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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군인사목] 군사목은 함께 일구어나가야 할 젊은이 사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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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10-17 ㅣ No.472

[경향 초대석] 군종교구장 이기헌 주교


군사목은 함께 일구어나가야 할 젊은이 사목입니다

 

 

이기헌 베드로 주교(63세)는 평양 출생으로 1975년 사제가 되어, 1978년 육군 군종신부로 입대 1982년에 전역, 서울 잠원동과 석관동성당 주임을 거쳐 동경 한인성당 주임으로 사목하였다.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으로 일하다 1999년 12월 14일 주교품을 받고 제2대 군종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경향잡지 2000년 3월호 인터뷰 참조). 지난 9월 1일 서울 용산에 있는 군종교구청에서, 군종교구장으로서 사목한 10년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군종교구장으로 산 10년을 돌아보면

 

10년이란 세월이 언제 흘러갔는지, 세월이 참 빠르네요. 군종교구는 사목하는 신부들이나 신자들 모두가 다 유동적이고 물처럼 흘러가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동안 많은 사제들과 병사들과 교우들을 만났습니다. 군종교구에서는 1년에 2만 명 정도의 젊은이가 세례를 받는데, 10년이면 20만 명이니 웬만한 교구 하나가 새로 생기는 셈이지요.

 

그동안 신부님, 수녀님, 일반 선교사, 군 지역의 사제나 교우들이 많이 도와주셨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었고, 선교할 수 있었고, 결실을 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저도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군인들을 찾아다니느라 수십 만 킬로미터 이상을 누볐으니 참 많이도 돌아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시간들이 다 고맙고, 그 모든 것이 여러분의 사랑과 도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군사목은 이렇게 사랑을 받고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일구어나가는 사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

 

주교품을 받고 열흘 후가 성탄대축일이었습니다. 성탄 밤 수단을 입고 눈 내리고 찬바람 부는 철책선 초소를 방문했습니다. 눈 쌓인 전방에서 병사들의 차가운 손을 만져주면서 군종주교의 삶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게 엊그제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을 세 가지로 간추려보겠습니다.

 

감동적인 기억부터 이야기할까요? 해마다 국제 군인성지순례가 성모 발현지인 프랑스 루르드에서 열립니다. 처음 참가했을 때 보니까 루르드가 완전히 군인들의 도시 같더라고요. 전 세계에서 2-3만 명이 참가하는데, 현역에서 예비역까지, 병사에서 장성까지 군인들은 물론 군인가족들과 군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 군종주교님들과 군종사제들이 함께하는데 장관이었습니다.

 

루르드 성지를 중심으로 밤샘기도를 하고, 군인복장을 하고 촛불행렬을 하면서 ‘아베, 아베’ 하고 성가를 부르고,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체거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평화의 사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전례에 군인의 멋이 배어있습니다. 각 나라 고유 복장을 한 군악대가 성가를 연주하며 국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는 것을 보면서,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하듯 이 교회를 위해서도 충성하며 평화를 위한 봉사자의 삶을 살며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안타까운 기억도 있습니다. 2005년에 연천 비무장지대 한 GP(전방관측소)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 많은 병사가 죽었지요. 사건이 있고 얼마 후 그 GP 사고가 난 건물을 새로 지어 건물의 축복식을 하러 갔는데, 신세대 병사들의 얼굴을 보니 참 평화스럽고 앳되더군요. 그런 젊은이들이 자기제어를 못하고 순식간에 우발적인 사건을 일으키니, 신세대 병사들을 위한 돌봄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2005년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파병에 대한 논란은 물론 군종신부 파견을 두고도 이야기가 많았지요. 그러나 군종신부는 병사들과 신자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다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웃음) 가서 보니 45도나 되는 뜨거운 열기 속에 병사들이 사는데 그 부대 한가운데 천막으로 된 성당이 있었어요. 거기서 미사를 드리고 견진성사를 주면서, 비록 천막이지만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그 성당은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이 계시는 아름다운 성당이고 의미 있는 성당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고향을 떠나와 외롭고 어려움 속에 있는 그들과 함께 드렸던 미사와 그들의 안식처 구실을 한 천막 성당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장병들에게 일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이 성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사막에서 드린 미사에 대한 소중한 체험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여 며칠을 지내면서 군종사목의 또 다른 면이 있구나 생각했지요.

