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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신영성 운동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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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0 ㅣ No.138

신영성 운동의 도전

 

 

‘보이지 않는 종교’의 확산

 

산업사회로부터 정보화사회로 접어들면서 나타난 종교적 변화의 하나는 신자공동체나 교계제도, 물리적 시설, 집단적인 예배의식 등을 갖추지 않은 이른바 ‘보이지 않는 종교’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뉴에이지 운동’과 일본에서 등장한 ‘정신세계 운동’,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확산되고 있는 ‘기(氣) 수련 운동’의 일부는 새로운 문화 현상이면서도 종교적 성격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종교’ 또는 ‘대체종교’로 간주되기도 한다.

 

 

‘신영성 운동’의 성격

 

‘신영성 운동’이라 부르는 이들 운동의 일차적 목표는 정신적, 육체적인 건강과 평화를 추구하는 ‘치유’이다. 신영성 운동에서는 우주나 자연에는 그것을 존재토록 하는 생명력 또는 에너지가 있으며, 이것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들 운동에서는 이러한 에너지를 ‘우주적 에너지’, ‘신(神)’ 또는 ‘기’라 부른다. 따라서 신영성 운동에서는 신이나 하느님은 인간 역사와 만물을 섭리하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만물 안에 내재하는 존재이다.

 

신영성 운동에서는 인간에게 내재하는 우주적 에너지는 특수한 비술(秘術)이나 영술(靈術)을 통해 발휘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때 인간은 초능력을 행사하고 정신적·육체적으로도 건강과 평화를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러한 비술이나 영술을 통해 각 개인은 사회와 기성종교에 의해 억압적으로 형성된 ‘가식적인 자기’로부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영적 각성’을 이루게 되며, 그 결과 ‘새로운 사회’를 이루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영성 운동에서는 기공(氣功)·단전(丹田)·초월명상(TM)·염력(念力)·요가·마인드 컨트롤·초감각적 지각(ESP)·강신술(降神術)·공중부양·유체이탈 경험(OBE) 등 초능력을 발휘하는 특수한 수련 방법과 그것을 통한 영적 체험을 강조한다.

 

신영성 운동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교적 높은 교육수준과 안정된 직업을 가진 중산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운동은 주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민중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기존의 신흥종교들과는 구별된다. 또한 신영성 운동은 개개인의 건강과 안녕을 일차적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도 인권·사회정의·세계평화와 같은 보편적 가치나 공동선·인간애·해원상생과 같은 윤리 덕목을 강조하는 기존의 신흥종교들과는 차이를 나타낸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신영성 운동은 ‘신(新) 신종교 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영성 운동과 그리스도 신앙

 

신영성 운동은 여러 면에서 그리스도 신앙과 충돌한다.

 

우선, 신영성 운동에서 추구하는 신비 체험은 그리스도교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리스도교의 신비 체험은 특수한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체험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체험,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로부터 얻게 되는 은총이며, 과거 생활에 대한 회심과 하느님께 대한 순종을 수반하는 체험이다. 또한 이 체험은 자기 안에서만 머무는 체험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실현하고자 이웃과의 관계로 확대되는 체험이다. 그러나 신영성 운동에서 강조하는 신비 체험이란 하느님과의 만남이 아니라 우주나 자연 등 ‘전체’와의 조화 또는 합일의 체험이며, ‘위로부터’가 아니라 특수한 비술이나 영술을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체험이고, 자신의 개인적 세계에 집착토록 하는 체험이다. 따라서 신영성 운동에서 강조하는 신비 체험이란 일종의 ‘영적 나르시시즘’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은 우주 만물에 내재하기 때문에 만물이 곧 신”이라는 신영성 운동의 범재신론(汎在神論)도 유일신과 인격신의 개념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신앙과 충돌한다. 또한 우주의 물체적 에너지인 ‘기’는 인류 역사상 중요한 시기마다 위대한 인물로 육화(肉化)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 역시 우주적 에너지 또는 기가 육화된 것에 불과하다는 신영성 운동가들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영적 각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하려는 신영성 운동의 혼합주의적 성격은 윤리적 무차별주의를 수반할 가능성을 지니게 한다. 교황청과 한국교회가 여러 차례에 걸쳐 신영성 운동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점들 때문이다.

 

 

신영성 운동의 확산 원인

 

신영성 운동이 확산되는 기본적인 이유는 정보화와 세계화 추세에 따라 사람들의 종교적 욕구가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초월’이나 영적 체험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급증하고 있는 성령 체험, 무(巫) 체험, 기 체험 등에 대한 관심은 이를 잘 반영한다. 그러나 기존의 합리적인 교리 체계나 고정된 의례만으로는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또한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단편화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해답을 줄 수 있는 영적 지도자를 갈망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직자들은 신자공동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조직 행정가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며, 교회 구조 또한 사랑이 넘치는 일차 집단으로서 보다는 관료적 기구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낸다. 따라서 조직화되고 관료화된 사회 속에서 자아정체감과 자아존중감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열망에 능동적으로 부응하기 어렵다.

 

한편,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상생과 조화의 삶을 희구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은 그 동안 서구사회를 지배해 온 이원론적 패러다임보다는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시키고자 하는 동양사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불교를 비롯한 동양종교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신영성 운동의 등장은 탈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려면 현대인들의 종교적 욕구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함께, 그에 부응할 수 있는 사목적 프로그램의 개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의 구조와 행정에 대한 쇄신이 따라야 한다. 특히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여러 수도회의 영성 훈련과 수도 방법을 현대인들의 욕구와 생활에 적합하도록 체계화하고 보급하는 것은, 내적 치유와 영적 각성을 희구하는 현대인들의 종교적 욕구에 대응하는 데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잡지, 2003년 6월호, 노길명 요한(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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