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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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영성] 만남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그렇게 누군가와 인사를 나눈다는 것은 만남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난다고 하는 것은 단지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남은 사실 한 사람의 모든 삶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말을 건네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지난 슬픔이 또 다른 누군가의 슬픔에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고, 누군가의 기쁨이 또 다른 누군가의 기쁨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각자가 지닌 삶의 시간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이 만남이기에, 어떤 순간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바뀌기도 합니다.
만남 1 – 가브리엘 천사와 성모 마리아의 만남
가브리엘 천사와 성모 마리아의 만남에서 우리는 “믿음의 만남”을 보게 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을 예고하며 마리아를 찾아왔을 때 마리아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선택의 순간입니다. 게다가 그 선택으로 인해 어쩌면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질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순간이 다가온다면 우리 중 그 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성모 마리아의 이 응답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인간의 최종적 응답이 되었고, 이 응답으로 인해 마침내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전부인 그리스도를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이 만남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믿음”과 성모 마리아로 대표되는 “인간의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봅니다. 서로를 향한 믿음이 만나는 그 순간 비로소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집니다. 죄로 인한 비참함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빛이 비춰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을 향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만남 2 –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만남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만남은 우리에게 “희망의 만남”을 보게 합니다. 인간을 위한 구원의 길에서 아드님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지고 무너집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멀리서 바라봐야 하는 어머니의 그 비참한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갈바리 산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치셨고(히브 9,14), 성모님은 십자가 곁에 서서 당신 외아드님과 함께 극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성모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거룩하신 동정녀여, 당신 아들을 바치소서. 태중의 복되신 아들을 주께 바치소서. 우리 모두를 화해시키는 거룩한 제물,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을 바치소서”(In purificatione B. Mariae, Sermo III, 2: PL 183, 370 참조).
하느님 아버지께 끊임없이 자신을 봉헌하였던 성모님이셨기에 그분의 인간적 고통은 단지 고통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이 단지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죽음임을 믿으셨습니다. 십자가 아래 성모님의 인간적 고통은 이제 침묵의 기도 안에서 희망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고통과 절망을 넘어선 ‘구원의 기쁨과 희망’이 주님의 부활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또한 우리 삶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성모님을 본받아 십자가를 넘어선 부활을 희망하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십자가의 길 기도 중에서)
만남 3 – 신앙 여정에서 성모님과 우리의 만남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성모님과 우리의 만남은 “사랑의 만남”을 엿보게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삶의 시련 속에 불안해하며 세상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요한 20,19) 살아가곤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성모님의 존재는 너무나도 큰 위로와 평화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라는 말만큼 따뜻하고 포근한 말이 있을까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강생하신 말씀’의 어머니가 되신 동정녀의 특별한 품위를 묵상할 때, 교회는 마리아께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신비체의 모든 지체를 위한 마리아의 영적인 모성을 생각할 때, 교회는 뜨거운 사랑을 드립니다[…]. 주님의 겸손한 여종에게서 자비의 어머니, 은총의 어머니를 뵈올 때, 교회는 사랑에 찬 봉사를 드립니다.”(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 22항 참조) 이렇게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전하며, 그 사랑을 다시 어머니께 돌려드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치지 않습니다. 주저앉을지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사랑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성모님께서도 우리에게 지치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시니 우리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때때로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도움이시며 보호자이신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며 우리는 기쁨에 넘쳐 노래합니다. “어머니시여 모후시여, 나는 오로지 당신 것, 내 모든 것이 또한 당신 것, 어머니시여 모후여.”(레지오 마리애 단가 1절)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5월호, 김혜종 요한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0 98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