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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성모님을 닮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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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9-20 ㅣ No.263

[레지오의 영성] 성모님을 닮아가자!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교회는 한 해의 첫날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냅니다. 이 날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낳음으로써 천주의 어머니가 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대축일로,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생명과 평화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있는 ‘성모님의 군단’입니다. 군사들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면, 성모님의 군사들은 성모님의 뜻을 따르고, 성모님을 닮아가는 것을 으뜸가는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성모님께 대한 4대 교의는 ‘평생 동정’, ‘하느님의 어머니’, ‘원죄없는 잉태’, ‘하늘에 올림을 받음’ 등입니다. 평생 동정이면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거나, 원죄없이 잉태되거나, 하늘에 올림을 받는 등의 은총은 말 그대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무지 성모님을 닮을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삶에서 드러난 정신을 배우고 익힌다면,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또 다른 성모 마리아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모님에 대하여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려주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통해 성모님이 어떠한 분이었는지, 어떻게 살다 가셨는지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배우고 따를 수 있습니다. 이제 차근히 성모님의 삶을 따라가면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이 배워야 할 성모님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봅시다.


말씀 간직하기

첫째, 성모님은 말씀을 받아 간직하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해산한 후 목자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도, 어린 예수님이 성전에서 학자들과 토론하다가 찾아 온 부모에게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반문했을 때도, 성모님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루카 2,51)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사실, 하느님의 말씀(Logos)인 예수님을 잉태(간직)하였고, 출산(되새김)하여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말씀을 간직한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마음에 곰곰이 되새김으로써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곧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마태 13,8 참조)로 열매 맺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틈나는 대로 성경을 공부하고 필사도 하면서, 성경의 “빛을 받아 하늘의 선물을 맛”(히브 6,4) 보도록 하십시오. 성경에는 이 세상의 모든 진리와 지혜와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책보다도 여러분이 가장 즐겨 보는 책이 성경이길 바랍니다.


하느님 사랑하기

둘째, 성모님은 하느님 사랑에 민감한 분이었습니다.

4복음서 중 성모님에 관해 가장 많은 보도를 하고 있는 루카복음에 의하면, 성모님은 어린 처녀임에도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고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하느님과의 대화이자 친교’인 기도에 익숙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이나 천사의 발현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루카 1,12), “깜짝 놀랐다”(마르 16,5)는 일반적인 반응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는 인사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을 차분히 경청하고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고 순종의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길을 떠나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고서 기쁨에 겨운 찬가 ‘마니피캇’을 노래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루카 1,46-55) 구약의 ‘미리암의 노래’를 연상케 하는 이 찬가만 보아도 성모님이 얼마나 하느님과 친밀했고, 성경과 교회 전례에 해박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신명 6,5)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과 친교를 나누는 데 항상 열려 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잊지 않는 영적 민감함은 또한 언제 어디서건 기도할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 친히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마태 22,3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합니까? 우리의 자랑스러운 신앙선조들은 하느님께 대한 이 사랑을 순교로써 증거하였습니다. 박해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순교는 가능합니다. 삶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당장에는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하느님 자비의 섭리로 받아들여 감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 사랑에 민감한 또 하나의 마리아가 되길 바랍니다.


이웃 사랑하기

셋째, 성모님은 이웃 사랑에 민감한 분이었습니다.

복음서는, 성모님이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은 후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루카 1,39) 갔다고 보도합니다. 자신도 처녀 잉태의 혼란함을 품은 채, 늦은 나이에 잉태한 사촌을 만나고자, “서둘러” 사나흘은 족히 걸렸을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석 달가량 함께 지내며 임신한 엘리사벳의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다(루카 1,56).

이웃의 어려운 사정에 밝은 성모님의 눈은 카나의 잔칫집에서도 어김없었습니다. 수많은 손님이 있었겠지만, “포도주가 없는”(요한 2,4) 곤란한 사정은 성모님의 눈에 먼저 띠었습니다. 성모님은 그 곤란함을 덜어주고자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요한 2,4)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물러서지 않고,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요한 2,5)고 명함으로써 주님의 첫 번째 기적을 가져오게 합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레위 19,18)하는 사람은 상대의 필요와 욕구를 잘 알아보는 밝은 눈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상대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고 배려하는 이타적 사랑을 베풀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고 명령하시는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웃’이 누구인지 알려주셨습니다(마태 25,31-46 참조). 또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요한 13,35)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만 주님의 제자임을 드러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작은 이의 모습으로 오시는 하느님께 사랑을 드림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거하게 되길 바랍니다.

이웃 사랑의 구체적 실천으로 북한의 고통받는 동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묵주기도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북한의 회개와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성모님께 기도하기를 당부합니다.

성모님의 군사인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

올 한 해, 성모님처럼 말씀을 간직하여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현하는 “깨어”(마태 24,42)있는 삶을 사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2년 1월호, 
황인국 몬시뇰(서울대교구 수도회 담당 및 동서울지역 교구장 대리,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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