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10주간 수요일 - 200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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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6-08 ㅣ No.666

연중 10 주간 수요일 - 짝수 해

              1열왕기 18,20-39             마태 5,17-19

      2004. 6. 9. 퇴계원

주제 : 사람의 생각

사람의 행동과 생각에 대하여 우리는 때때로 기회주의라는 판단을 합니다.  흔히 경험하는 기회주의의 표현으로는 ‘그것 봐,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판단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일의 결과를 보았을 때 흔히 하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패가 내 성공의 바탕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말처럼 기회주의적인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일이 처음부터 잘못될 줄 알았다면 미리 손을 썼어야 할 일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뒤늦게 그 일을 수습하느라고 애씁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을 현명하고 똑똑하고 처신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매사에 성실하게 행동하려는 사람을 가리켜 우직하고 멍청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가 통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논리는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서 최대한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우리 신앙에 그대로 적용되면 생기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남의 집에 불난 것처럼 흥미 있는 구경거리도 없다는 말을 우리는 씁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이론에 불과한 말이고 실제로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는 내게 당장 피해가 없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아주 오랜 옛날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그 한 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는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한 사람의 예언자와 바알을 섬기는 450명의 예언자들의 싸움입니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독서에서 들었기 때문에 따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바알이 졸고 있을지도 모르니 그를 깨우라는 엘리야 예언자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가슴 뜨끔한 생각을 하게도 합니다.  나는 과연 하느님을 제대로 섬겼는지, 나는 과연 내가 만든 바알을 내 안에 두고 그것을 하느님으로 섬겨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합 임금 시대에 바알은 신으로 공경 받았을지도 모르나, 우리가 사는 시대에 내가 만든 바알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지 다른 사람의 눈에 들키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잘 살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은 재주껏 잘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과 하느님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필요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섬겼어야 할 분이라고 인정하는 일이 뒤늦은 후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양다리 걸치는 삶의 자세를 내 안에서 몰아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기대하는 것은 좋으나, 그 하느님의 자비는 내가 생각하는 시간까지 효력을 낼 것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간을 잠시라도 가져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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