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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독일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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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128

독일 신비주의(German Mysticism)

 

 

오늘날 독일정신이라 불리는 사상의 근원인 마이스터 에카르트(Meister Eckhart, 1260-1329)와 그의 추종자들의 신비적 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발전된 사상을 독일 신비주의라 부른다. 에카르트 이전에 주목할 만한 인물은 다양한 영적 재능을 지닌 베네딕도회의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수녀로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환시 등의 신비 체험을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주의 전통을 통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겪는 내적 체험들을 의학이나 약학 등의 다양한 지식을 통해서도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재능과 지식을 지녔다. 

 

12세기 후반에 이르러 St. Trudberter Hohe Lied라는 신비적 성향을 띤 시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아가서의 양식을 빌어 신랑인 그리스도가 영적인 사랑으로 마리아를 만나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그리스도와 인간 영혼이 나누는 깊은 내밀한 대화를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에서 두드러진 사람은 멕틸드 마그데부르그(Mechthild Magdeburg, d.1300)라는 여인이다. 1250년경에 쓴 Das fliesende Licht der Gottheit(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오는 광명)이라는 시는 도미니코회의 하인리히 할(Heinrich von Halle)의 도움으로 완성된 작품으로서 하느님 사랑의 깊은 체험을 서정시의 형식으로 묘사한다. 

 

중세 독일 신비주의의 중요 주제는 '영혼 안에서 탄생하는 하느님'이다. 이 주제는 도미니코회 사제인 마이스터 에카르트와 그 제자들인 요한네스 타울러(Johannes Tauler)와 하인리히 수소(Heinrich Suso) 등에 의해 전개된 신비 사상을 통해 심오하게 발전했다. 에카르트는 파리와 쾰른의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했고, 그곳의 여러 도미니코회 수녀원에서 설교했다. 그의 설교의 주된 내용은 하느님과 인간 영혼이 나누는 친밀감의 신비로서, 그는 이러한 주제들을 사변적 방식으로 대담하게 설교했다. 글로 기록된 그의 설교와 논문들, 그리고 라틴어로 쓰여진 여러 글들이 교회의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심판 받기에 이른다. 타울러의 설교는 신비적 경건의 남성적 요소를 강조한다고 본다면, 수소의 설교는 경건한 내적 신심의 느낌을 더 많이 강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풍조의 초기 독일 신비주의는 단지 오늘날 우리가 독일이라고 부르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수소와 '하느님의 친구들'이라 불리는 이들, 15세기에 클라우스 수사 (Nicolas Flue) 등이 활약한 스위스 지역에도 널리 퍼졌다. 독일 신비주의는 15세기에 이르러는 홀란드 지방에도 영향을 미쳤다. 얀 뤼스뷰룩;(Jan Ruysbroeck)은 Zierde der geistlichen Hochzeit(영적 결혼의 화관)이라는 작품을 썼다. 14세기 말에는 네덜란드와 북 독일 지방에 Devotio Moderna라는 신신심운동이 일어나 형제회의 양태를 띈 작은 공동체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가 썼다고 전해지는 Imitatio Christi(준주성범)은 그 당시 가장 널리 읽혀진 신심서적이었다. 프랑크프르트의 한 사제가 익명으로 저술한 Theologia Deutsch(독일 신학)이라는 신비적 경향을 띈 책도 널리 읽혀졌는데,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이 작품에 대하여 성서와 성 아우구스티노와 더불어 자신이 배운 것이 가장 많은 책으로서 독일어로 하느님을 추구하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깊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특별히 루터는 이 책을 통해 타울러의 신비주의에 접하게 되었고, 스스로의 저서인 Theologia Germanica(독일 신학)를 통해 자신이 이 책에서 발견하고 체득한 것을 동료들에게 전해준 셈이다. 

