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자] 사제의 해: 알몸으로 주님께 돌아갈 한 사람의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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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30 ㅣ No.448

[경향 돋보기 - 사제의 해] 알몸으로 주님께 돌아갈 한 사람의 사제

 

 

신부님이 될 거예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산골마을이다.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에 위치한 수류(水流)라는 곳이다. 수류는 지리적으로 산 가까이에 있는 마을로, 일찍부터 천주교 신앙이 들어온 곳이다. 천주교 교우들이 일찍부터 박해를 피해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이곳 수류 산간지방으로 숨어들어 와서, 교우촌이 형성되고 본당이 설립되었다. 본당설립 연도가 1889년이니, 올해가 본당설립 120주년의 해가 된다. 본당설립으로서는 전주교구에서 두 번째이며, 첫 번째는 고산 되재본당(오늘날 고산본당)이다.

 

지리적, 역사적, 시대적 상황 등으로 천주교 신앙과 깊은 관련 속에서 살아온 인연 때문일까? 본당 역사 이래 수류성당 출신의 사제와 수도자가 참 많다. 나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 어린 시절부터 살고 노는 곳은 늘 성당마당이었다. 그리고 주일학교 교리반이나 학교에서 장래 희망을 말할 때는 항상 ‘저는 커서 신부님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신부님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던 날들을 지금도 나는 생생하게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혼자 생각하기도 한다. ‘그때는 참 많이도 순수했는데! 지금은 세월이 한참을 지나가고 있다!’ ‘벌써 한 사제로서 20년도 더 지나가고 있구나!’ 하지만 지금도 어린 시절 성당 마당에서 살고 놀던 때를 기억하면, 금방 내 마음은 설렘과 그리움으로 차오르곤 한다. 그때, 그 시절 어릴 때의 꿈은 사제의 꿈을 갖게도 했는데, 지금도 그때의 사제에 대한 꿈이 지금의 나를 살게 해 주고 있음에 감사하곤 한다!

 

 

성실한 사제가 되십시오

 

신학교에서는 매일 저녁식사 후 끝기도가 시작되기 전이면 항상 묵주기도를 바쳤다. 삼삼오오나 그룹별로 모여서, 어느 날은 혼자서 바치기도 하였다. 운동장을 돌거나 산책길을 걸으며 로사리오를 바치고 나서 으레 나누는 저녁인사는 “성인 사제 되십시오!”였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이 영성서적으로 읽는 책 가운데 “준주성범”이라는 책이 있었다.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는 열렬한 영혼의 수덕에 관한 책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인간세상사의 온갖 사욕과 사념들을 다 제어하고, 오로지 주님을 향한 길에 정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

 

신학교에서 가르침을 주신 은사 신부님들, 특히 영적지도 신부님들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곤 하였다. “사제가 되어서 신학생 때의 절반 정도만 기도생활을 하고 살아도 잘 살아가는 것이랍니다!” “사제로 살면서 어떠한 경우이든 성무일도는 꼭 해야 합니다. 묵주기도를 꼭 바쳐야 합니다. 묵상도 하루 중에 꼭 하는 습관을 길러야 된답니다.” 그리고 어느 때의 학장 신부님은 목요일 아침에 있었던 ‘영성강화’에서 단골메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실한 사제가 되십시오. 성실한 사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시절 우리 신학생들은 학장신부님을 ‘성실 신부님’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특히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영성강화가 있다. 바로 배문한 신부님의 영성강화 시간이었다. 아마도 신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분의 말씀이 두고두고 나를 추스르게 한다. “사제로서 일을 조금하더라도, 성인처럼 살아가는 사제는 많은 일을 거룩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제가 세속화되었다면, 그 사제가 많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일들은 세속적인 일들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 신학교에서 가르침을 주셨던 신부님들은 ‘사제의 기도생활, 규칙적인 생활태도,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말씀하셨다. 그 가르침들이 지금은 부족하고 허물 어린 모습에 익숙한 채 살아간다 해도, 지금의 사제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생각한다.

