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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20: 완덕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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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19 ㅣ No.722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20) 완덕의 삶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삶엔 끝이 없다

 

 

필자는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거룩하고 완전한 것처럼 자신도 거룩하고 완전하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거룩함에로의 보편적인 부르심을 이야기했습니다. 한편 지난번에는 그리스도인이 영적 발전의 여정을 걷기 위해서 수덕 생활을 통해 악습은 끊고 성덕은 닦아야 하는 영성 훈련을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거룩하고 완전하게 되기 위한 영적 여정의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성덕이 완성된 단계를 완덕(完德)이라고 합니다. 이 완덕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완전성’에 대한 이해가 함께 필요합니다.


완덕은 시간적 개념 아닌 존재론적 개념

우리말 사전을 찾아보면 ‘완성’은 ‘완전히 이룸’이라 설명하고 있고, ‘완전’은 ‘부족함이 없고, 결점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서양말 어원에서는 ‘어떤 과정이나 행위가 기간을 다 충족하여 완료되었다’는 의미로, 시간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축구 경기는 전후반 90분을 다 뛰어야 경기가 종료됩니다. 하지만 철학이나 신학에서는 ‘어떤 사물이 자신의 본성이나 본질을 온전히 구현해 그에 합당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써 존재론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금화 동전은 금으로만 만들어야지 다른 금속이 포함되면 금화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완덕은 어느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까요?

- 독일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4)의 '기도하는 손'.


그리스도인이 성덕을 완성하는 행위는 시간적인 기준보다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하시다는 시간적인 관점보다는 하느님께서는 계시다는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심은 하느님의 한 가지 속성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외에도 선하시고, 진리이시고, 사랑이신 또 다른 많은 속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완전 그 자체인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은 자신의 본성 안에서 하느님의 완전성을 구현하려고 노력해야만 완덕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완덕에 이르려면 성화 은총 필요해

그런데 통합적으로 충만한 완전성을 지닌 존재는 오로지 하느님뿐이고, 피조물인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상대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완전성을 추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본질상, 작용상, 그리고 목적상의 관점에서 완전성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본질상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이 완덕에 다다르려면 성화은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인간을 거룩하게 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거룩하신 하느님 본질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작용상 관점에서는 애덕 실천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행동으로 하느님을 가장 잘 본받는 방법은 바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본받아 애덕을 가능한 한 많이 실천하는 길일 것입니다. 또한 목적상 관점에서는 인간 영혼이 최종적으로 하느님과 합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창조된 인간은 살아서는 창조주 하느님을 향해야 하고 죽어서는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리길 바라며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향해 나아가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완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데 방해되는 감정적인 움직임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지 측면에서 늘 나약함을 드러내는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는 감정적인 움직임을 습관화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성덕이 완덕에 가깝게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 인간은 또다시 죄에 물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소죄의 경우에는 발전된 성덕에 큰 상처를 남기지 않겠지만, 대죄의 경우는 주의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살아있는 동안 성덕을 완성하는 완덕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느님 본성을 다 본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하느님 은총이 나를 얼마만큼 성화시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끊임없이 살아야만 한다는 점을 늘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9월 13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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