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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한국 교회 영성의 현주소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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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135

한국 교회 영성의 현주소와 전망

 

 

21세기와 제삼천년기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한국 교회 영성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미래 전망을 모색하는 일은 교회의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주요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작업이라고 본다. 하지만 영성전문가가 아닌 처지에서 이렇듯 중요한 주제에 관해 체계적으로 논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사안 자체가 한국 교회의 미래 역운(歷運)에 직결되어 있다고 믿어온 터여서 주어진 기회에 전문가들의 기탄없는 질정을 기대하면서 평소의 생각을 토로하게 되었다.

 

영성은 종교 안에서 일반적으로 종교 구성원 개인의 신에 대한 인격적 관계의 처지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해당 종교의 고유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국 교회 영성은 당신 자신을 창조 이래 계시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인의 응답적 처신으로서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가는 한국 신앙인의 삶의 자세로 규정될 수 있다. 요청에 따라서 먼저, 한국 교회 영성의 특성을 제시하여 그 현주소를 파악하고자 시도하며, 이어서 새로운 시대에 요청되는 한국 교회 영성의 기본 입장을 소묘하는 가운데 미래 전망을 모색하기로 한다.

 


I. 한국 교회 영성의 현주소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는 다양하고 상충되기까지 하는 영성 유형들이 혼재하기 때문에 영성의 현주소를 간단히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교회 안에는 초기 이래 계승되는 전통적 영성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외부로부터 유입되거나 한국 교회 안에서 자생한 새로운 영성 유형, 일부 교회구성원들 안에서 형성된 사회적 영성, 그리고 신앙교리?성서의 교육열과 영성적 삶의 추구열을 통해 형성되는 심화된 영성의 잠재적 가능성 등 상호 연관되면서도 간단히 동일시할 수 없는 영성의 흐름들이 드러나고 있다.

 

 

1. 우선적으로, 한국 교회 안에는 순교적 영성, 내세-종말론적 영성, 그리고 사주구령적 영성(事主救靈的 靈性)으로 특징지어지는 일단의 전통적 영성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1.1. 한국 교회 안에는 구원(救援)의 진리를 향한 열렬한 구도자세와 진리를 위해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 자세로서의 순교적 영성과 박해가 끝난 19 세기 이래 현세를 무상한 여정으로 간주하면서 현세에서 착하게 살아 복되게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내세에서 영복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에서 형성된 내세?종말론적 영성, 그리고 주님의 뜻에 따라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을 섬기며 성사생활에 열심히 참여하는 가운데 형성된 사주구령적 영성 일단의 전통적 영성의 흐름이 성체, 예수성심, 성모, 성인, 순교 신심 내지 영성 등 다양한 양식으로서 여러 신심단체들과 수도회 및 제3회들을 중심으로 오늘날에도 교회생활 전체에 광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 영성은 사회 구원보다는 개인 구원에 치중하는 성향을 대체적으로 드러낸다고 지적할 수 있다. 지난 80년대 이래 한국 교회가 점차 중산층화되어 서민 내지 빈민 계층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교회 내외로부터 발해지고 있는데 개인 위주적인 전통적 영성이 사회 중산층에 해당하는 다수의 신자들에게서 광범하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1.2. 하지만, 한국 교회 안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특정한 사회적 영성이 일부 계층에게서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한국 교회가 1960년대부터 급속도로 진행되는 사회 변화 과정 안에서 산업발전과 국가안보의 명목으로 인간의 기본권이 제약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일부 성직자와 일반 신자들을 중심으로하여 인권 옹호와 정의 구현 등 사회 공동선 증진을 위해 투신하였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 단계로 접어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 일부 구성원들이 보여준 민주?정의 사회의 구현을 위한 불굴의 노력과 민족통일을 위한 적극적 투신의 자세와 전통적 사회복지 활동의 강화 안에서 사회적 영성이라고 볼 수 있는 영성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은 괄목할만한 수준이다. 한국 교회는 빈곤과 질병, 그리고 무지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소외계층을 위해서 수많은 복지시설과 의료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운영경비를 정부로부터 받고 있기도 하지만, 상당수 복지시설들은 일부 교회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하여 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외된 동포들의 복지를 위한 활발한 봉사활동은 여타 사회 집단에게도 귀감이 될 정도이다. 그리고 90년대 이래 외국 복지단체나 시설과 북한 동포들에게까지 나눔의 손길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나눔과 섬김을 생활화하는 많은 수도자들과 일반 신자들의 봉사활동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셨던 주님 그리스도를 뒤따르려는 사회적 영성에 기인한다고 볼 것이다.

