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11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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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6-13 ㅣ No.124

연 중 제 11 주 일 ( 가 해 )

 

          출애굽기 19,2-6a 로마 5,6-11 마태 9,36 - 10,8

       19999. 6. 13.

주제 : 하느님이 원하시는 생명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삽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사람은 먼저 현재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미래의 불확실한 준비를 위하여 움직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이 지금 하시는 일과 생각들도 분명 언젠가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모양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 일을 알고 짐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자세로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지는 이미 답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 가운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는 일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질문하고 대답하는 이 순간은 참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우리가 갖는 삶의 자세에 따라서 하느님까지 기쁘실 지 아니면 나만 기뻐하는 데서 끝낼 것인지 그것이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참으로 복되게 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누군가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줄 것처럼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합니까?"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보통 욕심을 드러냅니다.  더 많은 돈, 여유있는 더 많은 시간, 남들이 나를 지금보다 더 귀중한 사람으로 봐 주는 것, 더 편안한 삶을 바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에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구비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목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에 나오는 역할들, 즉 어려움에 동참하고 그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가도록 애쓰며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그 일이 목숨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는 몰라도 우리 생명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한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목숨을 귀중하게 여기기보다는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생명을 간직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는 선행으로 대가를 받으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선행의 대가(代價)는 권리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따라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은 우리가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받을 수 있도록 움직이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고 우리보다 앞서서 제자들의 선택을 교회는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모름지기 목숨보다는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 돼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생활을 안타깝게 여기며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 가 닿기를 바라셨을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6월은 예수 성심성월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사람의 일에는 먼저 할 것과 천천히 해도 좋을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인간의 판단이 앞서면 지금은 생명을 얻게 하는 방법으로 보이는 것이 목숨을 구하는 차원에서 끝날지도 모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주 주는 자세’,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거저 받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 독서 출애굽기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거저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역사시초의 순간에 계약을 통해서 우리가 자유롭게 된 것이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계약은 사랑을 바탕으로 합니다.  계약을 기억하면서 서로간에 의무가 부여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너무나 좁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방법인 계약이 부담스러운 규정으로 남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눈을 갖고 바라보더라도 삶의 희망을 갖는 것은 준비하는 자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름을 남기고 죽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남은 이름 어느 것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만들어 낼 삶의 결실을 위하여 사랑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미사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고양동 신자 여러분,

여러분 안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은 세례를 통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몫은 여러분이 그 사랑을 키우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으로서 이루신 화해를 통하여 그 사랑의 싹을 심어주셨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 자신의 앞가림을 먼저 해야만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하느님이 심어주신 사랑의 싹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연중 11주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지혜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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