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연중 27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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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10-02 ㅣ No.153

연중 27 주일 ( 가 해 )

        이사야 5,1-7  필립비 4,6-9  마태 21,33-43

     1999. 10. 3.

     

     

주제 : 결실을 위한 용서를 청하는 생활

 

벌써 1999년의 10월로 들어섰습니다.  10월로 들어섰다는 것은 우리가 한해동안 땀흘려 가꿔온 농사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모두 농사를 짓지는 않기 때문에 똑같은 고생을 겪은 것도 아니고, 결실의 계절이 되었다고 해서 수확의 기쁨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넓게 연다면, 그 기쁨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함께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결실의 계절을 교회는 전교 성월로 전하고 우리가 가진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 도 전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도록 권고합니다.

 

10월의 첫 번째 주일인 오늘은 연중 27주일입니다.  오늘 주일에 우리는 수확에 관련된 말씀을 듣습니다.  땅에 그 삶의 바탕을 두고 있기에 움직이지 않는 식물들도 생명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생명체가 올바로 자라고, 생명체가 그 삶의 결실을 제대로 맺게 하려면 같은 땅위에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의 행동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 움직임이 어떤 결실을 맺는가에 따라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도 결실을 달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평가하고 말하고 옮기기를 좋아합니다.  사람에게 들을 수 있는 귀가 두 개 있고 말하는 입이 한 개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앞세우다보면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실수는 가끔씩 돌이킬 수 없는 결실을 맺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구별해서 보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소작인들은 어수룩한 데가 있습니다.  그들은 행동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결실을 얻으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도 함부로 행하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들이 갖는 특성입니다.  소작인들로 나오는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함부로 행동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사람들이 왜 ’포도원 주인의 반격(反擊)’을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사람이 앞뒤를 구별하지 않고 덤비면 그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맺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무시하고 같은 결과가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잘못된 결실을 맺는 첫 번째 이유인데도 말입니다.

 

포도밭에 관련된 이야기는 첫 번째 독서에도 나옵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을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포도로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도록 울타리를 쳐서 동물들의 침범에 대해서도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였는데도, 그가 맺은 포도 열매가 ’들포도’였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하느님의 선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는 것이 첫 번째 독서의 내용입니다.  이와 같은 선언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고 약속하고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나이 칠십, 혹은 오십, 또는 삼십 년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맺은 포도의 맛을 본다면 만족하겠는지, 도움을 주고받는 삶을 살아오면서 부모나 이웃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도 우리 생활에 대한 하느님의 판단을 미리 맛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내가 잘못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받았다’는 체험을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용서를 체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지 빠트리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우리가 실제 삶에서 용서를 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하지 않는 자에 대한 무조건의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되겠지만,  정작 용서를 청하고 받아야 할 사람이 그 기회를 놓친다면 찜찜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음의 짐을 한가지 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면서 이 세상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나아가고 그분에게서 축복의 소리를 듣겠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그러한 결실을 우리가 바라고 산다면, 두 번째 독서의 말씀을 잘 새겨야 합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바울로 사도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믿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말씀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생각을 벗어나며 가능한 일이고, 우리에게 분명히 잠시 맡겨졌던 것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일이 그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인생 칠십년 혹은 팔십년 또는 백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위탁받은 세월을 어떻게 지내는가에 따라 훗날 우리를 바라보실 하느님의 모습이 기쁠 수 있겠는지 그렇지 못하겠는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께 기쁨이 되는 삶은 멀리 있지 않은 것입니다.  각자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어떠한 정성으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작인이라면 하느님께 정당한 대가(對價)를 지불할 준비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10월의 첫 주일은 군인주일입니다.  우리가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 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를 수도 있는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봉헌하는 날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봉헌하는 두 번째 헌금은 젊은 나이에 자신의 보다나은 발전을 위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을 군인들과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군종 신부님들을 위해서 사용할 것입니다.

 

오늘 연중 27주일, 전교의 달 첫 번째 주일을 지내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이웃을 향해 되갚을 수 있는 지혜를 함께 간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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