 

 

군의 변화와 발전

 

가장 큰 변화와 발전이라면 군이 선진화되고 민주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군대 복무환경이 개선되었고, 병사 개개인을 존중하는 등 병영문화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요즘은 내무반을 생활관이라 부르는데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젊은이로서 성장해 나가는 한 과정이기에 제대 후 필요한 교육도 시키고 동아리 모임도 하며 군대생활을 잘 활용하게 하더군요. 지휘관들도 부하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챙기고 어려움을 들어주고 따듯하게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병사들이 정신적으로는 좀 약해졌다고 봅니다. 예전처럼 용기를 가지고 어려움을 감내한다든지 하는 것이 많이 없어지고, 쉽게 좌절합니다. 또 신세대 병사들은 종교에 무관심해요. 어려운 환경에서 신앙을 찾게 되는데, 병영생활이 편안해지니까 교회와 신앙생활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신자가정에 태어나도 부모님들이 유아세례를 안 시키는 경우가 많아, 10년 전에 비해 세례 받고 군에 들어오는 젊은이들의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져요.

 

 

군종교구장으로서 느끼는 어려움과 보람

 

신자들도, 신부들도 군인이고 우리 교회도 사목도 그 군이라는 울타리와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거기에서 생겨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서구의 군종주교들은 전혀 겪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군인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신앙체험이나 신앙교육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신자와 군인이라는 두 신원을 공유합니다. 단순함과 충성스러움은 있지만 때로는 신자라는 것보다 군인이라는 의식이 더 앞설 때가 있지요.

 

내후년이 군사목을 시작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인데 지금처럼 안정을 유지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군인주일 헌금이 군종교구 한 해 예산의 80%라는 교회언론 보도도 있었지만, 군종후원회에서 도와주고 드러나지 않게 군종사제들을 도와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재정적인 부분은 예전에 비해서 상당히 나아졌어요. 필요를 따지면 한이 없기에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논산훈련소 연무대성당 건립 의의

 

연무대성당을 건축해야겠다는 생각은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몇 차례 연무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훈련병 3천 명이 미사에 나왔습니다.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고 우렁찬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청년대회도 아니고 세계 어디에 이런 청년미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당이 좁아 절반은 밖에서 미사를 드리더군요. 성당이 너무 좁다고 생각하던 차에 연무대 성당을 거쳐간 신부님들이 사목하면서 느낀 어려움을 저에게 건의도 하고 모든 신부님들의 뜻을 모아 이루어진 성당입니다.

 

연무대에는 전국 각 교구의 젊은이들이 옵니다. 거기는 정말 소중한 곳이고 군대를 거쳐간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추억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연무대성당 짓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시피 전국적인 격려와 지원이 있었습니다. 우선 주교회의 결의로 전국의모든 교구가 분담금을 내어 큰 도움이 되었지요. 게다가 우리 군종신부님들 대부분이 모금활동에 나서고, (웃음) 군인신자들도 육해공군 초월해서 예비역까지 참여했어요. 연무대성당은 국가의 지원 없이 전국 모든 신자의 관심과 정성으로 이루어졌기에 큰 의미가 있지요.

 

성당을 설계할 때도 훈련병들의 의사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고딕식 모델과 신세대 병사들이 좋아할 만한 현대식 모델을 제시해 병사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어요. 재미있는 현상은 훈련을 마치고 일반 부대에 배치된 병사들은 현대식 건물을 선호하는데, 반면 연무대 훈련병들은 고딕식을 굉장히 선호하는 거예요. 훈련병들에게 특별한 정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옛 추억, 고향에서 본 성당의 모습을 좋아하는 듯해서 훈련병들이 선호하는 고딕식 모델로 설계를 했습니다.

 

 

군사목의 현안과 과제

 

군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병사들이 예비신자로서 제대로 충분히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세례를 받기에 재교육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어요. 그리고 제대 후에도 교회활동을 하도록 세례 후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훈련소의 세례 교육은 많이 미흡합니다. 그러나 훈련을 마치고 일반 부대에 배치되어도 2년 동안은 군생활을 하기에 군성당에 나옵니다. 훈련소나 신병교육대에서 부족했던 교육을 이 기간 동안 하는 거죠. 교리나 성경공부는 물론 신앙체험도 많이 하게 하려고 합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주로 하지만 병사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기에 군선교사나 봉사자를 두어 이런 기회를 많이 마련해 주려 합니다.

