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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프랑스 교회: 아픔으로 일깨우는 교회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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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5-24 ㅣ No.146

[세계 교회 동향] 프랑스 교회 - 아픔으로 일깨우는 교회의 사명

 

 

안동교구 울진본당에서 2년하고도 이틀을 살았더니, 지역에도, 기후에도 익숙해지고 신자들의 취향이나 관심사도 어느 정도 파악해 일을 제대로 할 만큼 되었는데, 그때에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7월의 일입니다. 정들자 이별이 된 셈이네요. 그때 여러 분들이 “이 좋은 곳을 두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울진지역은 정말 살기 좋은 곳입니다. 바다 있지요, 산이 바로 곁이지요, 철따라 특산품들이 즐비하고요. 교통사정 때문에 산업시설들이 이곳을 외면한 덕분에 산천이 사람 손을 타지 않아 말 그대로 청정지역입니다. 게다가 사람들 말씨는 투박해도 속정이 깊고요, 신자들도 무슨 일이든 해내는 저력을 가진 곳입니다. 이 복 받은 곳을 두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더라고요.

 

그곳은 지난해 11월에 온 프랑스 땅 보몽-쉬르-싸르뜨(Beaumont sur Sarthe)라는 곳입니다. 파리 서쪽으로 이백 킬로미터 떨어졌는데, 어느 자동차 이름을 상기시키는 도시, 르망(Le Mans) 교구에 속한 본당입니다.

 

 

부르심을 따라 르망 교구로

 

이곳에 느닷없이(?) 오게 된 동기는, 지난해 1월에 주교품을 받은 르망 교구장님이 저에게 사제가 너무나 부족한 자신의 교구를 도와달라고 해서입니다. 지난 2000년까지 이 교구에서 살았던 것도 한 계기가 되었고, 옛날 우리나라에 와서 전교하다가 순교하신 성 시메온 베르뇌(Simeon Berneux) 장 주교님의 고향 교구이기도 한데다가, 우리를 그렇게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생각하니 거절하기가 어려웠고, 또 한편으로는, 어디든지 불러주시는 곳이라면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오기 전에 이곳 총대리 신부님한테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에는 7개 본당이던 것이 2년 전에 하나로 통합되었는데 주민이 1만 2천이고(이곳은 대부분이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신자만 따로 세지 않네요.), 사제관은 보몽에 있는데, 10여 년 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아,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다고요. 시에서 공사를 곧 시작한다 했으니(1905년 교회 재산이 국유화되었기 때문임), 늦어도 성탄 전에는 입주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동안에는 임시거처에서 지내면 되는데, 정원이 정말 멋있고 조용하여 사제관으로서는 탐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좀 속은 기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제관은 공사는커녕 수리할 도면도 마련되지 않았더라고요. 몇 달이 지나서 공사를 시작하긴 했으나 진행 속도로 보면 언제 끝날지는 주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김치를 곁들인 식단에 숙연해지고

 

이곳 삶은 어떠냐고요? 적응이 문제일 텐데, 시간이 좀 필요하겠네요. 사제관과 숙소가 떨어져 있어 늘 왔다 갔다 하다보니 아직 주변정리가 되지 않네요. ‘포도청’ 상납하는 일도 만만찮습니다.

 

밥때가 되면 일하다가도 되돌아와서 먹을 준비를 하는데 두 시 가까이나 돼야 점심 먹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채소를 많이 넣고 곰탕국을 한 솥 끓였더니 번번이 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늘 같은 것을 먹으니 한 3일 뒤에는 입맛이 변하는 단점도 있더라고요.

 

식단을 바꿔보자 싶어, 인천 주안3동 주임신부님에게, 김치 먹을 생각만 해도 그냥 입에 침이 돈다면서, 우리밀라면과 울진에서 만든 김치를 부쳐달라 했더니, 항공편으로 곧바로 보내주었습니다. 감사했는데, 어느 날에는 떡 하니 김치를 곁들여놓고 식사 전 기도를 하고 나니 갑자기 숙연해지더라고요.

