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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기도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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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2 ㅣ No.158

기도의 준비

 

 

기도는 은총이지만 잘 준비하고 협력하는 자에게 더 풍성히 주어지는 은총입니다. 기도가 잘 되느냐 잘 안되느냐는 대개의 경우 기도의 준비에 달려있습니다. 기도 중의 분심 등의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준비를 잘 안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드리기 전에 스스로 준비를 갖추어라.' (집회 18, 23) 이와같은 기도의 준비에는 간접적 준비와 직접적 준비가 있습니다.

 

 

1. 간접적 준비

 

1) 성실한 신앙 생활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우선 성실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죄를 피하고 결점을 고치며, 자기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덕행을 실천하고, 남에게 사랑을 베풀려는 노력은 그대로 기도를 잘 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벌써 일종의 기도의 상태입니다. 기도에 가장 큰 지장이 되는 것은 죄에 대한 가책입니다.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받아 하느님과 화목하게 되어야 비로소 그분과 친교를 나누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모든 것을 사랑과 순명의 마음으로 행한다면, 열심히 기도하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순명의 '명시적' 표명인 바, 그런 생활은 벌써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순명의 '암시적(함축적)' 표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낌없는 봉사와 희생, 깊은 겸손과 인내, 그리고 자기가 헌신하는 대상(남편, 아내, 자녀, 신자, 예비신자, 환자, 근로자, 학생 등)에 대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생생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게 해줍니다.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성화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진실로 자신을 성화하려고 할 것이고, 또 참사랑을 체험할 때 참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선이 되고, 기도가 됩니다.

 

2) 심리적 안정

 

평소에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도 기도의 준비로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 기도에 집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기도 중에도 분심이 들기 마련입니다. 기도는 초자연적 주의 집중, 또는 정신 통일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기도 중에는 물론 평소에도 심리적 불안정을 극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나친 흥분, 분노, 미움, 실망, 슬픔, 고민, 불안, 두려움, 거짓, 질투,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 등을 없애야 합니다. 근심, 걱정, 일에 휘말려 마음이 사로잡힐 정도의 지나친 열성 등도 심리적 불안정을 일으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제거하여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는 사람은 쉽고 빠르게 기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3) 기도 직전의 일에서 침착성 유지

 

전통적 의미에서 기도의 간접적 준비는 기도 직전의 마지막 일을 침착하고 차분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을 하면서 자기의 신경과 감정을 가라앉히고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자기의 몸과 정신, 여러 기관과 능력도 점차 일점을 향해서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 일점은 바로 자기 마음이요, 자기 자신이요, 하느님이십니다. 일은 착실하게 열심히 하면서도 일과 자신 사이에 심리적 간격을 두고 그 일을 냉정하게 통제하고 평가함으로써 그 일에 자신이 휘말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일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필요할 때는 그 일에서 이탈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2. 직접적 준비

 

1) 기도 직전에 시간적 여유를 둔다.

 

어떤 활동에서 갑자기 기도로 옮아가는 것은 무리한 일입니다. 활동과 기도 사이에 시간적 간격과 심리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 직전까지 바쁘게 일을 하고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쓰다가 기도 시간이 되면 급히 성당에 뛰어들어간다든가 즉시 기도를 시작한다면 기도에 전념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5분 내지 10분 동안은 어수선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시작하기 적어도 5분 전에는 성당 안에 들어가 조용히 앉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2) 정신 통일이 필요하다.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성당 안에서 또는 방에서 조용히 앉아 우선 정신 통일을 해야 합니다. 정신 통일을 하려면 먼저 흩어진 생각을 정돈하고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정신 통일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선택하고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근본적으로 다음 3단계를 거쳐 긴장을 풀고 정신 통일을 할 수 있습니다.

 

A. 신체적 긴장을 푼다.

먼저 똑바르고 편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심호흡을 천천히 합니다. 불규칙한 호흡을 가다듬고 진정시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온몸의 긴장을 풀고, 힘을 빼도록 합니다. 특히 자기가 자주 힘을 주어 굳어져 있는 부분의 힘을 빼고 긴장을 푸는 것이 중요합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몸의 긴장을 풀고자 할 경우에는 몸의 각 부분에 (위에서 밑으로 차례대로) 자기 의식과 감각을 집중시키고 나서 그 부분의 힘을 빼고 긴장을 풀도록 합니다. 적어도 그 부분의 힘이 빠졌고 긴장이 풀렸다고 느끼고 상상하면 됩니다.

 

B. 심리적 긴장을 푼다.

그 다음에 심리적 긴장을 풀기 위해서 마음 안에 불안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제거합니다. 분노, 미움, 고민, 두려움, 복수심, 이기심 등을 없앱니다. 이것도 역시 상상으로 불안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들이 모두 없어졌다고 느끼거나 다 사라졌다고 자신에게 여러번 일러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C. 지성적 긴장을 푼다.

