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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살아있는 믿음은 사랑으로 행동한다(갈라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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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3 ㅣ No.316

[레지오 영성] 살아있는 믿음은 “사랑으로 행동한다”(갈라 5,6)



신앙(믿음)은 인간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이 하느님의 선물이듯이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에페 2,8 참조) 그러므로 신앙이란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인간의 합당한 응답”(가톨릭교회교리서 142항)으로,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인격적인 응답’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믿음)” 자체를 두고 ‘올바른 신앙’이니 ‘그릇된 신앙’이니 하면서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오히려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선물인 “신앙(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는 작은 목적이 우선 여기에 있다는 것을 밝혀 두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믿음”

개신교에서 “‘오직 믿음으로(sola fide)’구원된다.”는 슬로건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때, 가톨릭교회는 “살아있는 믿음(Fides viva)”이라는 표현으로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야고보 서간의 다음 말씀은 이런 믿음의 대헌장처럼 제시되곤 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26)

야고보 서간은 “살아있는 믿음”에 대한 대조적인 표현으로 “실천이 없는 믿음”(2,26)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실천이 없는 믿음”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2,17.26)이라고 하면서 “실천이 없는 믿음”은 결국 ‘죽은 믿음’의 다른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천이 없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이란 ‘사랑의 실천이 없는 믿음’, 곧 ‘사랑이 없는 믿음’을 두고 한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누가 그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랑을 실천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이란 “사랑의 실천이 따르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

‘신앙의 해’를 선포하시면서 내신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님의 회칙 「믿음의 문」은 야고보 서간의 위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사랑 없는 믿음”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며 “믿음 없는 사랑” 역시 끊임없이 의심에 좌우되는 감정에 불과하기에 믿음과 사랑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표현을 빌어서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이 인간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는 사유와 행동의 새로운 기준이 된다고 천명합니다. 그래서 결국 믿음과 사랑, 사랑과 믿음이 함께 하는 바로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게 되는 신앙의 놀라운 체험까지 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믿음 없는 사랑은 끊임없는 의심에 좌우되는 감정에 불과합니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각자의 길을 가도록 해 주면서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외롭고 소외되거나 배척당한 이들을 우리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존재로 여기며,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봉헌합니다. 그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믿음의 문」 14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최근에 반포하신 신앙에 관한 회칙 「신앙의 빛」(2013.6.29)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렇게 설명하시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완전한 사랑에 대한 신앙이며, 그 사랑의 결정적인 힘, 곧 세상을 변모시키며 시간을 비추어 주는 사랑의 능력에 대한 신앙입니다.”(15항)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바로 예수님 안에서 계시된 하느님의 사랑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1요한 4,16 참조) 그래서 교황님은 이어서 신앙에 대한 이런 설명을 덧붙이고 계십니다. “신앙은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시듯이 그분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는 방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18항)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할 “살아있는 믿음”이란 무엇인지, 그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갈라 2,20 참조)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으로 사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살아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 이 두 표현을 하나로 연결시켜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사랑으로 행동한다.”(갈라 5,6)>(Fides viva ≪ per caritatem operatur ≫, 1814항)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느님 안에서 함께 희망하고 함께 추구해야 할 믿음이 이러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 신앙인들이 구체적으로 살아야 할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성숙된 신앙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이렇게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

사랑하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 여러분들은 “살아있는 믿음”의 증인들입니다. 사랑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의 증인들입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세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는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기꺼이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한’ 덕분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활동에 하느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10월호,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주교, 안동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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