 

1.3.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한국 교회 안에서도 신앙교육과 성서연구가 교회 당국이나 여러 유관 단체들의 주관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성서 교육 내지 연구 활동은 많은 수많은 성서연구단체의 노력과 일반 신자들의 열띤 호응으로 범교회적으로 확산되어 괄목할만한 결실을 맺고 있는 중이다. 또한, 60년대 이래 레지오 마리애를 위시하여 훠콜라레, 꾸르실료, MBW, 성령쇄신, 행복한 가정 운동 등 주로 외국 교회에서 전래된 여러 신심단체 내지 신앙쇄신운동이나 각종 신앙 연수와 영적 피정시설에 교회 구성원들이 자벌적으로 참가하여 보다 적극적이고 깊이있게 신앙생활을 영위하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비상한 교육?연구와 신앙쇄신 내지 심화 열의가 한국교회 일반과 구성원들의 영성의 특성으로 꼽힐만하다.

 

한국 교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쇠퇴단계로 접어든 서방 구미교회나 지속적인 침체 내지 위축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본이나 대만, 그리고 중국 등 인접지역 교회들과는 대조적으로 약동적 성장세를 계속 유지하여 국민대비 8.8%를 상회하는 400만 이상의 신자를 포용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이러한 역동성은 순교적 영성을 위시한 전통적 영성의 계승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형성된 다양한 유형의 영성의 활력에 기인한다고 풀이할 수 있다.

 

 

2. 그런데, 현대 한국 교회안에서 발견되는 그리 밝지않은 영성의 면모에서도 한국 교회 영성의 현주소가 함께 드러난다고 본다.

 

2.1. 사회 안에서의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진행되는 교회의 세속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교회 영성의 빈곤 내지 공동화 징후가 드러난다. 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의 세속사회적 관료화 경향과 신자들의 성사생활의 등한시 풍조가 확산되는 한편, 교회 활동의 일반 사회활동과의 구별이 모호해지면서 구원의 성사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이 약화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서 유혹과 싸우며 성령의 힘으로 세상을 성화시켜야 하는데 요즘은 거꾸로 세속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교회에까지 침투해 교회를 속화시키고 있어요.” 한국 교회 안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는 재속 교구 성직자들이 실제로 관료적이고 행정적 역할을 거의 전담하고 영성적 삶을 상대적으로 소홀히하면서 권위주의적 처신에 젖어들기에 이르렀다. 한국 교회 주교단도 대희년에 발표한 과거사 반성 문건 “쇄신과 화해”에서 성직자들이 권위주의에 빠지거나 세상 풍조를 따르는 때가 많았음을 시인하고 있다. “우리 성직자들도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귀감이 되지 못하고 권위주의에 빠지거나 외적 성장에 지나친 관심을 두는 등 세상 풍조를 따르는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신앙 생활을 진실하고 깊이있게 살고자 하는 수많은 신자들의 정당한 소망과 갈망이 관료화된 교회 당국자들에 의해 적절히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위 ‘냉담자’들이 늘고 있음이 사실이다. 오늘날 결코 건전하다고 보기 힘든 신비적이고 주술적 유형의 유사종교생활에 빠져드는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영체험 내지 신비체험에 대한 열망이나 갈구가 교회 안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데 실망하고 신비적 영(靈) 내지 기(氣)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고 알려진 유사 신비운동 단체에 많은 신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 결국, 영성의 빈곤 내지 진정성 결여가 한국교회 영성의 현주소를 대표적으로 가리키는 지표로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우스개 소리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오간다. “천당에는 우리 성직자들의 입과 수도자들의 귀, 그리고 일반 신자들의 신발들로 가득하다.” 다분히 자조적으로 들리는 이러한 농담 속에 한국 교회 영성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한 통찰이 담겨 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지도층이자 지배계층이기도한 성직자들은 입만 열면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말하지만, 이 진리와 사랑을 진정 깊이있게 생활한다고 스스로 생각지 않는다. 많은 경우 성직자들의 보조자처럼 살고 있는 다수 수도자들이 서원으로 발한 복음삼덕에 따라 생활하기 위해 훌륭한 영성지도자들이 주관하는 연수회나 피정일정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여 열심히 귀로 듣기는 하지만, 미처 삶 안으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채 살고 있음을 자인한다. 그리고 일반 신자들은 교회 당국의 지시에 따라 좋다고 알려진 곳을 두루 다니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노력하기는 하지만, 아직 표피에 머물고 내면에 미처 깊이 뿌리내리지 않은 처지에 살아가고 있는 처지에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3. 무엇보다, 인간성 황폐와 생태계 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상황에 처하여 전체 그리스도교 영성이 전체적으로 새로운 전환 내지 도약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계는 그동안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추구하면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영성가들을 무수히 배출해 왔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 영성 안에서 자연계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신앙생활에서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자연계는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에 의해 관리되고 지배당하는 ‘객체’로 머물렀을뿐, 유기적으로 유대를 맺고 있는 운명 공동체 가족으로서의 ‘주체’로 인정되지 못하였다. 특히, 자연계는 산업혁명 이후에 인간에 의해 대규모로 정복되고 착취당하면서 급기야 인간을 포함한 생명계 전체의 생존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기에 이르렀다. 자연계를 간과하고 추구되는 인간구원 신앙에 정초한 고금의 그리스도교 영성이 현금의 생태계 위기와 무관하다고 보기힘든 처지에 있다.

