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녀 이 아가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119

성녀 이 아가타(1823-1840, 동정, 기해박해 때 교수)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순교한 동정녀 이 아가타는 이광헌(아우구스티노)과 권희(바르바라)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거룩한 모범을 따라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 또 일찍부터 동정을 지킬 결심으로 수계범절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기해박해 초인 1839년 4월 7일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한 후 형조로 이송되었으나, 형조에서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포청으로 환송하였다. 포청에서는 다시 혹형과 고문을 했고 또 부모가 배교한 것처럼 속여 배교를 강요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옥에서 만난 김 데레사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을 지켜나갔다. 9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곤장 300도, 대곤 90도를 맞고 드디어 1840년 1월 9일 김 데레사와 함께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 성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 성녀 권희(權喜) 바르바라의 딸.

- 성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 성녀 김장금(金長金) 안나, 성 이광렬(李光烈) 요한, 성녀 권희(權喜) 바르바라와 함께 체포됨.

 

------------------------------------

 

이광헌과 권희의 딸인 이 아가타는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수계범절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기해 박해 초인 1839년 4월 7일 가족들과 체포되어 포청에서 혹형과 소문을 당한 후 형조로 이송되었으나, 나이 어린아이를 형조에서 심문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환송되었다. 포청에 다시 끌려온 아가타는 주림과 목마름뿐 아니라 소문까지 거듭되고 부모가 배교한 것처럼 속여 배교를 강요당하였으나, "저희 부모님이 배교를 하고 안하고는 그분들의 일입니다. 저는 늘 섬겨온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하며 조금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나갔다. 9개월 동안 옥에 갇혀있으면서 곤장 300대, 대곤 90대를 맞고 김 데레사와 함께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때 나이는 열일곱살이었다. [경향잡지, 1996년 1월호]



32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