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사순 4 주간 목요일.....2006.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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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3-30 ㅣ No.698

 

사순 4 주간 목요일    

            탈출기 32,7-14         요한 5,31-47

    2006. 3. 30. 무악재

주제 : 자신을 높이는 방법

사람에게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글에서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들이 강조한다. 게다가 자신감이 무지(無智)를 밑절미1)로 할 때에 사람에게 생기는 폐해는 무진장 커진다’2)는 말을 봤습니다.  사람이 세상사물을 대하면서 자신을 서게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이 말도 바라보고 드러나는 모습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평가를 받기도 하고 서로 다른 결과를 맺기도 한다는 말에 사람이 드러내는 태도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비는 모세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기도를 가리켜, ‘중재기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대신 기도하는 것이 어떤 결실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돈이 오고가지요?  빈손으로 부탁하는 일이 제대로 돌아갈리 없고, 대가 없는 일에 내가 나서서 남을 위해서 움직일 이유없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라면 모세의 행동은 남다른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이 기도에 따라서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을 바꾸셨다고 탈출기는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높이는 데에 사용하는 방법과는 분명 다른 모습입니다.


내가 하는 기도나 내가 하는 선행으로 다른 사람이 바뀌고 그 결실을 볼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런대로 괜찮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딪혔던 세상은 지나치게 자존심을 높이고 싶어했던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특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예수님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의 뜻과 반대로 가려고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경우처럼, ‘청개구리의 심정을 철저하게 드러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하는 일은 무조전 잘 돼야 한다고 하느님께 요구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잘못된 신앙인들의 모습과도 같은 일입니다.


세상의 모습이 잘못 되었다고 우리가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존심이 올바른 자세로 드러난다면,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말대로 자존심을 드러내되 그 안에서 자신만을 아는 마음자세를 버릴 줄 안다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고 사는지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실은 그런 경우를 찾아서 기억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순간이라도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내가 하느님의 뜻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한 작은 선행하나는 분명 결실을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의 재앙에서 구해주셨듯이 말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높이는 방법을 찾으려면 제대로 해야 할 일입니다


1) 사물의 기초. 본디부터 있던 바탕


2)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말을 설명함/2006-03-30의 한겨레신문. 26쪽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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