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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흥영성 운동의 현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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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208

신흥영성 운동의 현상 (8)

 

 

지난 호에서 신흥영성 운동의 식별이 왜 필요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제 식별의 원리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3) 식별의 원리

 

신흥영성 운동은 겉으로는 ‘그리스도교’를 인정하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교를 반대하고,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목적이나 지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묘한 것은 신흥영성 운동가들도 그리스도교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그 개념을 왜곡하여 오류에 빠트린다.

 

그들은 ‘하느님’을 비인격적인 실체요 모든 것에 충만한 에너지로 설명한다. ‘성령’을 창조적, 정신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에너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뉴에이지의 스승이며 자신이 하느님임을 깨달은 계몽된 인간으로, ‘사람’을 내적으로 선하고 신성하며 시간과 영원에 필요한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본다. 또한 ‘죄’를 자신 안의 신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죽음’을 사람이 하느님, 곧 우주의 편만한 에너지와 융합을 체험하고자 하는 순간으로 왜곡하여 그리스도교 사상을 소멸시켜 버린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영적 스승을 찾고 의식의 변용을 추구하면서 사악한 영의 영향력 아래 자신을 방치하게 한다. 삶의 기초를 ‘자신이 보기에 옳은 것’에 둠으로써 절대 진리를 거부한다. 결국, 하느님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섬세하고 철저한 식별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식별’이라는 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짚어보기로 하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우리가 여러 종교와 문화 속에서 ‘옳고 거룩한’ 것들과 ‘오류와 죄악’을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물론 이는 교회 차원의 과제이다. 신자 개인에게 맡겨질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적어도 한국 천주교회 전체의 차원, 주교회의, 교구의 차원에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식별하고자 할 때 그 과정에는 분리(Separation), 보존(Conservation), 변형(Transformation)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식별은 다음과 같은 접근원리를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첫째, 영의 식별을 한다.

 

‘영의 식별의 은사’(1요한 4,1; 1고린 2,13)를 통하여 신흥영성 운동의 본질과 실체를 파악하여 그 가운데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하도록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흥영성 운동은 학문의 전 분야에 걸쳐있기 때문에 평신도 전문가들의 진지한 연구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동양의 종교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신비주의적인 수행방법들에 대한 성찰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겠다. 이를 토대로 복음의 빛으로 판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 분리할 것은 분리한다.

 

밀교(비교)의식, 접신술(강신술) 등 ‘발칙한 것들’(신명 18장)은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오류에 빠진 문화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하느님께 믿음의 충실성을 보이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강조한 바와 같이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1요한 2,15). 예수님께서는 버림받은 자, 죄인들과 함께하셨지만 그는 어떤 종류의 문화적인 죄에도 타협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악과 싸우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이 ‘거룩함’ 속에 머물러있어야 한다. 우리는 죄악과 오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분리’의 길을 택해야 한다.

 

셋째, 보존할 것은 보존한다.

 

신흥영성 운동과 관련된 문화 가운데에도 ‘옳고 거룩한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포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예컨대, 그리스도교 심리학자와 뉴에이지의 심리학자 양자 모두는 유물론에 반대한다. 인간은 어떤 기계나 동물보다도 가치 있으며, 그러한 인간은 ‘영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곧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에 공감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거짓된 것을 정당화하고자 참된 것을 부분적으로 들여와서 내세울 경우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라고 해서 참된 것까지 몽땅 거짓된 것이라고 몰아세운다면 심각한 오류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를 빌미로 하여 종교혼합주의에 빠지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넷째, 시정할 것은 시정한다.

 

죄와 오류에 빠져있던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함과 진리로 변화시켜 주셨다. 이처럼 그리스도 교회는 세상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변화시킬 능력과 사명을 부여받았다. 바오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했다. 우리 인간은 이 땅을 다스리고, 복종시켜 쓸모 있게 만들고, 그곳에 거하는 모든 창조물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초석이 되도록 만들라는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처럼 ‘하느님의 나라’가 죄와 오류로 얼룩진 이 땅에 오도록 해야 한다. 교회가 아무런 능력도 없이 그저 유지되고 보존되는 데 그친다면 교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는 세상을 위한 성사가 되어야 한다.