 

제가 개발한 요리를 하나 소개할까요? 제 주특기는 솜씨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있는 대로 다 넣고 끓이는 겁니다. 그래도 순서는 있어, 먼저 기름을 넣고 양파를 볶으면 맛있는 냄새가 나요. 이어서 호박, 당근, 버섯, 무 등을 내 식대로 넣고, 소금도 간간이 뿌리면서 마늘과 생강을 잘게 썰어 투입한 뒤, 냉동 조갯살과 새우나 물고기를 넣고서 고추장을 좀 풀면 정말 맛있는 찌개가 되는데, 제가 개발한 것이라 이름 하여 ‘가롤로표 찌개!’

 

 

더 열악해진 프랑스 교회의 모습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프랑스 교회의 현재 모습은 전보다 더 열악해진 듯합니다. 우선 사제 수 감소는 진행형이고, 사제성소나 수도성소가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빈자리 메울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주일학교는 4년간 지속되지만, 첫영성체나 신앙고백식(아동이 주일학교 4년을 마칠 즈음이면 12세 정도 되는데, 그때 신앙고백식을 거행함)을 하는 아이들이 일상기도는 물론이거니와 성호경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신앙고백식을 거행한 그 다음날부터 주일 미사도 ‘졸업’하는 예는 여전합니다.

 

유아세례가 신앙 차원에서 거행되기보다는 가족끼리 잔치를 하는 방편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혼배는 전통에 따라 성당에서 거행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의례적 행사에 그칩니다.

 

이혼한 사람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는 말하지 않더라도, 혼인식 다음날부터 자녀들 세례 때까지 성당에 발도 들여놓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하나둘인가요. 그러고보면, 종교생활이 신앙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문화의 일부분이 되어 프랑스 땅에서 태어났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보는 듯합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던 사람들도 다 장례식은 성당에서 치르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주일 미사를 잘 챙기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느님 말씀은 미사 중에 들은 것으로 만족하거나, 교리나 성경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아직은 잘 보이지 않고,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을 떼어놓고 사는 듯합니다. 사제 수의 감소로 평신도의 참여가 증가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아쉬운 점이 보입니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아픔

 

최근 들어 일부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사건 때문에 가톨릭교회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아동성추행의 85%는 가정 안에서 일어나며, 교사나 사제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는 전체의 2%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있어서는 아니 되는 일들이 일어났으며, 교회의 체면만 생각하고서 사건을 덮어버리려 했던 것 때문에 오히려 지금 와서 더 크게 문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 교회가 안팎으로 아픔을 겪는 듯합니다. 쇠퇴하여 곧 쓰러질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가 그냥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또 교회는 하느님의 일입니다. 주님이 이끄시는 것이니 주님이 알아서 잘 이끌어가실 겁니다. 다만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아픔이기에, 우리에게는 배울 것이 있다고 여깁니다. 옛날에는 그리도 융성(?)해 보이던 교회가 무엇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요?

 

 

우리가 얻는 교훈

 

한국 교회는 짧은 시간 동안 크게 성장했습니다. 신자도 늘었고, 그 가운데는 사회에서도 큰 몫을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재력도 있습니다. 외면으로 본다면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위험도 있습니다.

 

프랑스 교회도 한때는 막강한 재산과 큰 권력을 지녔습니다. 주교는 도지사의 권력과 영예를 누렸고, 주임신부는 지방 유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말씀보다는 권력과 부를 찾았습니다. 위계질서를 앞세우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가 형제라는 사랑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복음에 의해, 복음 때문에 살지 않는 교회는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 껍데기를 자신이 깨트려버리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합니다. 스스로 가난해지지 않으면 남의 손에 의해서라도 가난해지게 되어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프랑스 혁명(1789년), 교회 재산의 몰수(1905년) 등이 그 예입니다. 1968년부터는 교회가 누리던 권위마저도 사라집니다. 부서질 대로 부서지면, 검불이 다 타버리고 나면, 새싹이 납니다. 지금이 그때인 듯합니다.

 

지금 프랑스 교회가 겪는 아픔은 교회의 신원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경고하면서 당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로지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사는 교회가 되라고.

 

* 이영길 가롤로 - 안동교구 신부. 1977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프랑스 르망 교구에 파견되어 보몽-쉬르-싸르뜨 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0년 5월호, 이영길 가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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