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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교정사목] 바람직한 교정사목을 위하여: 감옥 안에서부터 사회에 정착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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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6 ㅣ No.432

[경향 돋보기] 바람직한 교정사목을 위하여


감옥 안에서부터 사회에 정착할 때까지

 

 

교정사목의 초점은 감옥 바깥에

 

흔히들 ‘교정사목’ 하면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옥에 갇힌 수인들의 종교생활을 도와 건전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갇혀있는 사람의 처지에서 볼 때 교정사목을 통한 외부지원 또는 외부와 소통은 자기개발에 대단히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아직 한국의 교정시설이나 제도가 인성개발에 초점을 맞출 만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정사목에 거는 기대와 역할은 여전히 크다. 그러나 감옥에서 13여 년을 보낸 필자는 교정사목의 초점은 감옥 안이 아니라 감옥 바깥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말은 현재 하고 있는 감옥 안 교정사목을 그만두자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상으로 바깥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효과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초짜 교정사목위원들이 감옥에 들어와서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는 수인형제들을 보면 “어쩜 저렇게!” 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밖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열심과 정성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암기대회 같은 행사에 참석하여 머리를 빡빡 깎은 나이 어린 형제가 엄청난 분량의 성경구절을 줄줄 암기하는 것을 보면 그대로 ‘뻑’가고 만다. 게다가 행동거지마저 조신하고 예의바르다. 사목위원들은 그 형제에게 책에 용돈에 편지에 그야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형제의 마음속에 천사가 들어있는지 악마가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오랜 경력의 사목위원들은 적어도 몇 차례의 참담한 배신을 경험한 일이 있을 것이다. 한없이 믿고 신뢰했던 형제가 출소해서는 감쪽같이 사기를 치고 사라져 버렸다든지 집안일에 간섭하여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킨다든지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두 번 다시 교정사목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감옥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수인형제가 꼭 어떤 이익을 바라고 위선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개중에는 애초부터 그런 흑심을 품고 자신을 가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진심으로 열심히 한다. 문제는 끈기가 약하다보니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흔들리는 것이다. 감옥에서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른 마음을 먹을 여지가 없다.

 

자유라고는 오직 신앙의 자유밖에 없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자기를 실현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그러기에 외부에서 들어온 사목위원이 볼 때 경외심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적어도 감옥생활이 계속되는 한 그 형제의 신앙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온갖 유혹이 난무하는 사회에 나가게 되면 그가 어떻게 행동할 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안팎이 하나 된 교정사목 체제를

 

감옥 안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다가 출소하여 범죄를 저지른 사건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필자가 아는 한 형제는 감옥 안에서 불교회장을 맡아 일하며 주위에서 많은 신뢰를 쌓아 상당한 기간의 가석방 혜택을 받고 출소했다가 1주일 만에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또 다시 감옥에 돌아오기도 했다.

 

그가 예불시간에 반야심경을 독송하면 지도하러 온 스님들도 옷깃을 여밀 정도로 독경소리가 청산유수였다. 한 개신교 친구는 감옥 안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밖에다 출소자 재활 센터를 차린 뒤 후원자들의 성금을 빼돌려 도망치기도 했다. 현재의 교정사목 체제에서 이런 일들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사회는 출소자에게 너무 냉혹하다. 감옥 안에서 아무리 개과천선했다 하더라도 좀처럼 재활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멀쩡한 시민도 살아남기 어려운 사회환경인데 하물며 출소자임에랴. 정부에서 갱생보호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설이나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 효과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이런 사회환경이 있는 한 감옥 안에서 아무리 열심히 교정사목을 한들 소용이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안팎이 하나 된 교정사목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과문한 탓에 해외 각국의 본받을만한 갱생 프로그램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진 못했으나 평소에 아이디어 차원에서 생각해 본 교정과 갱생 프로그램에 대해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감옥 안팎에서 거듭나도록

 

먼저 교정사목을 사목위원 중심으로 할 것이 아니라 교구의 중요사업으로 정해놓고 교구의 신자 전체가 참여하는 조직망을 만들었으면 한다. 감옥에 있을 때 어느 잡지에서 본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어느 도시 교구에서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큰 성과를 보았다고 한다. 교구내 다섯 가구를 한 단위로 재소자를 한 명씩 맡아, 감옥 안에서부터 사회에 복귀하여 정착할 때까지 돌보아주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지역에 있는 소공동체가 이 프로그램을 사업으로 설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후원하던 재소자가 출소하면 바로 직업전선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 일 년 정도 지역사회에 머물면서 병원이나 고아원, 요양원, 장애인 시설, 노숙자 시설, 청소년 선도기관 등에서 사회봉사를 하도록 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길 것이다.

 

그러자면 출소자들을 일정기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나 기관이 필요하다. 이 사업은 재소자의 가석방이나 재활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정부당국과 협조가 필요하다. 아니면 교구에서 운영하는 각종 사회봉사 시설에서 수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봉사는 결코 강제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벌이고 있는 일을 교구 신자들에게 함께하는 개념으로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각 교구마다 근교나 농촌에 자체 농장을 두고 출소자들을 우선적으로 고용하여 농사일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익히도록 한다. 교구차원의 농장소유는 유기농 먹을거리와 친환경 생명 문화의 전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이것을 단순히 신자들을 위한 사업으로 한정짓지 말고 출소자의 갱생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 그 의미가 배가될 것이다.

 

교정사목은 수인들이 감옥 안에서 거듭남의 은총 속에 살 수 있도록 후원하는 데 그치지 말고, 나중에 사회에 복귀해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때까지를 목표로 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면 교구 차원에서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체계적인 제도 정비,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신자들의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

 

* 황대권 대철 베드로 - “야생초 편지”를 쓴 생태공동체운동가다. 1985년 6월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오랫동안 옥살이를 했다.

 

[경향잡지, 2006년 8월호, 황대권 대철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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