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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한국 천주교회 노동사목 50돌 발자취: JOC(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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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9-29 ㅣ No.407

한국 천주교회 노동사목 50돌 발자취 - JOC(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

 

 

한국 천주교회에서 노동사목 출발시기는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가 출발한 1958년으로 잡는다. 교회(서울교구)가 가톨릭노동청년회(이하 가노청)를 인준하고 가노청을 통해 조직적 활동으로 노동사목을 시작한 것이 1958년이기 때문이다.

 

흔히 가노청이라고 하면 현장 노동자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1958년에 출발한 한국 가노청은 당시로서는 고급 직종인 서울대학교 병원 간호사와 간호과 학생들이 중심이었다. 그해 11월 16일에 명동대성당에서 노기남 주교 집전으로 투사선서식을 갖고 박명자(마리아) 송명숙(젬마)씨를 비롯한 9명의 투사가 탄생함으로써 공식적 첫발을 내디뎠다.

 

가노청 회원들은 성직자와 수도자의 지원으로 빈민촌의 무료진료와 환경개선 활동, 넝마주의를 돕는 방지거반 활동 등을 펼쳤다. 60년대 후반 도시화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교회는 이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활동을 다양하게 펴게 된다.

 

1968년 강화도 심도직물 사태와 특히 1970년 전태일 분신 자살 사건은 교회가 가톨릭 사회교리에 입각해 노동 현실에 적극 개입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하여 서울대교구는 1971년 도요안 신부를 위원장으로 하는 도시산업연구회를 설립한다. 교구에 노동사목 전담부서가 생기면서 가노청도 더욱 활력을 얻었고, 가톨릭노동장년회(가노장)이 발족한 것도 이 해였다.

 

도시산업연구회는 곧 도시산업사목위원회로 개칭, 가노청 투사 양성 및 파견, 보건센터 개소 등을 통해 노동자 의식 계발과 권리 회복을 비롯한 노동계 복음화에 기여했으며, 1979년에는 다시 이름을 노동사목위원회로 바꿨다. 그해에 서울대교구는 노동문제상담소를 설립, 법치에 입각한 노동문제 해결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노동문제상담소는 80년대 후반에 생겨난 교회 안팎의 많은 노동문제상담소들에 좋은 모범을 남겼다.

 

유신독재와 신군부 독재로 이어지던 70~80년대에 가노청은 노동자뿐 아니라 의식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제한 당하던 시대에 가노청은 신앙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가노청이 양적으로 성장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또한 가톨릭 운동 단체로서의 순수성을 일정 부분 상실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80년대 후반과 특히 90년대 이후에 노동계와 시민운동 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가노청은 투쟁을 통한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는 이들과 교회 정신으로 돌아가서 내적 성찰을 통한 복음화를 강조하는 이들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진통을 겪기에 이른다.

 

다른 한편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동남아 등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이들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교회는 외국인노동자상담소 등을 통해 이들에 대한 상담 및 지원 활동을 강화하게 된다.

 

2000년대에 들어와 이주노동자들이 훨씬 많고 다양해지면서 이주 노동사목도 기존의 상담 및 고충 처리 외에 각 민족별로 공동체를 형성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이와 함께 국제 결혼으로 인한 다문화 가정 문제가 노출되면서 이들에 대한 사목도 새로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주 노동자 및 다문화 가정을 위한 사목은 앞으로도 교회가 계속 수행해야 할 중요한 사목적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90년대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노동 환경의 변화로 노동사목의 대상은 기존의 1, 2차 산업 종사자에서 서비스 업종 종사자까지 확대됐다. 게다가 하도급 및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산업재해 문제, 노인 노동인구 문제 등도 등한시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허윤진 신부는 "이제는 노동사목에서 '노동'이라는 말을 '일' 또는 '직업'이라는 말로 바꿔야 할 정도로 노동사목의 영역 또는 대상이 다양해졌다"면서 이와 함께 "물질만능의 세태에서 젊은이들에게 일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도록 일이 지니는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올바로 일깨워주고 적합한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부분적으로는 가노청과 가노장의 활동을 통해서도 이뤄지고 있다. 특히 70~80년대에 가노청에서 활동하던 회원들은 이제 가노장 모임을 통해 자신과 주변의 복음화 활동을 소리없이 수행해 나가고 있다. 또 그 자녀들은 어린이 사도직 운동을 통해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영혼"을 가꾸어가고 있다. 노동사목을 출발시킨 가노청 역시 회원 수는 예전에 비해 턱없이 적지만 투쟁하는 투사(鬪士)가 아니라 복음의 빛에 입각한 성찰과 판단과 실천을 통해 자신과 삶의 현장의 복음화를 위해 몸을 바치는 투사(投士)의 길을 가고 있다. [평화신문, 2008년 9월 28일, 이창훈 기자]

 

 

가노청과 가노장, 어린이사도직 운동

 

 

가톨릭노동청년회는 벨기에의 카다인(1882-1967) 추기경이 설립해 1925년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국제적인 가톨릭노동운동 단체로, 관찰과 판단과 실천이라는 방법을 통해 노동자 자신과 주변 환경을 복음화하는 것을 기본 정신으로 한다.

 

가톨릭노동청년회는 한때 남녀 회원 수가 5000명이 넘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현재는 서울과 대구에서 7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보통 4~6명이 한 조를 이뤄 한 달에 2번 또는 2달에 3번 정도 모임을 갖고 관찰과 판단과 실천의 방법에 입각해서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고 식별하는 가운데 각자 삶의 현장에서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가톨릭노동장년회는 가톨릭노동청년회와 정신을 같이하면서 가톨릭노동청년회를 거쳐서 결혼한 이들의 모임이다. 이들 역시 조별로 정기 모임을 통해 생활 나눔을 하면서 자신과 가정 그리고 주변 환경의 복음화를 도모한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대구 마산에 모임이 있으며 전체 회원은 250명 정도.

 

가노청 및 가노장과 연관된 운동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국제어린이사도직운동(MIDADE)이 있다.

 

1928년에 프랑스에서 시작돼 1962년 국제 운동 기구로 창설된 어린이사도직운동은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생활 환경 속에서 삶을 체험하고 나누는 가운데 건강한 영혼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운동이다.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인천에서 시작돼 1992년 국제본부의 인준을 받았다. 현재는 서울과 인천 그리고 공주에 모임이 있다. [평화신문, 2008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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