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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24: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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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9-26 ㅣ No.725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24)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생애 ④


무신론자 에디트, 현상학 배우며 지적 회심



젊은 시절의 에디트 슈타인.


괴팅겐대학에서 현상학을 배우다

1903년 괴팅겐대학으로 옮긴 에디트는 그곳에서 현상학(現象學)이라는 새로운 철학 분야를 개척한 에드문트 후설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에디트는 후설의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이 추구하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이때부터 에디트의 생애에서 결정적이고 중요한 시기가 시작됩니다. 현상학은 에디트 슈타인이 세계를 보는 관점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에디트는 괴팅겐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지적인 여정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인문학에서는 이성을 중심으로 사고를 판단하고 진리를 추구했으며 거기서 중요한 것은 대상(對象)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상학은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진리를 추구했습니다. 현상학에서 중요한 것은 근원이 되는 것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진리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진리를 다시 만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현상을 통해 진리가 드러나며 인간은 그 현상에 자신을 열고 그 진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당시 학문에서 만연했던 지성주의는 지성으로 사물을 분석하고 쪼개서 진리를 재구성하는 방법론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현상학은 원래 있는 진리를 얼마만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나는가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현상학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상(본래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현상학은 이미 있는 현상을 관조하면서 존재하는 진리를 향해 자신을 열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현상학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현상에 자기 자신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괴팅겐대학교. 4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대로 에디트가 현상학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무신론자에서 종교 현상에 대한 인정으로

반면, 지성주의자들은 입증할 수 있는 것만을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는 현상학적 방법론과는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지성주의적인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상학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존재합니다. 종교 현상을 보면서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하느님께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이 새로운 사고방식은 에디트 슈타인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비록 에디트는 무신론자였지만, 이때부터 종교 현상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에디트의 지적인 회심은 그 이후 신앙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괴팅겐대학 시절 그는 여전히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현상학 자체에만 목적을 두고 학문을 하진 않았습니다. 여하튼 에디트는 이러한 여정 속에서 괴팅겐에 남아 후설의 지도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

이 시기에 에디트의 진리 추구 여정에서 또 다른 반전의 계기를 가져다준 사건이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바로 그렇습니다. 당시 에디트는 학업을 중단하고 어떻게 인류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여자였던 에디트는 전시 상황이더라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족, 나아가 인류와 함께 연대하고자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적십자 산하에서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1915년 적십자는 에디트를 오스트리아 지역 내에 있는 메에리쉬 바이스킬헨의 야전병원으로 파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은 전염병 환자들만 치료하는 병원이었습니다. 자칫 병에 옮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전쟁 중에 고국 밖에 있는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어머니의 반대가 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디트는 그 병원에서 6개월간 봉사했으며 이 체험은 그 후 그의 지적 여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에디트는 이 환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전쟁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통해서 그는 “전쟁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숙고하고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숙고를 통해 에디트는 인류가 자기 스스로에게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일 인류가 자신의 품위에 대해 알았다면, 서로 죽이는 비참한 상황에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보았습니다.

이 비참한 상황은 에디트에게 더욱더 진리를 탐구해야겠다는 열망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간호사로서의 병원 봉사가 끝나자 그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학업에 매진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9월 27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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