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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증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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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3 ㅣ No.322

[레지오 영성] 증언의 삶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앙의 해’가 선포되고, 이제 그 막바지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는 가능성은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저는 ‘증언의 삶’을 통해 신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레지오 단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을 세상에 알리고 전하는 선교사의 소명이 맡겨집니다. 이 소명에서 제외된 신앙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느님을 세상에 전하는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명하셨습니다(사도1,8-11; 루카 24,35-48 참조). 이 명령에 따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증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기가 믿는 종교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세를 불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영토 확장’  이나 ‘고객유치’에 몰두하는 선교에만 치중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종교가 자기 종교를 믿으라고 요청하거나 강요할 경우, 종교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선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고 합니다. 선교를 ‘나를 지우려는 행위’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

그러므로 선교는 실천이어야 하고, 그 실천은 강요가 아니라 고백이어야 하고 설명이 아니라 증언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교는 ‘구체적이고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배운 바를 그대로 행하고, 현실적으로 자기 삶 속에서 구체화하며, 그것이 따뜻한 온기처럼 퍼져 나가도록 하는 것, 그것이 종교의 울타리 밖에서 기대하는 신앙인들의 삶입니다. 그러한 삶이 그대로 선교이고, 그 선교는 종교 밖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귀하고 참된 것으로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그 삶을 본받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고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일종의 신앙 양극화, 또는 교회의 내적 공동화 현상을 우려하는 위기 담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영적인 갈망을 심화시킨다는 각종 피정이나 수련, 연수, 다양한 체험의 기회 제공, 기도 모임들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각종 영성들이 경쟁적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성들은 설탕 같은 달콤한 맛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위로 하고 치유한다고 주장합니다.

계시에 근거하지 않는 여러 신심 단체나 활동 단체들의 일탈 행위들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막연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면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존재 기반 양식이 마련되지 않으면 불안과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인 달콤한 위로를 넘어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신앙의 위기는 증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곧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우리 자신이 복음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이고, 하느님은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하느님 없이는 인간도 아니라는 고백은 물론, 하느님 없이 살면 아무런 희망도 기대할 수 없다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라는 삶으로 방향 전환 해야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알고,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가난하게 태어나시고, 자기의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부유하고 자유롭게 사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죽어야겠다는 결심을 세워야 합니다. 더구나 그분은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에 자기의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 결과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목숨을 바치지 않고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모범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 없이 살아 온 우리의 삶을 이제는 하느님과 함께 라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결단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멸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어 낼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듣고 읽는 복음의 말씀도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려주어라, 묶인 것을 풀어주어 가게 해 주어라, 해방시켜 주어라, 자유롭게 해 주어라, 영원한 생명을 선포 하여라 라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다 할지라도 결코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의 부활의 힘과 능력을 믿고, 그분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합니다.

이렇게 삶으로써 우리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시는 그분의 부활에 우리도 이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활이라는 영원한 생명 이것 이외에 우리가 달리 욕심을 부려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12월호,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주교, 마산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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