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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9: 영적 여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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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7-05 ㅣ No.693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영성 산책] (9) 영적 여정의 시작


온전히 하느님 바라보는 두 번째 회심 시작해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작, ‘성 바오로의 회심’(Conversion of Saint Paul), 1542-1545, 프레스코,바티칸 폰티피치궁.


원죄로 인해 본성에 상처 입은 나약한 인간이지만,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여정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무렵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는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선포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4,17). 이와 같은 회개 선포와 함께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부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심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죄를 지어도 죄인지 모르고 살았다면, 이제 하느님의 계시 진리를 접하면서 무엇이 죄인지 알기 시작해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원하는 회심의 과정은 신앙인으로 넘어가는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가르침을 이성으로 알아듣기 시작한 것만으로 영적 여정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단지 예비적인 회심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계에서는 아직 실천적인 결심이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부자 청년의 비유’라고도 불리는 공관복음서의 ‘하느님 나라와 부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회심과 영적 여정에 관한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질문합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 10,1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십계명의 내용을 언급하십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마르 10,20).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흡족해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의 많은 재산을 포기하지 못했고 슬퍼하며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복음서 내용으로 보아 아마 그 사람은 예비적 회심을 거쳐 종교적인 가치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첫 번째 회심을 잘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잘 실천하며 삶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실행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성사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어떤 실천도 없이 소위 무늬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백배 나은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신념을 보이는 것만으로 영적 여정을 시작했다고 보기엔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부자 청년의 첫 번째 회심도 결국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다시 제안한 두 번째 회심의 단계가 진정으로 영적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 안토니우스는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을 가지고 완덕에 다다르는 영적 여정을 훌륭히 걸어갔습니다. 어느 날 미사 중에 하느님 나라와 부자 비유 이야기를 들은 안토니우스는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사막 동굴에서 80여 년간 머물며 관상 생활을 통해 완덕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범이 됐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이 비유 말씀을 문자 그대로 알아듣고 실천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 말씀이 던져주는 의미를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재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 하느님을 바라볼 수 없기에, 회심을 통해 자신의 시선을 재물에서 하느님께로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시선을 빼앗는 사물이 무수히 많은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시선을 고정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을 향한 영적 여정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근세 영성작가 랄망은 “첫 번째 회심을 통해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데 헌신하고 두 번째 회심을 통해서는 완덕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잘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여러분도 영적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두 번째 회심을 언제쯤 했는지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평화신문, 2015년 7월 5일, 전영준 신부(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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