훨씬 성숙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기 위함이라는 걸 알아주세요!
삶의 여정은 세상의 모든 인간이 자기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길입니다. 바로 오늘의 찰나를 순간마다 성실히 ‘건설’해 나아가야 마땅합니다. 더욱이 레지오 단원에게는 선한 존재로써 주위를 변화시켜야하는 특별한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선한’ 인격은 레지오 정신에 충실할 때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도인에게 윤리적인 삶이란 규범을 잘 지키고 착한 행위를 많이 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윤리적이고 규범에 충실한 착한 행위란 성숙한 삶을 살아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덕(德)은 인격형성에 가장 탁월한 자기교육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덕을 잘 이해하도록 이끌어주신 분입니다. 성인이 정의한 덕은 매우 다양한데요. 그 중에서도 덕이란 “선을 행하는 습관”이라는 설명에 마음을 모아봅니다. 성인은 그 무엇에 앞서 우리의 평소 생활습관이 덕을 좌지우지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한편 덕이란 이미 알고 있는 선을 “즉시, 쉽게 그리고 즐겁게” 실천하려는 ‘내적 준비성’이라고 설명했지요. 이것은 선한 생각이나 좋은 일을 하더라도 억지로 하는 것은 결코 덕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진심으로 우러나서 실행할 수 있을 때 덕이 된다는 뜻이지요. 결국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의 기복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선으로 향하도록 다스릴 수 있을 때, 덕스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분은 선한 레지오 단원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십니까? 늘 선을 추구하려 애쓰며 지내십니까? 아니면 쉬이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섣불리 비판하는 악습에 익숙해져 있지는 않습니까?
또 한 분, 우리에게 덕을 잘 이해하도록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성인이 바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성인은 최고의 선이며 지혜이시자 일치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를 벗어난다면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행태일 뿐이기에 참된 덕에 이를 수 없다고 밝힙니다. 하느님만을 위한 사랑의 형태야말로 바로 온전한 덕임을 일깨워준 것입니다. 덧붙여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은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것이며,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업적은 우리가 얼마나 알고 가는 것에 있지 않고 얼마나 사랑하며 가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물며 “사랑의 뿌리에서 자라나 맺은 열매가 아닐 때 어떠한 수확도 소용없다.”라는 강력한 어조를 사용하면서 말입니다.
이렇듯 덕(德)은 인격형성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자기교육입니다. 덕과 악습은 착한 행위나 악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한 결과의 산물입니다. 결국 의지의 열매를 소유한 사람만이 선과 악의 선택에서 지혜롭고 단호한 분별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인간에게 선보다 악으로 기우는 자연적인 본성이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선한’ 인격체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느새 악의 지배 아래에 자신을 방치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항상 경고합니다. 충실한 레지오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윤리적 법규의 준수를 넘어, 한층 성숙한 사랑이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이 성숙한 사랑은 세상이 갖지 못한 것입니다. 훨씬 높은 차원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레지오 단원들이 충실한 모습으로 성숙한 삶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충실함은 거짓일 뿐이니까요.
아침에 감사 기도로 하루를 여는 것과 자기 할 일에 매달려 기도를 미루어버리는 삶의 엄청난 차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까떼나를 기쁘게 매일 바치는 레지오 단원과 보고를 위해서 억지로 땜질하듯 채우는 마음의 차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결과가 낳을 인격의 형성에 엄청난 간격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나약함에도 온전한 삶을 꾸리는 비법 ‘온유’ 선물로 주셔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 아픈 지적을 드리려 합니다. 적지 않은 레지오 단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 즉 묵주기도와 레지오 출석에는 빈틈이 없지만 세계의 평화를 위한 기도나 다른 쁘레시디움의 어려움이나 이웃의 고통을 등한시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물론 매달 바쳐지는 교황님의 기도지향에도 관심이 없는 걸 보았습니다. 정말 놀랬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단원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누구든, 자격미달입니다. 더욱이 레지오 안에서 화합과는 거리가 먼 파괴적이고 분열적인 레지오 단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부패되고 오염된 신앙일 뿐입니다. 레지오 단원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기도는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입니다. 온 세상을 위해서 자신을 봉헌하는 마음으로 성모님의 심정으로 애타게 기도할 수 있어야 옳습니다. 이웃에 관한 관심과 활동은 예수님처럼 성모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바치는 기도의 결실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에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빈틈없는 군자의 삶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성숙한 삶을 추구하는 레지오 단원이라 할지라도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에게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나약함 안에서도 온전한 삶을 꾸리는 비법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온유입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겸손함으로 옳은 비판을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이런 온유한 마음을 갖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갖은 어려움을 사랑으로 녹여 성화시키신 성모님을 닮도록 이끌어주는 힘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성모님께서는 모든 덕의 기념비와 같은 존재이십니다. 따라서 어머니를 닮은 레지오 단원에게는 온유함이 내장됩니다. 언제나 무엇에나 덕을 실천하기에 결정과 실천에 머뭇대지 않는 지혜가 뒤따릅니다. 결국 레지오의 확장과 건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덕스러운 삶의 모습이 미지근한 레지오 단원들 안에 반영되어, 열성의 씨앗을 심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모든 레지오 단원들은 세상에게도 레지오 안에서도 성모님처럼 매력적인 덕의 향기를 풍기는 덕의 사람임을 잊지 맙시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성모님을 닮아서 자신보다 이웃을 더 아끼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세상을 감동시킵니다. 참된 덕을 살아내는 모습은 세상이 보기에도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증거일 터입니다.
새해와 첫 달, 마음을 단장하기에 무척 좋은 때입니다. 올 한 해, 성모님의 얼을 닮은 온유한 삶으로 덕의 소유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어느 누구도 차별 없이 이 새로움의 시간을 선물해 주신 주님의 푸진 사랑을 찬미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1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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