지성적 긴장을 푼다는 것은 지성이 어떤 생각이나 상상으로 흩어지거나 사로잡히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즉 지성이 특정한 생각이나 상상에서 해방되어 비어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정신 통일을 실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여러 종교와 정신 수련회에서 제각기 가르치고 수련시킵니다.

 

어떤 방법이라도 직접 특정한 종교의 예배와 관계가 없고 심신에 해롭지 않으면 채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고, 자기에게 가장 알맞고 효과적인 것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제 대표적인 정신 통일법을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 감실, 십자가, 동상, 성화 등 신심적인 물건 중 하나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그것에 마음과 생각을 집중합니다.

- 촛불을 켜 방 안을 어둡게 하고, 촛불을 가만히 쳐다보면서 촛불에 집중합니다.

- 어떤 상징적 도안(원형○, 십자가형†, 하아트형♡, 삼각형△ 등)이나 의미있는 글씨(忍,  努, 完, 天, 永, 成 등)를 크게 그려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집중합니다.

- 눈을 감고 심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그 호흡에 의식을 집중합니다.이하 소개되는 모든 방법은 눈을 감고서 실행합니다.

- 심장의 고동에 의식을 집중합니다.

- 어떤 의미있는 단어(하늘, 인내, 사랑, 신앙, 찬양, 감사, 예수 등)를 입 속에서 반복하여 외우고 그것에 집중합니다.

- 어떤 숫자를 반복해서 외웁니다. (하나-둘-셋, 하나-둘-셋...... 혹은 10-9-8......3-2-1) 숫자가 내려갈수록 자기 의식도 내려간다고 느끼도록 합니다.

- 자기 마음에 들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어떤 경치를 상상합니다. (바닷가, 산, 계곡의 시냇물, 별빛이 밝은 하늘, 성당 내부 등)

- 조용한 음악을 듣습니다.

 

3) 기도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지금 바치려고 하는 기도가 자기에게 얼마나 귀중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절실히 느끼도록 합니다. 즉 기도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며,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므로 지금 이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임을 확신하도록 합니다. 아울러 기도를 성의껏 잘 하려는 마음을 먹습니다. 주님의 모습을 동경하고, 주님을 만나뵙기를 갈망하며, 주님과 친교를 즐기려는 심정을 일으킵니다.

 

4) 기도의 은총을 성령께 청한다.

 

우리는 하느님을 '압바'라고 부르면서 기도할 자격도, 힘도, 권리도 없는 존재임을 절감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의 은총을 성령께 청합니다. 성령이야말로 기도의 원천과 원동력이 되시는 분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압바라고 부르고, 기도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올리시고, 하느님께 대한 자녀다운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주시도록 간청합니다. 기도를 자기 힘과 노력만으로 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성령의 사랑에 자신을 맡겨 초자연적 수동성의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은 기도의 필요 조건이지만, 기도의 충분 조건이나 원인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5)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한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친교이며 대화이므로 우선 친교와 대화의 상대자로서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 앞에, 우리 안에 현존하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창세 28, 16) 하느님께서는 만물 안에 창조주로서, 인간 안에 아버지로서, 또한 그리스도인 안에 압바로서 현존하십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려고 할 때 하느님의 현존을 살아있는 위격적 현존으로서, 사랑스럽고 친밀한 현존으로서 의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존의 의식은 그대로 하느님과의 생생하고 다정한 친교로 이어질 것입니다. 감실, 십자고상, 성화 등을 쳐다보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도 주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의식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6) 하느님과 자신을 양 극단에 둔다.

 

하느님과 자기 자신을 양 극단에 두고,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위대하시고 사랑 자체이시며 자비로운 분이신 데에 비하여, 자신은 지극히 무가치하고 죄스럽고 비참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도록 합니다. 하느님의 위대함, 사랑, 자비를 기쁜 마음으로 찬양, 흠숭, 감사하고 자신의 무가치함, 죄스러움, 비참함을 부끄러워하고, 겸손하게 뉘우치며 용서를 빕니다. 이것은 벌써 기도이며, 이렇게 마음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을 털어놓음으로써 기도가 더욱 더 잘 될 것입니다.

 

이상의 사항을 모두 다 그대로 실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것을 그 순서대로 하면 됩니다. 이 외에도 여러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항을 다 실시 할 경우에도 각 사항을 순간적으로 할 수 있고, 아니면 여러 사항을 합쳐서 동시에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기도를 시작할 때 몸과 정신과 마음을 가라앉혀 하느님께 집중하고 있으면 됩니다. 준비없이도 이러한 상태가 되어 있으면 준비는 필요없습니다. 간단한 기도에는 간단한 준비로 족하며 묵상, 미사 등의 오래 잠심해야 할 기도에는 좀 더 정성들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기도 생활이 진전되면서 준비는 간단해집니다. 결국 생활 자체가 기도의 준비가 되고, 기도가 됩니다. 자기 생활을 기도화하는 것이 기도의 가장 좋은 준비인 것입니다.

 

[박희원 신부님 / 수서 성당 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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