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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색깔로 성모님을 연상케 하는 꽃들, 수레국화 · 잔대 · 선애기별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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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색깔로 성모님을 연상케 하는 꽃들, 수레국화 · 잔대 · 선애기별꽃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는 색은 주로 파란 색이다. 그런 점에서 꽃들 중에서도 파란 색을 지닌 꽃들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성모님과 관련된 이름으로 불려 왔다. 수레국화, 잔대, 선애기별꽃도 그러한 꽃들이다.
‘성모님의 왕관’이라 불린 수레국화
수레국화는 키가 40~90cm까지 자라며, 자연 상태에서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꽃대 끝에서 대개는 짙은 파란색 꽃을 피운다. 더러는 분홍색과 자주색 꽃도 있다. 꽃의 파란색 색소는 프로토시아닌(protocyanin)인데, 이 색소가 장미에서는 빨간색으로 나타난다.
이 식물이 비록 농민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으나, 한편으로는 유럽 일부 지역에서 많은 사랑과 인기를 누렸다. 사랑에 빠진 젊은 남성들이 이 꽃으로 사랑의 성패를 점치는 풍습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 남성이 지닌 수레국화가 이내 시들어버리면 그의 사랑은 그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표시로 여긴 것이다. 또한 파란색 수레국화는 20세기 초부터 에스토니아, 핀란드, 스웨덴 등지에서 사회 해방의 상징이 되었고, 그 뒤로 이들 나라의 나라꽃 또는 특정 정당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 파란색 수레국화는 범(汎)독일 국가들의 국가 상징들 중 하나였다. 프로이센의 루이제 여왕이 베를린을 탈출하여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쫓기던 중에 자녀들을 수레국화가 자라는 밭에 숨겼다고 한다. 아이들은 숨어서 자기들의 땅을 지켜 주고 왕국을 위해 싸우는 프로이센 국민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수레국화 꽃들을 꺾어서 화관을 만들었는데, 이에 몰두하느라 소리를 내지 않은 덕분에 모두 무사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레국화는 프로이센, 독일, 오스트리아의 상징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최근에 에델바이스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1백 년 전쯤에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의 왕이던 투탕카멘의 지하 묘지를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곳에 약 3500년 전에 수레국화꽃으로 만든, 그때까지도 손상되지 않은 채인 화관이 있었던 것이다.
투탕카멘 왕의 일화에 앞서, 그리스 신화에도 수레국화는 등장한다. 반인반마(半人半馬) 종족인 켄타우로스 족의 한 사람으로 의술, 궁술, 예술에 능한데다 예언 능력까지 지닌 현자로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숱한 영웅들을 가르친 스승인 케이론이 히드라의 맹독을 바른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맞았으나, 수레국화의 강력한 즙으로 치유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꽃은 ‘보호’와 ‘치유’를 상징하는 식물이 되었다. 그 꽃잎을 끓는 물에 담가 우린 것을 사람의 눈꺼풀에 바르면 숨을 헐떡이는 증세와 피부나 점막이 빨개지는 발적 증세를 완화하거나 진정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수레국화의 꽃을 보면서 성모님께서 쓰시는 왕관을 연상했다. 그래서 아예 ‘성모님의 왕관’(Mary’s Crown)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성모님의 종(鐘)’이라 불린 잔대
이 식물은 서양에서는 캄파눌라(Campanula)라고 불리는데, 이는 ‘작은 종’이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하는 이름이다. 또는 꽃의 생김새가 종(鐘)처럼 생겼다고 해서 ‘종꽃’(Bellflower)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비너스의 거울’(Venus’s-looking-glass)이고 불리기도 한다.
신화에 따르면, 비너스는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만을 비춰주는 마법의 거울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거울을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거울이 가난한 소년 목동의 눈에 띄었다. 목동은 자기가 주운 거울을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이미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비너스는 큐피드를 보내어 그 거울을 가져오게 했다. 돌려주기를 거부하는 목동을 보고 다급해진 큐피드가 목동의 손을 쳤다. 그 순간 거울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그 조각들이 떨어진 곳마다 아름다운 캄파눌라가 돋아나와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 모양으로 생긴 이 꽃을 보고는 ‘성모님의 종’(Lady Bell)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성모님의 눈’이라 불린 선애기별꽃
이 식물은 그늘진 곳의 축축한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며, 20cm 정도 높이로 자란 줄기에서 한 줄기에 한 송이씩 꽃을 피운다. 꽃의 색은 흰색이나 분홍색도 있지만, 대개는 단아한 느낌의 파란 색이다. 그리고 지름 1cm 정도 크기로 노란색인 꽃의 중심부는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꽃잎은 4개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꽃을 보면서 성모님의 눈동자를 연상했나 보다. 그리하여 ‘성모님의 눈’(Madonna’s Eyes)이라고 불렀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0 8,99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