 

종교개혁시대의 신비주의 풍조를 지속시켜 준 이는 루터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한 토마스 뮨져(Thomas Muntzer, d.1525)였다. 그는 1524-1525년 사이에 독일농민전쟁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왕들께 드리는 강론'이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모든 행동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신비적 체험과 사상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즉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서의 외적 언어를 통해 그 내부 세계를 꿰뚫어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6-17세기의 독일 영성?신비사상에 이르면 그 범주가 내적 경건의 영역을 넘어서, 자연관, 우주관, 연금술 등에 이르기까지 넓혀진다. 그들은 실재를 영적인 차원에서 표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기에, 그들의 세계관을 현대의 과학적 관점에서 저울질해서는 안된다. 문예부흥시대의 철학적 사고는 자연(nature)을 종교적 지식이 추구하는 영역의 한 부분으로 이해한다. 파라셀수스(Paracelsus, d.1541)는 의사이며 약사이지만 위와 같은 풍조에서 연구를 했기에 종교적 인물로서도 알려졌다. '위와 아래'의 상호관계에 대한 고대 은수전통에 따르면, 인간은 소우주로서 대우주인 세상과 함께 병존하고 있다. '자연의 빛'이 인간에 비추는 것은 바로 인간이 창조물의 깊이를 신비적으로 꿰뚫어 그 안에서 구원적 힘을 발견하는 때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위에서 내려오는 성령의 선물인 '은혜의 빛'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발렌틴 비겔(Valentin Weigel, 1533-1588)은 Theologia Deutsch의 신비적 경건주의, 루터의 신학, 자연에 대한 파라셀수스의 사상 등의 통합을 시도했지만, 자신의 사상을 공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기에 종교개혁시대 이후의 희생물이 되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죽은 후에 1608년경부터 출판되어 널리 읽혀졌다. 

 

자콥 뵘(Jacob Boehme, 1575-1624)의 신비사상은 파라셀수스와 비겔의 사상적 맥락에서 뿐 아니라, 연금술과 신비철학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신비적이고 철학적인 저술 때문에 그는 철학자로도 알려졌다. 그의 사상은 수세기 동안 유럽전역의 영성?신비사상과 종교생활에 깊이 영향을 끼쳐왔다. 1612년에 출판된 Aurora or the Breaking of the Dawn(새벽이 오는 모습)에서 그는 하느님의 신비를 펼쳐 보이며, 인간과 세상이 불분명함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지만 때로 갑작스런 광명으로 가득 차는 모습으로도 묘사한다. 헤겔(Hegel)은 그를 '진짜 독일인'이라 불렀으며, 쉘링(Schelling)은 그가 신적 지혜를 지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사상의 신비적 전망은 특별히 네덜란드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1682년경부터 그의 저술들이 그 곳에서 출판되기 시작했다. 한편 그의 저술들은 윌리암 로우(William Law)와 존 스파로(John Sparrow)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영국에서 출판되었다. 그들의 제자들은 소위 '필라델피아 학파'라 불리는 이들로서 존 포르다쥐(John Pordage, 1607-1681)와 제인 리이드(Jane Leade,1623-1704) 등이다. 청교도들에 의해서 그의 저술들은 신대륙에서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존 밀튼(John Milton)과 윌리암 블레이크(William Blake) 등은 시와 예술 작품에서 그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스 클로드 드 생 마르탱(Louis Claude de Saint-Martin, 1743-1803)같은 이가 뵘의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18-19세기에 이르러는 러시아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복고풍의 시인으로서 유명한 요한 쉐플러(Johann Scheffler)는 Cherubinischer Wandersmann(1657)이라는 저술과 신비적 경향을 띈 Vade mecum이라는 시로서 오늘날까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영향을 끼치고 있다. 18-19세기에 이르러 뵘은 자신의 고향에서 새로운 관심과 평가를 받게 되었다. 프레드리히 크리스토프 외틴게르(Friedrich Christoph Oetinger, 1702-1782)는 신학자이며 경건주의자로서 하느님 구원의 궁극적 목적은 물질에 있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신학과 연금술, 그리고 철학적 신비주의를 연결시키려 하였다. 루터파 신학자들과 버금가는 가톨릭 신학자로서는 프란즈 사베르 바아더(Franz Xaver von Baader, 1765-1841)가 있는데 그는 쉘링과 더불어 초기 뮨헨 낭만주의파에 속한다. 루디빅 티엑(Ludwig Tieck)과 프레드릭 폰 하덴베르그-노발리스(Friedrich von Hardenberg-Novalis)등과 같은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뵘의 후기 영향은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계속되어 러시아의 솔로비에브(Solovyev)와 베르디애브(Berdyaev)에게까지, 인간학에서는 괴테(Goethe)를 거쳐 루돌프 스타이너(Rudolf Steiner)에게까지, 심리학 분야에서는 융(C.G. Jung)에게까지 계속되고 있다. 