 

 

기도하는 사제, 겸손한 사제…

 

교우들은 아마도 이러한 사제를 바라고 기다리며 원할 것이다. ‘기도하는 사제, 겸손한 사제, 독선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은 사제, 함께 대화하고 상의하며 협력하는 사제…. 소박하고 검소하며 사치스럽지 않은 사제, 지나치거나 무리한 취미활동이나 운동을 하지 않는 사제…. 공부하고 성경말씀을 잘 알려주며, 강론을 열심히 준비하고 말해주는 사제를. 그리고 어쩌면 술을 너무 좋아하거나 많이 마시지는 않으나, 알맞은 술 몇 잔쯤은 함께할 수 있는 사제(?)’를 신자들은 원하지 않을까. 그 무엇보다도 신자들은 ‘교회와 본당 또는 어떤 직무에 자신을 바치면서 헌신하는 사제’를 바라지 않을까도 생각한다.

 

사제가 교회나 본당, 어떤 직무들을 수행할 때 헌신적이거나 투신하는지 아닌지를 교우들은 금방 알아본다. 하느님과 교회, 본당이나 직무를 위해 자신을 바쳐 살고 일하는 사제를 신자들은 찾고 희망할 것이다. 하느님 앞에 참으로 어설픈 사제일지라도, 한 본당에서 한 사람의 사목자로서, 신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본당의 신자들은 나를 어떤 사제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한 본당에서 살아가는 이 사제에 대하여 어떤 생각들을 할까? 요즈음 우리 본당 신자들한테 이런 말을 듣는다. “너무 힘들어요. 일을 조금만 하세요. 교육 등 행사도 너무 많아요. 우리는 신학생들이 아니고, 수도자들도 아니랍니다.” 신자들의 이런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자신들의 본당신부인 이 사제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사제이고 사목자로서, 나는 내가 바라고 생각하던 사제상과 너무 멀어진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바라고 염원하던 사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살고 일하는 것은 아닐까? 교회와 본당의 한 사목자로서 신자들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한다면, 분명코 그것은 잘못하는 것이 많다는 표현일 것이다. 무엇을, 어떤 점을 신자들은 나한테, 또는 내가 하는 어떤 일을 힘들어하는 것일까? 나는 오늘 성찰하고 반성하면서 이 시간을 갖는다.

 

 

내가 생각하는 사제상

 

사제생활 20년을 지나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사제로서 내가 생각하는 사제상은 이렇다. 이 사제상은 나의 작은 사제생활에 대한 성찰이고 반성이며 아울러 희망이다. 그리고 지금 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생각하니, 신학생 시절에 가졌던 사제상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첫째, 기도하는 사제이다. 그 어떤 일들을 하고, 그 어떤 삶을 살아간다 해도 사제는 영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영적인 일과 삶이 기도하지 않고는 그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도 없이 사제로서 수행하는 일들과 삶이 가능할까? 기도하지 않는 생활인데, 사제의 삶과 일들이 영적인 의미를 낳을 수 있을까? 늘 기도하셨던 스승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제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기도하는 사람으로, 기도하는 사제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둘째, 공부하는 사제이다. 사제는 한평생을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사제에게는 평생교육생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사목 분야, 성경 · 영성 관련 분야, 심리상담 분야, 교육 분야, 사회복지와 환경 분야, 성당건축과 공학적인 분야, 교회 행정과 경영 분야 등등 다방면에서 자신에게 알맞은 분야를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사제로서, 교회와 사목활동을 위해 자신의 관심 분야를 최대한 살리면서 사목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셋째, 하느님의 교회와 신자들의 사목을 위해 자신을 바치며 헌신하는 사제이다. 어느 때 성찰하면서 생각한다. ‘나는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살면서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몸 하나 교회에 부치면서 겨우 살아가는 사람인가?’ 우리 사제는 한생을 하느님과 교회에 바치고 봉헌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에 맞게 우리 사제한테는 한 몸을 하느님께 드리고 교회에 헌신하며, 열심히 살고 봉헌하는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넷째, 겸손한 사제이다. 그 어떤 삶과 일들을 아주 멋지고 훌륭하게 살고 이루어간다 하더라도, 사제가 겸손하지 않으면 참 보기가 안 좋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이냐시오 성인이 말씀하셨듯이, 우리 사제들도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과 나라만을 위하여’ 살고 일한다면 좋겠다. 그러면 모든 것은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이다.’

 

 

20년 사제생활을 돌아보니

 

한 사람의 사제로서 이제 20년 하고도 조금 더 살고 일했는데, 사제생활을 돌아본다는 것이 송구하기 그지없고 또 우습기도 하다. 창조주 하느님께는 지극히 미천한 한 피조물일 뿐이고, 교회 안에서는 참으로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한 사제일 따름이며, 우리 사제단 안에서는 감히 명함도 드릴 수 없는 시골의 이름 없는 한 사제인 것을…. 그런데도 그 어떤 사제생활 돌아보기 등등을 운운할 것인가? 그러함에도 주어진 주제로 말미암아 지금 이 시간, 여기에 있음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기면서 감히 그리고 외람되이 계속해서 이 글을 엮는다.