 

역사는 그리스도인의 역동적인 힘이 세계를 변화시켰음을 말해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 세계를 변형시키고 서구 문명이 발전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정치적, 종교적 자유의 획득과 문학, 교육, 의술, 예술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노예제도의 폐지, 낙태 금지 등의 사회개혁을 주도하였다. 어떠한 경우든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로부터의 분리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것을 개선하고 변형시키고자 하는 소명(책임)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4) 교의적인 식별

 

이제 식별을 위한 구체적인 판별 기준을 제시해 보자. 우선 교의적인 판별 기준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교의적인 요소들이 발견되면 신흥영성 운동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1) 신관

 

- ‘모든 것이 신이다.’라는 범신론을 내세운다. 

- ‘신은 만물 안에 존재한다.’라는 범재신론을 내세운다.

-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초월적 인격신의 개념을 부정한다. 

- 신을 흔히 생명력과 같은 우주적 에너지 또는 ‘기(氣)’로 간주한다. 그래서 신을 절대 존재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process)’으로 여기고, 종래의 ‘종교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영적(spiritual)’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2) 우주관

 

- ‘모든 것이 하나다.’라는 단일론(monism)을 내세운다.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일원론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일원론은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로 수렴된다는 사상이나 현존하는 현상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단일론은 차별이나 구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합치(合致)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흥영성 운동은 현상세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믿는다.

 

- ‘단일론’의 또 다른 표현인 전체론(Holism)을 표방한다. 전체론은 범신론적인 성격이 강하다. 모든 것은 하나이고,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존재하므로 한 인간의 영혼이 우주의 핵심이며 반대로 우주의 핵심은 인간의 영혼이 된다는 생각이다. 이 전체론의 개념에서 인간 개체는 특별한 의미나 가치가 없다. 이런 관점은 인간을 하느님의 창조물이 아니라 응축된 힘의 집합체에 불과하다고 본다. 신흥영성 운동은 이 전체론, 곧 대우주와 소우주의 합일을 육적·영적 세계의 전인적 건강에 적용한다. 이들에게 건강은 질병 치료뿐 아니라 육체와 정신과 영을 치료하여 인간을 그 일체, 전체와 조화시키는 것이다.

 

- 우주가 자아 속에서 통일되어 있으며, 평범한 의식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보이는 우주’와 새로운 의식의 상태를 통해 접근이 가능한 ‘보이지 않는 우주’가 있다고 말한다.

 

- ‘자아’는 오관을 통해 직접 접근할 수 있고 자연과학에 의해 밝혀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보이는 우주’와 마약, 명상, 신접, 바이오피드백, 침술, 제식무(祭式舞), 특정한 음악과 같은 ‘인식의 통로’를 통해 접근이 가능한, ‘보이지 않는 우주’에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한다.

 

- ‘우주의식’을 강조한다. 우주의식에 중심이 되는 것은 단일성의 경험이다. 이를 3단계로 설명한다. 곧 먼저, 우주의 전체성을 인식하는 경험, 둘째, 전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험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와 하나 됨을 넘어서 자아가 모든 실재의 창조자임을 인식하는 경험이 있다고 한다.

 

- ‘네가 하느님임을 알라. 네가 우주임을 알라.’고 가르친다.

 

(3) 그리스도론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을 부정한다.

 

- 그리스도는 인간의식(소우주)이 우주의식(대우주)으로 융해되어 에너지의 변화를 일으켜 변화될 수 있었던 ‘붓다(부처)’라고 가르친다.

 

-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힘을 가진 에너지일 뿐이라고 말한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은 바로 기(氣)가 육화한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이러한 에너지의 육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나 부처, 공자 등 위대한 종교적 인물들은 모두 똑같이 육화한 에너지, 또는 기(氣)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물체적 에너지인 기(氣)가 인류 역사상 중요한 시기마다 위대한 인물로 육화(肉化)되는데, 예수님, 부처, 공자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자라투스트라 등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도 이러한 에너지가 육화한 존재라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태양의 로고스(Logos)’, ‘땅의 로고스’, ‘우주적 의식’, ‘우주적 그리스도’ 또는 ‘빛 에너지’ 등으로 표현한다.

 

- 모든 인간이 의식을 확장시켜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메시지를(저 세상의 것을) 이 세상에 전하는 한 영매(무당)에 불과하다고 본다.

 

- 예수님은 외계에서 인간에게 그리스도 의식(모두 신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을 전해주려고 온 외계인이라고도 주장한다.

