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사순 1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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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2-20 ㅣ No.32

사순 제 1 주일 (가해)

        창세 2,7-9.3,1-7  로마 5,12-19  마태 4,1-11

     1999. 2. 21.

 

주제 : 약한 인간의 마음을 극복하기

 

오늘은 1999년 사순 시기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 사람들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인간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인간이 겪는 고통을 받아들이신 기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고통을 왜 겪으셨고, 그것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생각하고 묵상하며 사순절을 지내기는 하지만,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뜻에 맞춰 완벽하게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는 인간의 나약한 특성이 우리와 곁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이 사순절 시기는 나약한 인간의 특성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있는지 함께 그 방법을 찾아보는 기간입니다.

 

나약하고 뭔가 의지할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람이긴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나약함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우리 주변을 돌아보아도 내가 가진 인간의 조건보다 덜 만족스러운 것이 분명한데도 더 행복해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진 재산도 나보다 적고,, 그가 겪고 있는 환경도 나보다 특별히 나을 것은 없는데도 나보다 즐겁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눈에 보이는 조건들 때문에 우리 삶이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핑계요,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의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게 전가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열 명이 모이면, 열 가지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약한 모습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하느님의 도우심을 빌어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세상에서 고통없이 사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행복하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실제의 모습은 당사자가 되어 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마주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라 해도 좋고,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이 겪은 일은 우리에게 수시로 일어납니다.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욕망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해도 채워지지 않는 세 가지 욕망은 ’식욕(食慾), 성욕(性慾), 수면욕(睡眠慾)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제게도 이 세 가지 욕망은 항상 있습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욕망을 다스리고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대충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의 생활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닥쳐오는 유혹에 대한 올바른 처신 방법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유혹을 올바로 이겨내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오늘의 성서 말씀을 통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혹은 아무런 형태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형태가 없기에 그것만큼 알아채기 어렵고, 그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유혹이 무서운 모습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순간에 조금씩 우리의 생활을 좀먹기 때문이고, 유혹에 빠져서 헤어나기가 어려울 때가 돼야 가슴을 치면서 후회하고 스스로 바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서 뱀으로 등장하는 유혹자는 여인에게 다가가 미혹시키는 말로 유혹의 말을 던집니다. 만일 유혹이라고 하는 것이 흉한 모습이거나 당장 우리가 치뤄야 할 수고가 많은 것으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거기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것이 유혹인지 아닌지를 구별하지 않고 일단 일을 하고 맙니다.  "하느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데 그것이 정말이냐?"  유혹자 뱀이 던지는 말입니다. 이 미물보다도 훨씬 더 지능이 뛰어난 인간은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빠져듭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애초에 하신 말씀도 잊고, 하느님의 뜻을 자기 맘대로 해석합니다.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되,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지능이 뛰어나서 세상의 사물을 지배한다고 외쳐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할 자유가 있다고 외치는 인간의 해석입니다.  악의 힘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미 미끼를 물었으니, 낚시 줄을 당기기만 하면 됩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하느님 판단에 너희가 이러저러하게 될 줄을 알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유혹자 뱀의 이 말은 사실입니다.  

 

유혹은 그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되지 않는 일로 시작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달콤한 말이 이어지기에 어디까지가 유혹이고, 어디서부터 우리가 제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하는지 미처 구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미리 구별할 수 있다면, 아마 우리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쫓아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상당수의 경우에 다른 사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차라리 책임을 인정하고 돌아설 방법을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겠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이 성서를 기록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묵상이기도 했습니다. 구약성서 창세기 3, 4장을 읽어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는 왜 예수님과 같은 확신이 없을까? 안타까운 것이면서도, 부러운 모습입니다. 인간이기에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따라 살려고 노력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악마의 재주로 예수님께 던졌던 세 가지 유혹 ’재물과 인기와 권력’으로부터 초탈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문제는 우리 주변에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에 생기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이것이라고 해도 틀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는 우리가 그렇게 원인을 알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유혹이 우리 앞에서 자랑하거나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유혹의 기회를 피하는 것은 소극적인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선택할 일입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인간 최초의 범죄와 예수님의 순종을 비교합니다. 범죄보다는 하느님 은총의 힘이 더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일을 한 후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압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서 느끼지 체험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겨냈을 때의 상황도 그와 비슷할 것입니다. 삶의 기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신앙도 신앙인으로서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삶에서 그와 같은 기쁨을 갖고 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바꿀 필요가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사순 첫 주간의 첫날입니다. 사순절을 마치면서 우리가 어떤 희망의 삶을 갖기 원하는지, 그것은 지금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에 따라 달라지고, 우리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 가 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얼마나 기도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겨내고 두 팔을 벌려 우리를 기다리시는 예수님께 기쁜 마음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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