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와 마음읽기] 불완전한 연장(열등감 콤플렉스)
다음은 누구와 관련된 것일까? 베토벤의 교향곡 ‘영웅’은 이 사람을 두고 작곡된 것이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사람 이름의 콤플렉스가 있는데 ‘작은 키’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 바로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작은 키로 표현되는 신체적 열등감과 보잘 것 없는 가문출신이라는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하여 황제 자리까지 올랐다고 이야기되는 인물이다.
‘나폴레옹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심리학자 아들러이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열등감(feelings of inferiority)을 자신의 연구 이론의 중요한 주제로 삼았는데, 사람이 자신의 장애를 오히려 큰 성취를 위한 동기로 만든 대표적 인물로 나폴레옹을 들었던 것이다.
열등감이란 다른 사람에 비하여 자기는 뒤떨어졌다거나 자기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을 말한다. 이 열등감은 기본적으로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되며, 이 감정이 심해지면 결점이 들킬까봐 불안해지며 위축되고 나아가 우울해지기 쉽다. 그리고 그 우울감은 무기력과 무능력감으로 발전하고 다시 우울해지는 등의 악순환으로 사회부적응 상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열등감을 잘 극복하지 못하고 이것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기 시작하는 상태가 되면 열등감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가 된다.
열등감은 기본적으로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
외모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 외모에 대한 장난기 있는 말에도 지나치게 화를 낸다든가, 외모에 대한 평가가 두려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는다든가 하는 행동이나, 학력에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돈이 많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경우 등, 열등감 콤플렉스의 얼굴은 다양하다.
또한 열등감을 보상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자연히 우월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어, 열등감 콤플렉스는 우월감 콤플렉스와도 무관하지 않아 권력에 대한 욕구와 타인에 대한 지나친 통제로 표현되기도 한다. 지나치게 분노나 눈물이 많은 경우나 순종적인 것 또한, 그 안에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는 울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는 것을 선택한 하나의 형태인 것이다.
J형제는 어릴 때 아버지의 외도가출로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고 성장하였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일찌감치 돈을 벌기 시작한 결과, 열심히 하여 30대 초반에 가게의 주인이 되었고 참하고 똑똑해 보이는 천주교인 아가씨와 결혼을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내가 어떤 의견을 내면 그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 여기며 화를 냈고, 아내가 불평을 하면 그것 또한 자신을 비난하는 거라 여겨 화를 냈다. 심지어 가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풀기 시작하면서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하였다.
자연히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의 일탈이 시작되었고 결국 자식문제로 상담을 받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내면에 아주 큰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처럼 못난 사람을 사랑하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아 믿을 수 없었고, 그런 아내가 친아버지처럼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아내에게 지배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그 후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영세 하던 날, 부족한 자신을 받아들여 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감사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지금도 열등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 열등감을 이기려고 열심히 일한 덕에 오늘의 저가 있다고 생각하니 좀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요즘은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주시는 주님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나의 열등감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간다운 모습
어떤 단원이 나를 모른 체 지나가면 나를 깔본다고 생각되는가? 내가 활동보고를 하는데 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되는가? 나를 칭찬하는 단원의 말이 입발림이라고 생각되고 단원들이 언젠가는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몰라 불안한가? 혹은 내가 하나라도 잘하는 게 있거나 가진 게 있어야만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줄 거라고 생각되는가? 남들이 나에게 부당하게 하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가? 나아가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실패로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며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라는 속말을 하는가? 만약 위와 같은 현상이 자주 드러난다면 열등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징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열등감이 늘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나폴레옹 경우처럼 열등감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열등감은 그 자체보다도 열등감을 바라보는 시각, 즉 열등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따라 그 영향이 달라진다. 실제로 우리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성취하고 성공하는 긍정적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커지면서 열등감을 완화하고 극복할 수 있다. 그러니 열등감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리고 그 부족함에 집중하여 그것을 채우려 하기 보다는 남이 아닌 ‘예전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나아지려고 노력해야한다. 교본에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다”(441쪽)고 되어 있으니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또한 아들러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고 하였으니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열등감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뿐 아니라 나의 열등감을 인정하는 모습이 인간다운 모습일 것이다.
내가 성모님의 군사로 많이 부족하다고 여기는가? 그렇다면 다음 말을 명심하라. “하느님께서는 불가능 속에서 성공을 이끌어 내시고, 불완전한 연장으로 당신의 위대한 사업을 일구어 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기꺼이 드러내고자”(교본 453쪽) 하신다. 또한 우리 레지오 단원은 선서 때 다음과 같이 약속하지 않는가? “주님께서는 저희의 연약함보다는 저희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어, 불완전한 저희를 주님의 도구로 불러 써 주심을 또한 잘 알고 있나이다.”(404쪽)라고. 그러니 우리의 부족함은 오히려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성모님과 함께 일한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우리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게 된다. 이 협력 관계에서 레지오 단원은 뼈아픈 약점 외에 무엇을 보여 드릴 수 있겠는가?”(교본 54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3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한국독서치료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