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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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영성]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예수님은 공생활 초기에 제자들 중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아 제자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스승의 사명에 협력하고, 나중에는 그 사명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두 사도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마르 3,14), 곁에서 당신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보게 하십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스승의 뒤를 따르도록 교육을 받았는데, 그 교육의 정점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게 될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을 예상하시고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길에 세 번째에 걸쳐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의 말씀이 끝난 직후에도 스승의 뜻을 깨닫기는커녕 서로 자리다툼을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달라고 청하자 다른 제자들이 이를 몹시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스승은 누누이 섬김과 봉사를 가르치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여전히 세속적인 생각에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깨달음이 더딘 제자들을 당신 가까이 불러 찬찬히 타이르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2-45)
하느님은 필요에 따라 당신의 일꾼으로 쓰실 사람을 택하십니다. 레지오 단원 모두는 하느님의 일꾼으로 뽑힌 사람들입니다. 부족한 우리가 그분의 일꾼으로 뽑혀 쓰이게 된다는 것 자체가 비길 데 없이 큰 영광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크든 작든 직분을 맡은 사람은 다른 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세속에서는 흔히 직책이나 자리를 두고 다투거나 힘겨루기를 합니다. 더 많은 이익을 얻고 더 큰 힘과 영향력을 갖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이런 세속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 3년간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던 제자들도 세속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하느님께 받은 은혜 자주 묵상해야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모범을 보여주신 것처럼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사는지를 자주 묵상해야 합니다. 자비가 충만하신 하느님은 부족하고 허물 많은 우리에게 정말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진정 감사할 줄 알고,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성모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성모님은 보잘것없는 시골 처녀인 자신을 비천한 종이라고 일컬으시면서, 그런 자신의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가 되게 해주신 하느님을 찬송하셨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모든 신자들, 특히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겸손한 모습을 본받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는 것’(1코린 4,7 참조)을 잘 압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소유, 재능과 시간 등을 대가 없이 내놓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사심 없이 섬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겸손한 자세로 남을 섬기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꾸준한 기도와 자기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도우심에 의지할 때 조금씩 가능하게 되는 일입니다.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탈란트를 잘 활용할 줄 압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탈란트를 주시는데, 하느님이 내게 맡겨주신 것이기에 그분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받은 탈란트는 자신의 이익이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전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14,12), “다른 사람의 성장을 위하여”(14,17) 사용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살피는 사람이라면,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자신의 생각을 일단 접고, 자신의 주장을 잠시 내려놓고, 참고 기다릴 줄 압니다.
이런 자세는 자신의 몸을 생명의 빵으로 내어주신 예수님을 닮는 길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수님과 관련하여 이해하지 못한 일을 당하였어도 쉽게 판단하지 않고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던 성모님(루카 2,19,51 참조)을 본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세상의 모습을 거슬러 사는 것이기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꾸준히 성령께 의지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직분 커질수록 유혹도 커져, 꾸준히 기도하고 자기 성찰 해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교회 내의 단체에서 높은 자리나 큰 직분은 맡기시는 이유는 더 많이 섬기고 봉사하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많이 받은 사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큰 직분이 맡겨지면 좋아하기보다는 책임감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자리가 높아지고 직분이 커질수록 유혹도 커진다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방심하게 되면 자신을 내세워 드러내고 싶은 유혹에 빠져 세속적으로 행동하기 쉽습니다. 겉은 신앙인이지만 속은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 찬 ‘무늬만 신앙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꾸준히 하느님께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자기성찰을 해야 합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섬기는 사람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른 사람이 섬기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따져 보지 말고 나부터 섬기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섬기는 이들이 많아질 때 레지오는 물론 한국교회도 내적으로 튼튼해질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월호, 손희송 베네딕토(서울대교구 총대리주교)] 1 2,428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