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집 밖에서 성체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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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나눔’] 집 밖에서 성체를 기다리던 할아버지 신부님
생텍쥐페리는 소설 ‘어린왕자’에서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외로움과 고통의 갈증을 느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여기에 물이 있다. 나에게 와서 사랑과 기쁨과 행복의 샘물을 마셔라.” 예수님은 우리 생명의 샘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었을 때서야 그 가치를 새롭게 깨닫는다. 건강을 잃게 되면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평상시에는 일상적인 것들이 결핍되는 상황이 오면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오래 전의 일이다. 사제 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본당 보좌 신부로 발령을 받았다. 첫 사목지는 나의 출신 본당보다 규모가 두세 배는 큰 본당이었다. 성당에는 천여 명이 족히 들어가고도 남았으며, 신자수도 만 명이 넘었다. 특히 내가 일요일 아침에 봉헌하는 어린이 미사에 참석하는 어린이들은 성당을 꽉 채우고도 넘쳤다.
성당을 가득 채운 아이들이 미사 때 떠들기 시작하면 귀가 윙윙 울릴 정도였다. 마이크 볼륨을 높여가며 어린이 미사를 봉헌하고 나면 목이 쉬어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매주 수천 명의 신자들에게 주임 신부님과 격주로 강론을 하는 것이었다. 강론을 준비하고 이를 말하는 것도 어렵지만, 신자들 앞에서 매주 새로운 내용을 전해야 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또 한 가지 고된 일은 한 달에 한 번 환자들을 방문하고 봉성체를 하는 일이었다. ‘봉성체’는 죽음의 위험에 있는 사람이나 병자들, 또는 성당에 와서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영할 수 없는 상태의 신자들에게 사제가 성체를 모셔가 영해주는 것을 말한다.
봉성체를 하는 날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하루 종일 수십 가정을 방문했다. 예정된 방문을 마치고 성당에 돌아올 때면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자동차가 귀할 때니 본당 구역을 걸어서 여러 곳을 찾아갔다. 게다가 봉성체 대상자가 갑자기 늘어나는 날은 점심도 거르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반갑게 맞아 주시는 환자들을 만나면 놀랍게도 저절로 힘이 생겼다. 어쩌면 봉성체는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내가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기도해 주게나.”
본당 구역 내에 십 년 넘게 중풍으로 투병 중인 은퇴 신부님이 한 분 살고 계셨다. 그 신부님은 주위의 도움이 없이는 걷거나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병세가 심했다. 처음으로 그 신부님 댁을 방문했던 날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신부님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지팡이를 짚은 채 대문 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다음 달에도 계속 신부님은 문 밖에 서서 나를 기다리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부님께 여쭈었다. “신부님, 안에서 편하게 계시지, 왜 힘들게 밖에서 기다리세요?” 그러자 신부님은 “한 달에 한 번 예수님을 모시는데 송구하게 집안에서 어떻게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겠나?” 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 말씀에 내 코끝이 찡해졌다.
또한 그 신부님은 영성체 전에 항상 나에게 고해성사를 보셨다. 하늘같은 선배 신부님께서 햇병아리 새 사제에게 무릎을 꿇으시고 고해를 하셨다. 신부님의 고해를 듣고 짧게라도 훈계를 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도 신부님은 머리를 숙이시고 열심히 들으셨다. 진땀을 빼고 사제관으로 돌아올 때면 그분의 깊은 신앙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어느 날 봉성체 후에 신부님께서 나에게 힘겹게 말씀하셨다. “허 신부! 난 요즘 밤이 되면 너무 고통이 심해서 하느님을 많이 원망해. 참지 못할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을 정도야. 내가 고통 때문에 신앙을 버릴까봐 두려워. 그러니까 허 신부가 미사 때 날 좀 특별히 기억해 줘. 내 병이 낫기를 기도하지 말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내가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기도해 주게나. 요즘 눈을 감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목마르다’고 외치는 모습이 자꾸 떠올라.” 나는 그 신부님께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인간은 고통 앞에서 누구나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얼마 후 신부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도 그 신부님이 기도를 청하던 말씀이 영혼의 메아리로 남아있다.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우리 인간은 많은 돈과 권력, 건강과 힘을 가졌다 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영원을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우리의 영혼은 늘 배고프고 목마르다. 영원을 향한 목마름은 세상의 어떤 가치로도 해소할 수 없다. 세상의 가치는 늘 한계적이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기에 물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이 더욱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타인이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기쁨 속에 살게 되면 과거의 슬픔을 잊기 쉽고, 아픔 속에 살 때는 과거의 기쁨을 잊기 쉽다. 우리는 기쁠 때도 자만하지 말고, 슬플 때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에 마르지 않는 샘물이신 주님을 기억하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가치 있게 사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0 2,08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