 

전산 시스템을 활용하여 일반 본당과 연계하여 세례 후 관리에도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병사가 소속된 본당과 연계를 맺어 휴가를 가면 찾아가 인사한다든지, 청년회 활동과 연계한다든지, 전역을 할 때 챙겨준다든지 하면 좋겠죠. 일부 본당에서 병사들에게 주보나 책을 보내주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관리를 철저히 하면 군에서 세례 받고 나가서 냉담하는 비율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10월은 전교의 달, 군선교의 중요성

 

해마다 군대를 ‘선교의 황금어장’이라고 표현하며 군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진부하게 들리나요? (웃음) 불교나 개신교 등 이웃 종교들도 애를 쓰고 있는데, 군선교가 잘 안 되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신앙에 무관심하고 교회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이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하는데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군대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 곳이라 특히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군대가 중요하다는 것은 젊은이들과 접근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던 교회와 사제가 군에서는 바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접근이 쉽고 가능한 거죠. 각 종교의 신자 구성을 보면 젊은이 비율이 가톨릭이 제일 적다고 해요. 가톨릭교회가 젊은이 사목에 약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것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이 군선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군이라는 특수 환경에 와있는 젊은이들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죠. 특히 신세대 병사들은 그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접근하며 위안과 기쁨을 주어야 하기에, 미흡하지만 병사들에게 다가가는 사목을 하려 합니다. 지금까지 잘해주셨지만 군종교구에만 맡기지 말고 이웃 종교들처럼 군선교, 군사목에 좀 더 시선을 돌리고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60년 동안 많은 신부님들이 거쳐갔고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군사목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군종신부로 가는 것을 꺼려했는데 요즈음은 군사목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들어오는 신부님이 늘고 있습니다. 본인이 적극적으로 원해서, 차례를 기다리기까지 하면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군종교구 운영 방식이 조금씩 틀립니다. 필리핀에서는 아예 군종교구 신학생을 양성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100명 넘는 군종사제의 3분의 2는 군종교구 소속 사제라고 합니다. 군종교구 자체로 신학교를 운영하는 나라도 있던데, 그렇게는 못해도 우리도 기회와 여건이 되면 군종사제로 살아갈 신학생을 미리 양성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제의 해를 지내며

 

사제로서 가장 보람된 일은 본당을 맡아 사목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교가 되고 신학교에서 미사를 드릴 때, 주교가 되어 가장 섭섭한 일은 본당신부를 더 이상 해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며 베르나노스가 쓴 “시골신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책 안에 이런 말이 있지요 “도저히 감동 없이는 부를 수 없는 내 본당!” 그러한 본당신부의 주보성인인 비안네 신부님을 본받는 사제의 해를 맞아 요한 비안네 신부님의 전기를 밑줄을 쳐가며 몇 차례 정독을 했습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사제로서의 삶은 철저한 자기희생과 함께한 봉사였습니다. 요즘 사회 전체가 ‘웰빙’이라는 화두 속에 자기 즐거움을 찾느라 애써 신앙을 소홀히 합니다. 교회의 모습도 조금씩 변해가는 이때 사제들마저 자기 즐거움을 찾아 나선다면 교회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피폐한 본당과 교우들을 기도하는 모습과 철저한 봉사로 매료케 해 영적으로 성장시킨 비안네 신부님의 삶을 묵상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을 절제하고 기도에 몰두하고 희생하는 사제의 모습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병으로, 군종신부로, 이제는 ‘청년사목의 보고(寶庫)’인 군사목을 책임진 군종교구장 주교로서 세 번째 군과 인연을 맺어 전국을 누비며 수십만 킬로미터를 달려 온 이기헌 주교는, 사목표어대로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라며 군종신부들과 병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독려하고 있다. 그들이 물처럼 흘러왔다 흘러가는 이들이라 해도 밤새워 이야기할 추억을 공유한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주교가 되어 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목하다 보니 제한이 많아요. 주교가 되기 전 민족화해위원회 활동을 했는데, 북한에 다녀온 분이 이런 이야기를 전하더라고요. 북에서 누가 내 안부를 물으면서 ‘이기헌 신부는 우리를 배반했다. 왜 하필이면 군을 담당하는 주교가 되었는가.’ 하더랍니다.”

 

한바탕 웃으시는 주교님께 웃으며 말씀드렸다. “이제는 전역 날짜도 없으시니 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한을 아우르는 군종교구장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군대가 없어도 되는 세상이 오면 더 좋겠지만요.”

 

[경향잡지, 2009년 10월호, 글 배봉한 편집장 · 사진 이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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