 

-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물질세계가 악하므로 그리스도는 실제로 육체를 입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출현이 거짓된 것, 또는 그림자로서 인간 예수님 안에 일시적으로 깃들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4) 구원관(救援觀)

 

- 부활, 천국, 영원한 생명을 부정한다.

 

-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환생한다.’는 윤회사상(輪回, samsara)을 믿는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내세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달래주는 기발한 대안이 바로 윤회설(輪回說)이라고 할 수 있다.

 

- 힌두교와 불교의 윤회론을 편리하게 보완한 윤회론을 전개한다. 힌두교와 불교는 다음 세상에서의 생(生)이 업(業, karma)에 따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고 가르치는 반면에, 신흥영성 운동에서는 영혼이 여러 번의 환생을 통하여 성숙하고 정화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불교나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환생과는 다르게 인간이 행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여러 번 태어나는 것이 진화하는 것이고, 이 진화의 결과로 인간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와 합일되는 완전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환생설을 과거와 연결시켜 전생을 읽는 방법들도 제시한다. 환생이 생의 형태를 바꾸어가면서 생을 거듭하는 것이므로 현재의 인간은 무수한 과거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특수한 방법을 이용하면 이 전생을 알 수 있고, 전생에서 원인이 된 것들을 찾아 치유하면 현재 경험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당들이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의 과거를 알아맞히거나 깨달은 이들이 과거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갖는 것, 최면을 통하여 전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5) 영성관

 

- 자연과 인간에 내재하는 신성(神性)이나 영성에 주목하면서 ‘영적 깨달음’을 추구한다.

 

- 깨달음과 신성에 이르고자 (초월) 명상, 요가, 강신술 등의 전통적인 종교 수행법 외에도, 서양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계시사상, 영지주의, 정신분석심리학, 과학이나 생태학의 성과 등을 구별없이 원용(援用)한다.

 

- 고급영성에 이르기 위한 방편으로 밀교적 신비주의를 활용한다. 밀교는 교리와 제도와 의식이 이중적이다. 공개되는 부분과 비공개적인 부분이 있다. 통일교가 이러한 밀교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핵심적인 교리와 제도, 의식은 핵심 내부인들에게만 은밀히 알려져 있다. 밀교는 그 은밀한 비공개성 때문에 황당무계한 신앙을 저마다 제멋대로 전수하였고 이러한 모순된 신앙에 대한 객관적 이성적 비판과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에서 사라졌다. 밀교는 불교처럼 엘리트적인 소수만이 득도와 수행을 통해 영적 각성에 이르는 것을 우월한 것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다르다.

 

- 인간은 단전, 기공, 명상 등과 같은 수행을 통해 잠재능력을 일깨움으로써 정신적, 육체적 평화를 얻을 뿐만 아니라 영적 존재와 교감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교의 신비 체험은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은총의 선물이지만 신흥영성 운동은 특수한 비술이나 영술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체험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6) 윤리관

 

- 모든 진리와 가치의 척도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 단일론에 입각하여 모든 것은 결국 똑같다고 말한다. 서로 구별되는 요소들, 곧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합리성과 비합리성, 과학과 주술,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 천사와 악마, 과거와 미래 등을 무차별하게 합일시키려 한다. 결국 신흥영성 운동은, 선(善)이나 악(惡)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이분법적 사고의 산물이고 타율적으로 부여된 절대 기준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한다.

 

- ‘모든 것은 선하다.’고 하면서 선과 악, 죄 등을 부정한다. 본래 자연적인 것은 모두가 ‘선’한 것인데 그리스도교가 인위적으로 선과 악의 기준과 경계를 만들어놓음으로써 원래 없었던 ‘악’의 개념과 죄의식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대적하여 싸운 악과 악령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윤리관을 내세운다. 절대 윤리관을 희석하는 자율 윤리관, 나아가 윤리적 무차별주의를 내세워 그리스도교의 윤리관을 파괴하려 한다. 이는 회개와 심판 자체까지도 부정하는 거짓 이론인 것이다.

 

- 영적 깨달음이나 초능력의 발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방법도 동원될 수 있다는 신념과 어우러져서 윤리적인 타락과 거룩함을 뒤섞어놓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저들 가운데 마약과 그룹섹스를 정당한 수행(修行)의 방법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이다.

 

[사목, 2004년 11월호, 차동엽(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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