 

독일 영성?신비 사상의 또 다른 줄기는 로지쿠르시안적(Rosicrucians) 사상이다. 젊은 신비철학자인 요한 발렌틴 안드레(Johann Valentin Andreae)는 뵘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Fama, Confessio, Chymische Hochzeit Christiani Rosenkreuz 등과 같은 저술들을 1614년과 1616년 사이에 익명으로 출판했다. 이 작품들은 우주적 진리로 묘사되는 영적 태도, 즉 내성 혹은 자아인식이라는 내부를 향한 신비적 움직임에 세상에 대한 지식이라는 외향으로서의 화학적 움직임이 더해지는 모습의 영적 태도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으로서, 그 핵심에 인간의 변화와 영적 쇄신의 신비가 담겨있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은 다음과 같은 주문에 잘 나타나 있다: Ex deo nascimur, in Jesu mormur, per spiritum reviviscimus (하느님에게서 태어나, 예수 안에서 죽으니, 성령에 의해 새로 태어나도다). 이러한 사상은 점차로 그 필요에 따라 크고 작은 은밀한 조직으로 갈라져 나갔다. 이와 같이 독일 신비주의는 뵘의 신비철학, 연금술, 로지쿠르시안적 사상이 연합적으로 발전하며 내적 체험을 중시하는 비밀스런 그리스도교적 경향으로 발전해 갔다. 

 

내적 체험과 그것을 통한 인간의 내적 변모를 중요하게 여기는 영적 환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신비적 경향은 그 후 여러 세기를 거쳐 계속해서 배척을 당해 왔다. 개신교의 주류와 합리주의는 늘 이러한 영적 경향을 배척하면서 발전해 왔다. 이러한 배척은 마틴 루터 시대로부터 칼 바르트(Karl Barth)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면서 '신비주의냐 아니면 하느님의 말씀이냐' 하는 표어에 보이는 바와 같이 변증적 신학 풍조 안에서 계속되었다. 1933년의 독일교회의 특정한 정치적 상황과 1945년 이후의 사정에 의해 뵘을 추종하는 폴 틸리히(Paul Tillich)와 쉘링과 같은 신학자들은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영성?신비 사상은 이제 금기가 된 것이다. 

 

바르트, 불트만(Bultmann), 본회퍼(Bonhoeffer) 이후의 사상적 변화는 후대의 역사신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종교 체험은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The Epistle to the Romans)에 의해 단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관심과 주목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양상의 명상을 통해 내적 삶에 다가가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정치 신학의 경향을 통한 사회 변혁의 문제들에 대해서 등안시 하지 않는다. 종교에 귀의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게 성찰되고 있다. 젊은이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비록 일부는 마약이나 인도 여행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신비주의 전통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차로 종교 체험에 대한 증언에 더 많은 관심과 정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카톨릭교회나 개신교에서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에 대한 주제로 강연회를 열어 수많은 이들이 참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뵘이나 외틴게르 같은 신비가들의 사상이 새롭게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물론 그리스도교의 영성?신비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우리 시대에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하겠다. 우리 시대에게 제시하는 도전은 개혁이란 바로 인간 내부의 개혁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Cheslyn Jones, Geoffrey Wainwright, Edward Yarnold, S.J. (ed.). The Study of Spiritualit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6). Dom Jean Leclercq, Dom Francois Vandenbroucke, Louis Bouyer. The Spirituality of the Middle Ages (New York: The Seabury Press, 1968). Oliver Davies. The Rhineland Mystics (New York: Crossroad, 1989). Gordon S. Wakefield (ed.), "German spirituality" in 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Christian Spirituality (Philadelphia: The Westminter Press,1983), 169-172.

 

[한국가톨릭대사전 3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6, 1835-1837 / 심종혁(예수회 신부, 서강대학교 수도자대학원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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