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주님수난성지주일]광주주보-민세영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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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goodnews] 쪽지 캡슐

1999-03-26 ㅣ No.50

[광주주보에서 옮겨왔습니다.]

수난의 여정에서  

민세영 신부/농성동 성당 보좌

 

 1894년 10월 21일의 일입니다. 전봉준과 손병희가 이끄는 동학군은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연합군을 맞아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막강한 전투력과 근대적 무기의 화력에 비해 동학군은 농사짓던 농민들이 낫과 죽창, 돌맹이에 몇 정의 총밖에 없는, 누가 봐도 질 게 뻔한 싸움이었습니다. 동학군도 이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부녀자와 아이들을 피신시키고 연합군을 맞아 싸웠습니다. 그들에게는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꼭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학군의 완패로 전투는 끝났고 대부분의 동학군은 전사했으며, 동학의 지도자 전봉준도 곧 잡혀 참수당합니다. 이 우금치전투를 마지막으로 1년간의 동학혁명은 막을 내렸고 그동안의 희생자는 3-4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질 것이 뻔한 싸움에 하나뿐인 목숨을 던졌겠습니까? 그들 외에도 우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종교를 위해 목숨을 던진 분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이 무모하고 바보같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질 것이 뻔하다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도 외쳐댔던 짓밟힌 민초들의 외침을 뒤로 하고 도망쳐야 했을까요?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비록 짧지만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길고 긴 수난의 여정을 앞에 두고 주님께서는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앞으로 있을 그 많은 고문과 매질과 십자가의 죽음이 두려우니 치워달라고 애원합니다. 하지만, 곧 스스로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십니다.

"패배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서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고 세 번이나 넘어지는 좌절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특별히 좌절과 어려움의 무게에 눌려 쓰러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안다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간이 나 혼자만 고통받는 시간이 아닌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간이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사는 시간입니다. 지금 나를 넘어뜨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더 이상 바닥에 누워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승리든 실패든 결국 내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처럼 우리도 내 주위의 넘어진 형제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동학군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이 이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오늘, 나의 삶을 뒤돌아보며 어떤 자세로 세상을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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