 

 

II. 새로운 시대의 한국 교회 영성의 전망

 

새로운 시대를 맞아 한국 교회 안에서 형성되기를 바라는 영성의 특성을 대략적으로라도 소묘하고자 한다. 앞으로 한국 교회 영성은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와 ‘시대의 징표’에 부응하여 ‘온생명존중적 영성’의 새로움을 지닐 것을 요청받는다고 본다. 

 

 

1. 한국 교회 안에서 앞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영성도 규범이자 원천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에 정초해야 할 것이다. “영성 논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으로 자기를 내어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례가 영성신앙의 중심이 됩니다. 필립보서 2장 5-12절에 있는 예전대로 인간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비추고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영성의 본질입니다” 다양하기 그지없는 재래의 신심형태들에 비해서 현금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 교회 영성의 기준이자 중심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집중이 보다 더 선명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교회적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분과 그의 교회를 통해서 하느님께 향하는 객관성을 지닌 공동체적 영성으로서 교회-제도적인 소인을 지닌다. 하지만 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영성 안에서 신자 개개인이나 단체가 하느님과의 구체적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할 특정한 자유공간이 존재한다는 점도 아울러 역설될 필요가 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1 데살 5,19). 교회 영성에는 교회-제도적인 공통적 소인과 함께 유일하고 특수한 개인-자발적 소인이 포함되어 있게 마련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는 하느님과 인류, 그리고 인류 상호간의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주는 표지이자 도구로서의 ‘성사(聖事)’로 파악되어 있다. 이 일치는 하느님의 세 위격들로서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서 이루어진 진리와 사랑 안에서의 삼위일체적 일치에 정초하고 있다. 교회 영성의 제도적이고 개인적 요소의 관계는 삼위일체적 친교-일치를 반영하여 진리와 사랑 안에서 상호존중의 자세로 맺어져야 할 것이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 헌장”을 통해서 인류역사의 과정이 우연한 사건들의 단순한 집적이 아니고 하느님에 의해 인도되고 있음을 ‘시대의 징표’를 통해 유의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대의 징표’는 현대세계 안에서 인종, 종교, 이념, 성, 직업 등을 초월하여 범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형성된 새로운 정신자세나 운동과 역사의 조류들을 뜻하면서 진리와 정의, 사랑과 자유 등의 가치에 상응하는 개방과 일치, 그리고 협력과 관용을 드러내는 자세들을 지칭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표출되는 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 교회 안에서도 시대의 징표에 부응하여 하느님과 인류, 인류 상호간, 그리고 인류와 자연계와의 화해와 일치를 표시하고 이룩하는 ‘온생명존중적 영성’이 새롭게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90년대 이래 한국 교회 일각에서도 환경 보호 운동이 일고 점차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교회 구성원 전체의 신앙생활 깊이 작용을 미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생명존중적 영성은 ‘참 생명’이신 하느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정초한다. 교회의 성사성을 현실 세계 안에서 실질적으로 구현하게 될 이 영성은 그리스도교계의 일치운동, 이웃 종교들과의 관계증진 노력, 그리고 선의의 다른 개인 및 단체들과의 협력을 통하여 심도있게 형성될 것이다. 

 

한국 교회 영성은 세계 안에서 악표양으로 작용하는 그리스도교계의 분열을 지양하고 형제적 일치를 도모하는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인류 공동의 염원과 난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리스도교계 공동의 기도와 복음의 공동 청취를 통한 공동선 증진 노력 등이 교회 일치와 성사성 실현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는 세계로부터 가해지는 도전에 응답하기 위해 이웃 종교들과 심도깊은 차원에서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대화에서 논의되는 공동적 묵상, 수행방법의 실시, 잠심, 영적 체험의 심화가 공동대화의 기초가 될 것이며, 이웃 종교들의 영성 전통과의 대화를 통하여 교회와 신자들은 자기 영성의 고유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 교단과 이웃 종교, 그리고 선의의 모든 개인과 단체들과의 해후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인류의 공동선 증진과 생태계 보존을 위한 실천적 행동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지구촌이 된 세계 안에서 생태계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협소한 시각의 자기중심적인 신앙입장과 실천자세를 탈피하여 구원 문제를 범세계적이고 범우주적 차원에서 모색하는 통합적 영성이 절박하게 요청된다.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계가 구별되면서도 결코 분리되지 않는 상호침투적인 관계를 맺는 입장의 정립노력을 통하여 각기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는 새로운 통합적 영성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

