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12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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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6-18 ㅣ No.125

연  중  제  1 2  주 일 ( 가 해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예레 20,10-13    로마 5,12-15    마태 10,26-33

       1999. 6. 20.

 

주제 : 참으로 중요한 것, 생명.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자연 가운데 머물며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이곳에 함께 하지 못한 본당 공동체의 형제와 자매들에게도 마음으로나마 이곳에 함께 하도록 초청해야 하겠습니다.

 

(자연에 머물고 있는 이 순간)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답은 없는 질문입니다. 다만 우리의 응답에 따라 우리 삶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니, 대답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중요하거나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똑같이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으므로 그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혜도 필요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성당에서) 생명과 목숨의 관계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목숨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목숨을 위한 양식이지, 생명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여러 가지로 판단할 수 있는 일들이 섞여 있는 세상에, 오늘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중요한 생명,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증명하는 영혼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은 세상살이에서 가끔씩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복음에 나오는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  영혼은 생명의 차원이고, 육신은 목숨의 차원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것을 헛갈리게 가르칩니다.  생명은 안중(眼中)에도 없고 목숨만이 최고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목숨을 최고로 가르치는 세상은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고, 이익에 따라 그 생활의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 올바르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참된 생명을 위한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차원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부모의 원수를 자식이 갚아야 하고, 자식이 실행하지 못하면 손자가 대신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들에 많은 무술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목숨의 차원에서는 통용될지 모르지만, 생명의 차원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일이고, 적용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첫째 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같지 않게 잠시나마 목숨의 차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 것 같지 않은데도,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주님께 노래불러 드려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악당의 소굴에서 빼내주시는 분이시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슬픔 가운데서, 동족들의 배신으로 생(生)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을 흩뜨릴 수 있는 차원의 것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그의 삶은 하느님을 향하여 돌아서 있었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비록 살아있었을 때에 모든 것을 체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새로운 삶의 방법을 택합니다. 이런 삶의 변화가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삶이고, 이런 삶의 변화가 우리의 세상에 만연돼있는 죄악을 하나씩 없애버릴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처음의 목숨의 차원에서 생명의 차원으로 바로 넘긴 사람이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죄악이 우리 곁에 오기는 쉽고, 죄악이 우리 삶에 뿌리내리기는 쉬워도 그것을 없애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순수한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숨을 중요시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생명을 중요시하는 삶으로 바꾼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이 세상의 인류에게 그 힘을 떨친 죄악도 하느님의 은총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죄악에게 부여된 한계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죄악을 거부하는 사람, 죄악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그것이 정해진 이치이고, 그것으로 악의 힘은 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연을 벗삼아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봉헌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이 행위가 하느님께 참으로 기쁨이 되게 하려면 우리 안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이 자리에서 모이신 여러분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공동체를 귀중하게 여기고, 승부보다는 사랑의 마음을 중요시하는 일을 통해서 그 기쁨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곁에서 악의 힘을 몰아내고, 우리 곁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을 머물게 하려면 오늘 하루도 기쁘게 지내야 합니다. 고양동 교회의 공동체를 위하여 잠시 마음의 기도를 하느님께 봉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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