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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51: 성녀 데레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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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29 ㅣ No.651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51 · 끝) 성녀 데레사는 누구인가?


성성에 이르는 영적 여정 밝힌 ‘기도의 스승’



1982년 성녀 데레사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스페인 국영방송이 제작한 4부작 영화 ‘성녀 데레사’의 한 장면. 당시 스페인의 국민배우인 콘차 벨라스코가 성녀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적 여정을 속속들이 파헤치다

올해 3월 28일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태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랜 세월의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성녀는 여전히 우리에게 천상의 빛을 전해주는 거목(巨木)입니다. 성녀 탄생 500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교회 내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지며 성녀의 영성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특히 성녀 데레사의 영성 가운데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하느님 체험’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성녀가 쓴 작품들을 읽어가다 보면 자주 놀라곤 합니다. 마치 굽이굽이 널려있는 골목을 모두 아는 사람처럼, 성녀는 영성생활에 갓 입문한 초심자의 영적 상태부터 진보한 사람 그리고 하느님과 사랑의 합일에 이른 완덕자에 이르기까지 마치 훤히 들여다보듯이 각 단계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성녀는 단지 통상적인 신앙생활의 영역에서 체험하는 사정뿐만 아니라 체험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다양한 영적 사정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설명을 제시했습니다. 한 마디로, 성녀 데레사는 생생한 하느님 체험의 증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많은 성인성녀들 역시 하느님에 대한 신비 체험을 했습니다만, 데레사 성녀는 그것을 일일이 작품을 통해 전해주었습니다. 이 작업은 당시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일이자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창적인 업적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적 기도의 표준을 제시하다

특히 성녀에게 따라 붙는 호칭 중에는 ‘기도의 스승’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성녀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에게 나누고자 한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기도’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성녀에게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다준 것도 기도요, 그분을 향해 ‘일대 결심’과 더불어 성성(聖性)을 향해 큰 걸음을 걷는 결정적 회심에 이르게 한 것도 기도였습니다. 성녀는 성성에 이르는 영적 여정 자체를 기도의 단계와 동일시할 정도로 기도를 중요시했습니다. 성녀가 창립한 남녀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창립 정신의 바탕에도 기도가 있었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가르치는 영성적 전망에서 기도는 영성 생활의 진보 정도를 가늠하게 해 주는 척도이자 시금석이었습니다. 따라서 ‘성(城)’으로 표상되는 영혼의 중심에 계신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합일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성의 관문이자 성의 중앙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인 ‘기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성녀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녀의 가르침에 있어서 ‘기도’는 그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르멜 영성 학파의 창시자

성녀 데레사와 관련해서 우리가 눈여겨볼 중요한 대목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성녀가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창립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수도회는 창립 이후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인을 배출했습니다. 그 가운데 보편 교회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성인들로는 십자가의 성 요한, 성녀 소화 데레사, 성녀 에디트 슈타인, 삼위일체의 복녀 엘리사벳 등이 있습니다. 이분들 모두 영성적인 비중으로 보나 그 영적 체험과 가르침을 담아놓은 작품의 분량과 깊이 있는 내용을 보건대, 시대를 초월해서 전 세계 신자들에게 천상의 빛을 전해주는 중요한 성인들입니다. 그러나 계보를 따져보면 이분들은 모두 성녀 데레사가 창립한 맨발 가르멜 수도회라는 영적 산맥에서 뻗어 나온 지류들입니다. 다시 말해, 이분들은 모두 성녀 데레사를 영적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으로부터 자양분을 받은 성녀의 후예들입니다. 수도회 회원들뿐만 아니라 교회 내의 많은 성인 성녀 그리고 신학자, 신자들에게 영적인 세계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천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성녀 데레사 영성의 금일화(今日化) 문제

이처럼 성녀 데레사의 영적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해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고 교회 안팎에 영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이는 오늘날 어느 정도 양적인 성장을 이룩한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한국 교회가 외적인 성장에 걸맞은 내적 성숙을 기하려면 보편 교회가 오랜 세월 동안 터득한 거룩한 학문과 영성으로 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그 영성의 한 축을 가톨릭 교회의 영성을 대표하는 기둥 가운데 한 분인 성녀 데레사와 그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여러 가르멜 성인성녀들이 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녀의 깊은 영성을 한국 교회의 영적 쇄신의 도구로 사용하려면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작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선, 성녀의 작품들에 대한 현대어로의 재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은 여러 작품들에 대한 스페인어 원전으로부터의 번역, 더 나아가 성녀의 영적 가르침을 신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소개하는 작업, 성녀의 기도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성녀 데레사식 영신 수련에 대한 개발 등이 그렇습니다.

성녀 데레사는 500년이란 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히 가치를 발하는, 아니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더욱더 빛을 발하는 영적 스승입니다. 성녀 데레사 탄생 500주년을 통해 성녀의 영성과 더불어 한국 교회가 쇄신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평화신문, 2015년 3월 29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 성녀 데레사에 따른 영성생활은 이번 호로 마칩니다. 다음 호부터는 데레사 성녀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가르멜의 성인들’이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계속적인 애독과 성원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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