 

 

3. 현대 세계 안에 소유와 지배에 정향된  ‘죽음의 문화’ 만연해 있다. 게다가 경악을 금치못할 정도로 급속히 발전하는 기계기술과 생명공학에 의거하여 명실공히 새로운 생명문화가 조만간에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험관 아기와 같은 체외 수정에 의한 생명탄생의 수준을 근본적으로 탈피하여, 복제양 돌리(Dolly) 탄생이래 체세포(體細胞)를 활용한 복제 생명이 소나 쥐들을 위시한 여러 동물들에게서 이미 탄생하였으며, 그리스도 교회를 위시한 여러 집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만간에 인간에게서도 탄생할 것으로 전망되며, 유전체 ‘게놈’(genome) 염기서열 해독의 완료와 함께 소위 ‘맞춤 인간’ 생성 노력에도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수태와 출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손길이 두루 미치는 가운데 재래의 생명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생명문화가 형성되어 자연계와 인간 사회 전체에 충격적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격변기에 ‘죽음의 문화’와 대조되는 ‘생명과 사랑의 문화’ 형태로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 실현되었듯이 온 생명과 더불어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는 형제?자매적 친교 공동체 건설’에 투신해야 할 것이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피조물로서의 온 생명계와 인류 가족이 실제로 형제?자매적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 상황 속에서 주어진 거의 유일한 대안적 삶의 형태이다. 그런데 이러한 친교공동체는 구성원 각자의 영성적 심화가 전제되지 않고는 실현되기 힘들다. 진정한 형제?자매적 공동체적 삶과 영성이 뒷받침 될 때에 진정한 나눔과 섬김의 삶이 가능하게 되고, 이러한 삶으로써 영성 빈곤에 처한 한국 교회가 영적 활력을 지니며 구원의 성사로서의 정체성을 올바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의 미래 역운에 관건이 되는 영성의 심화를 위해서 토착화 작업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본다. 새로운 시대에 한국 교회는 노쇠한 서방 구미 교회 못지 않게 세계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다른 지역교회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신학사상과 신심운동 내지 영성생활 양식에서 나름대로 고유한 면모를 지닐 수 있도록 세계와 인류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한국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실정에 적합한 영성생활 모델을 정립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지성보다 감성과 직관에 더 많이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신앙생활에서도 핵심적 역할은 머리로 인식하는 지정보다 감성이나 직관이 담당하고 있는 편이다. 한국인들은 지성에 의거 논리-분석적 삶의 자세를 지니는 서양인들과는 다른 성격의 신앙적이고 영성적 삶을 살고 있다. 한국 교회와 구성원들은 자신들인에게 적합한 방법을 통해서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깨달아 보다 심도깊은 일치에 도달하여 성숙한 신앙과 영성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 안에서 협소한 자기중심적 자세를 탈피하여 인간 생명만이 아닌 온 생명과 일치하려는 통합적 영성 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도록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업이 한국 교회 구성원 모두에게, 특히 지도층들에게 부과되어 있다고 믿는다.

 

 

III. 맺는 말

 

새로운 시대를 맞아 한국 교회는 사회와 교회의 여러 영역 안에서 자신에게 부과되는 과업을 책임있게 수행하려는 자세를 나름으로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대희년을 맞아 보이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범을 본받아 민족 앞에서의 교회의 잘못에 대하여 참회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하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선의의 모든 사람과 더불어 더 나은 세상,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노력”하고자 다짐하였다. 차제에 종교로서의 진정성이 관건이 되는 한국 교회 영성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미래의 진로를 모색하려는 시도가 한국사목연구소 측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획기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한국 교회와 신자들은 인간에 의해 조종되고 지배될 수 있게 된 모든 생명과 자연계를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의 창조물로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현실적으로 거의 고착화되다시피한 ‘반생명적 지배-복종 관계의 죽음의 문화’를 지양하고 ‘나눔-섬김의 형제자매적 생명과 사랑의 문화’를 실현하고자 선의의 모든 개인과 단체들과 공동 노력을 적극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신자들부터 앞장서 비복음적이고 반생명적인 소유와 지배 정향의 생활 양식으로부터 나눔과 섬김을 지향하는 생활양식으로 철저한 전환, 곧 회개를 이룩함으로써 생명 수호 과업에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 안에서 이러한 온 생명존중적 영성이 꽃필 때에, 한국 교회와 신자들이 반생명적 죽음의 문화를 생명적 사랑의 문화로 변형시키는 빛과 소금으로서의 하느님 나라 역군 역할을 바르게 수행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 각주가 포함된 내용은 첨부 파일을 참조하세요.

 

[심상태 신부(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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