 

1986년 1월 23일에 사제로 서품되었으니 이제 사제로서 살아온 시간들도 23년하고 몇 달이 되었다. 보좌생활 1년 8개월, 본당생활 1년 4개월을 하고서 군종신부로 갔다. 보좌생활은 익산 창인동과 전주 중앙성당에서 했고, 본당생활은 진안성당에서 살았다. 군종신부 시절은 나의 작은 사제생활에서 보람과 은총의 시절이었다. 몰론 군대라는 그 어떤 특성과 몸이 약한 까닭에 어려움도 적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군종신부 시절은 나에게 보람과 은총의 시간이었음을 감사드린다. 그때는 분명 젊음, 추억, 그리고 그리움들이 많이 간직된 시절이었다.

 

군종사목을 마친 후에는 공부와 재교육의 시간을 가졌다. 필리핀의 EAPI(동아시아사목연구소), 영국의 St. Anselm Institute(영성상담연구소), 이스라엘의 ECCE HOMO(성서연수과정)를 지나 로마 성 토마스 아퀴노 대학교에서 영성신학 과정을 한 후에 고향땅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바로 광주 가톨릭 대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광주 신학교에서 6년 반을 영성지도 신부로 살았다. 몇 과목으로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특별히 학생들과 영성상담과 면담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광주 신학교에서 양성자의 한 사람으로 살고 일했던 시절은 참으로 큰 은총이자 추억이다.

 

그리고 다시 교구로 돌아왔다. 교구에서 맡은 내 소임은 사무처에서 하는 일이었다. 미천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사제로서 내게 사무처장이라는 소임은 너무도 크고 막중한 임무였다. 교구청 사무처 소임은 3년 반이었는데, 이러저러한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교구의 어른을 모시면서 많은 동료 그리고 젊은 신부님들과 함께 교구청에서 지낸 시간은 많은 추억을 가지게 했는데, 특히 교회행정에 대해서 많이 배운 귀중한 한 시기이다.

 

그리고 문정성당으로 온 지 이제 1년 반이 되어간다. 오랜만에 행복한 본당신부로 살고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사제로서 내 작은 날들을 지나오는 동안, 시작하던 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지고 성숙해졌을까? 과연 밝고 긍정적인 면으로, 좋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달라져 왔을까? 아니면 시간과 날들만 흘러갔지, 오히려 부정적이고 바라지 않는 모습이 많아진 건 아닐까? 하느님은 아시고, 적지 않은 날들 동안 다양한 곳에서 만나거나 함께해 온 동료 신부님들이나 신자들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사제란 누구인가?

 

‘사제는 누구이고, 무엇하는 사람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가?’를 새삼 생각한다. 사제는 하느님의 사람이고 사람들의 사람이어야 할 것이고,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이고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며,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기 위해 사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스물세 해 전, 서품 상본에 적었던 성구는, “나는 어머니의 태 안에서 알몸으로 나왔고, 알몸으로 다시 저편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욥 1,21)였다. 그 말씀대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할까? 내적이고 영적인 모습은 빈 몸에 가깝고, 한 인간 한 사제로서는 마음에 욕심과 욕망이 더 쌓이곤 했음을 고백한다.

 

2009년 은혜로운 사제의 해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다시 몸과 맘, 영혼에 다짐한다. 다시 새롭게 한 인간, 사제, 봉사자로서 삶과 그 길을 잘 살고 걸어갈 것을 기도한다. 지극히 보잘것없고 비천한 한 사제일 뿐이지만, 지금 이몸이 교회와 교구의 한 사제인 것에 참으로 감사하다. 사제로서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곳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음만으로도 귀한 은총인데, 더욱이 미사를 함께 봉헌할 수 있는 교우들이 있는 한 본당의 한 사제요 사목자로 살아갈 수 있음은 더욱 큰 은총이다. 비록 부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오늘도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이 한 몸 여기에서, 한 사제, 인간 봉사자로 일하며 살고 있다.

 

* 윤양호 클레멘스 - 1986년에 사제품을 받았으며, 현재 전주교구 문정성당 주임신부이다.

 

[경향잡지, 2009년 7월호, 윤양호 클레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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