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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승천대축일에 광복절을 지내는 우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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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0 ㅣ No.254

[레지오의 영성] 성모승천대축일에 광복절을 지내는 우리의 기도



비신자인 한국 사람에게 8월하면 떠오르는 경축일은 광복절입니다. 한국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광복절과 성모승천대축일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아니 열심한 신자분들에게는 광복절보다 성모승천대축일이 먼저 생각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천주교신자들에게 8월 15일은 민족과 신앙이라는 영역에서 두 개의 큰 경사가 겹쳐짐으로써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게 합니다. 어떤 분은 순전히 우연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30년 만에 지하철에서 우연히 고향친구를 만나 고향소식을 듣게 되고 그 이후에 고향 친구들과 서로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면, 신앙인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친구와 만난 일을 하느님의 섭리로 여기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신앙대회나 기원미사 때 나타나는 햇무리를 보고서도 거기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축복을 확신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신앙인들은 인생사와 세상사를 경험하고 살아가면서 거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느끼고 그것을 고백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인의 눈으로 한국교회사 속에서 8월 15일을 생각하면 광복절과 성모승천대축일이 같은 날에 만나는 것을 그냥 우연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는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8월 15일, 우리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던 그 해에 교회는 8월 15일을 성모승천대축일로 지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모승천교리는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12세에 의해 선포되면서 성모승천대축일이 설정되었고, 이듬해 8월 15일부터 그 축일을 매년 지내도록 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복절과 성모승천대축일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성모님과의 관계는 단지 광복절과 승천축일의 만남으로써만 얘기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회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성모님과의 인연은 각별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1838년 12월 1일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가 교황님에게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조선교구의 수호성인으로 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1841년 이를 허락한 이래 한국교회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교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맺어지고 이어지는 성모님과 한국교회의 인연은 광복절과 성모승천대축일과의 만남을 통해 그 의미와 섭리를 뚜렷이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명동대성당에서 한민족과 한국 교회를 봉헌하시게 된 것도 성모님과의 깊은 연관을 확인해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일제로부터 해방을 체험한 우리들에게 성모님이 “권세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해방을 체험한 우리 민족의 정서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한국 천주교신자들에게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족이 성모님과 함께 성모님 안에서 마니피캇을 노래하는 날로 여겨지게 된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공식적으로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성모님의 도우심에 맡긴 것과 더불어 우리 순교선열들과 김대건 신부님도 성모님께 전구하고 의탁하여 많은 도움을 받으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서 광복절과 성모승천대축일이 하나로 합쳐진 의미를 짚어보면, 성모님이 과거에 한국교회의 의탁과 기도를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도와주셨듯이, 앞으로도 우리 민족을 위해 전구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 민족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셔서, 우리 민족을 도와주셨고 또 앞으로도 우리 민족을 위해 전구하신다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새로운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38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갈라져 서로 다른 이념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고, 1950년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까지 발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쟁의 결과 남과 북은 많은 사상자와 이산가족을 만든 채 서로 미워하며 살아오게 되었습니다. 분단의 아픔으로 점철된 현대사의 질곡에서 평화적 통일을 갈망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미흡했지만, 우리 한국교회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런 우리 사회의 노력과 기도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으로 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이러한 평화적 통일의 행진은 근년 들어 답보도 아닌 퇴보상태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복절에 맞이하는 성모승천대축일, 성모승천대축일에 맞이하는 광복절에 우리는 성모님께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도움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1945년 우리의 광복은 미완의 해방입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말았으니 미완의 해방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통해 온전한 해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모님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미워하며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일치함으로써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당신께서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도록 도움을 주셨듯이, 우리 민족이 분단의 현실에서 해방되어 통일을 이룸으로써 온전한 해방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1년 8월호, 글 김
학록 안셀모 신부(안동 R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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