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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저 여인은 누구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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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4 ㅣ No.328

[레지오 영성] 저 여인은 누구실까?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 날마다 바치는 레지오 까떼나의 후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인은 누굴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리석은 질문일겁니다. 그런데 왜 성모님을 ‘먼동이 트이듯 그렇게 희망차게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분’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왜 성모님을 그리 부르는지는 성모님의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가지신 정신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주님의 종으로서의 순명(順命)과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가지신 모성애(母性愛)일 것입니다. 순명과 모성애 이 두 정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비움입니다.

종에겐 자기의 소유도, 자기의 뜻도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있다하더라도 주인의 뜻에 우선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오로지 주인의 뜻이 우선이고 전부이고 그렇습니다.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집니다. 어머니에게 있는 모든 것은 자식들을 위한 것이고, 자식들의 것입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처럼 어머니의 뜻도 자식들의 뜻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성모님 정신은 순명과 모성애


이렇듯 성모님의 정신과 삶을 들여다보고 요약해보면, 아무 것도 당신 것이라 하시지 않으시고, 오로지 하느님과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으십니다. 자기 비움의 삶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자기 비움은 사랑의 가장 큰 속성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신의 전부를 내주어도 몽땅 비워도 괜찮고 오히려 더 주지 못해 안달인 것과 같습니다.

이런 자기 비움은 구원사의 최절정, 바로 예수님의 탄생과 삶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립 2,6-8). 하느님의 자기 비움이 강생이었고, 파스카였듯이 구원사와 사랑의 최정점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이 곧 자기 비움입니다.

성모님께선 자기 비움의 정신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먼동이 트이듯 그렇게 희망차게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분’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성모님께서 받으시는 칭송이 자기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목표로 삶을 살아갑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본성이 아닌가 합니다. ‘먼동이 트이듯 그렇게 희망차게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참으로 멋진 인생이기에 이를 지향합니다.

그런 모습을 원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먼동이 트이듯 그렇게 희망차게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인생을 살고자한다고 하면서도, 삶의 방식은 성모님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합니다. 자기 비움이 아닌 자기 채움의 방식을 택합니다.

‘먼동이 트이듯’ 희망차려 하지만 소란하지 않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자기존재를 알리려 합니다.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아 빛나기’위해 온갖 것으로 치장을 하고 고치고 바르고 자기 업적과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존재가 되기 위해 재력과 권력을 탐합니다. 무언가를 가져서 장식을 해야만 아름답고 빛나며 두려운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으고 치장하고 고쳐서 원래의 자신을 모습을 가리거나 망가뜨려 버립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을 없애버립니다. 자신을 버리는 참된 순명이나 모성애는 찾아 볼 수 없고, 오히려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칠죄종)가 있을 뿐입니다.


성모님처럼 살기 위해선 ‘자기 비움’의 삶을 살아야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성모님의 군대에 자원입대한 사람들입니다. 성모님의 모범에 따라 세상의 방식이 아닌 성모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성화시키는 임무에 스스로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방식보다는 세상의 방식대로 하려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반은 하느님의 방식으로 반은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그 모습은 참 우스울 것입니다. 하느님의 방식은 비우는 것이요, 세상의 방식은 채우는 것이니, 반은 비우고 반은 채우거나, 반은 치장하고 반은 발가벗고 있다면, 양복입고 갓 쓴 모습보다도 더한 모습일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우습고, 누가 봐도 어리석은 삶입니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주님의 풍성한 은총 경험


레지오 단원 여러분! 성모님처럼 ‘먼동이 트이듯 그렇게 희망차게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이들이 되기 위해  자기 비움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올해엔 사람에 대해서도 비우는 훈련을 하였으면 합니다. 레지오를 하면서도 자꾸 친한 사람, 만나던 사람, 편한 사람만 만나려 합니다. 그런 마음을, 그리고 그들을 비우십시오. 그래서 주님께서 맺어주신 모든 이들을 ‘두루두루 그리고 고루고루’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비움으로 인해 채워지는 주님의 풍성한 은총이 얼마나 큰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체험이 우리의 신앙과 활동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모든 것을 내어주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루카 17,10)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성모님처럼 ‘먼동이 트이듯 그렇게 희망차게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이들로 세상에 나타나 세상의 성화를 위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4년 2월호, 김
종대 안드레아(신부, 광주대교구 방림동성당 주임, 광주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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