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와 마음읽기] 본질은 질서와 조화(사소함의 법칙)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라고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저자 ‘어니 젤린스키’는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들은 우리가 어쩌지도 못하고, 어찌할 수도 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쓰고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경영연구가인 ‘시릴 파킨슨(Cyril Northcote Parkinson)’은 사람들은 별것 아닌 결정을 내리는 데 많은 시간을 쓰면서, 정작 중요한 결정은 그 중요성에 비하여 아주 적은 시간을 들인다고 하였다. 그는 이를 ‘사소함의 법칙(Law of Triviality)'이라고 하고 어느 대기업의 임원회의를 예로 들었다.
그 임원회의는 회장과 열 명의 이사들이 두 개의 안건을 다루었는데 하나는 1억 파운드(약 1800억 원)의 비용이 드는 새 공장 건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3500파운드(약 7백만 원)가 들어가는 자전거 거치대 설치 문제였다. 먼저 공장 신축문제에서는 건설이나 그 비용에 대해 알고 있던 두 명만이 의견을 교환하다 15분 만에 결정됐다. 다음으로 다뤄진 자전거 거치대 설치하기는 한 시간 넘게 격론이 벌어졌지만 결론을 내지 못해 다음 회의로 결정을 보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매달리는 현상
이런 현상은 실제로 개인 생활에서도 볼 수 있다. 컴퓨터와 수첩을 살 때를 기억해보라. 컴퓨터를 살 때 결정에 쓰는 시간과 수첩을 살 때 드는 시간이 가격과 비례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컴퓨터에 비해 수첩의 가격은 1/100도 안되니 컴퓨터를 살 때는 수첩을 선택할 때보다 100배의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과연 그런가?
아마도 고작해야 몇 배 정도만 많던가 오히려 수첩을 살 때 드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다. 이는 컴퓨터는 여러 가지 사양을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을 들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결국 전문가의 추천이나 할인율이 큰 것을 살 확률이 높지만, 수첩은 그 가격과 내용 등의 비교를 개인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결정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있을 수 있는 한계인데, 우리들은 대체로 차이를 바로 알 수 있는 정보를 위주로 상황이나 사물을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중요한 정보라도 바로 알 수 없는 내용은 놓치게 되고, 오히려 중요하지 않은 정보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J형제는 어떤 일이든 열정적으로 하는 레지오 단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한동안 냉담을 했던 사연은 다음과 같다. 그 형제는 40대 초반 영세를 하고 바로 레지오 단원이 되었다. 젊은 사람이다 보니 입단하자마자 서기가 되었는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단장이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자 억지춘향으로 단장이 되었다.
그는 영세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데다 레지오를 잘 몰라서 두려웠지만 순명한다는 생각으로 단장직을 받아들이고, 활동배당을 하려고 애쓰고 열심히 훈화를 준비하는 등 교본대로 단장직을 수행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처음으로 사업보고를 하게 되었는데, 꾸리아의 평의원들이 자신이 주력한 활동이나 Pr.의 운영방법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서류 형식의 오류나 숫자에 대한 질문만을 하자 크게 실망하였다. 사소한 것들만 거론하는 평의원들의 행동이 마치 자신을 지적하며 흠을 잡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레지오에 실망한 그는 결국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어 레지오를 그만 두게 되었고 결국 냉담하게 되었다.
오년 이상을 냉담하던 어느 날, 우연히 전(前) 단장과 연락이 된 J형제는 전 단장의 설명과 권유로 성당에 나오게 되면서 다시 레지오를 시작하였다. 현재 Pr. 단장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정말 본질이 뭔지 모르는 평의원들에게 실망이 컸어요. 그건 제가 그만큼 내공이 부족했다는 말이지요. 지금은 나라도 제대로 레지오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제가 성모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꾸준히 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특히 사업보고 시간에 그 Pr.의 장점을 찾아 질문하고 칭찬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꾸리아 분위기도 달라지는 기분인데... 그래도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레지오의 본질과 관련된 사항을 충분히 논의해야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사소한 것에 매달리는 현상은 개인만이 아니고 집단에서도 나타난다. Pr.에서 활동보고나 의견을 나눌 때 너무 사소한 것에 얽매여 이야기하게 되면, 그것이 지적으로 느껴져 단원의 활동에 대한 열성을 잃게 하거나 기를 꺾게 되니 주의해야 한다.
“성실성과 온화한 마음이 깊은 지식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교본 371)는 말을 명심하고 단원들의 사기를 북돋우어야 한다.
또한 평의회에서도 레지오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는데 이는 평의회의 임무가 레지오 마리애의 일치를 확립하고 본래의 이념을 수호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각 본당의 꾸리아는 더욱 중요하다.
“레지오의 본질과 관련되는 사항들을 충분히 논의하고 교육하는 곳은 꾸리아 회합뿐이다. 꾸리아 회합을 통하여 쁘레시디움은 이 모든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모든 행동단원들에게 확산시킬 수 있는 것이다.”(교본 247쪽)라고 되어 있으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소함의 법칙”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일단 안건에 따라 회의시간을 배정하여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한정된 시간에 결정하도록 하고, 아무리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길게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한 사람의 발언시간을 제한해야 한다.
또한 중요한 사안인 경우는 미리 공지하여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는 수시로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등의 열려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결정된 사안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하여도 충분한 논의를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레지오를 통하여 성모님의 사랑으로 행해지는 어떤 행동이든 의미가 있으니, 사소한 행동도 그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 하지만 그 사소한 것들이 자칫 본질보다 더 큰 비중을 지니게 된다면 결국 본질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의 속성과 행동이 비록 우리 안에서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분의 본질은 바로 질서와 조화이다.”(교본 251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월호, 글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한국독서치료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