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31 주일-가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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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2-28 ㅣ No.374

연중 제 31 주일 (가해)

          

        말라기 1,14ㄴ-2,2ㄴ.8-10 1데살로니카 2,7ㄴ-9.13 마태 23,1-12

     

    2002. 11. 3.

 

주제 :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는 방법

 

안녕하셨습니까?  

가을도 없이 겨울로 넘어간 것처럼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 더 먼저인 것처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준비해야 할 일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예년보다 겨울이 보름 정도는 빨리 찾아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기온이 내려가고 추워지면 사람들은 몸을 움츠립니다.  사람이 몸을 움츠리는 것은 바깥의 차가움에 노출되는 면적을 줄여서 몸이 만들어내는 열량을 더 많이 보존하자는 자동적인 온도 조절 장치일 것입니다. 열량을 보존하기 위해서 몸을 움츠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싸매면 변하는 날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보호가 지나치면 우리 몸이 맥을 못 추게 될 수도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 몸이 자동적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도 그 효과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위령성월, 11월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위령성월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는 때입니다. 위령성월에만 기도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따뜻함을 생각하며 자꾸만 안으로 파고들며 나 혼자만을 생각하기 쉬운 때에 우리와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혹시 외로움에 빠져 있을지 모를 영혼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도록 청해야 한다는 것이 위령성월을 정한 교회의 의도라고 할 것입니다.  위령성월에 합당한 일을 우리가 올바로 한다면, 주일 미사 때에 늘 하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실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일에는 함께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사람으로 산다면 우리 마음을 잘못 드러내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는 방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비판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특별한 무리들입니다만, 이 사람들이 보였던 본보기는 욕을 먹기에 충분했던 듯 합니다.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는 메워주면서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사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 삶의 방법을 택했던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들먹이며 현실과는 분리된 삶을 살았기에 문제가 됐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말 그대로 따르는 일은 참으로 힘듭니다. 불가능한 말씀을 하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세상이 가만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힘을 덜 들이고 이왕이면 내 몸 움직이지 않고 이익을 챙기는 것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살아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쉽게 가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곁에 내 손에 잡힐만한 거리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에 예수님의 뜻을 당장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복음을 잘 새기면 아주 모를 내용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삶의 모습과 예수님이 원하시는 뜻이 다른 이런 삶의 괴리(乖離-서로 어그러져 동떨어짐)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신앙인의 삶은 양쪽 언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통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발을 헛디디면 전혀 원하지 않는 곳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 둥그런 통나무 다리에 올라선 사람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듣는 말씀은 개인이 잘못되는 것을 말하는 단계를 넘습니다.  내가 무심코, 그리고 별다른 생각 없이 보인 행동이 자신에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고 내 행동을 보고 뭔가를 배울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입니다.

 

말라기 예언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바른 길을 떠나 제 멋대로 사는 사제들이 올바른 길을 버리고 잘못 가르친 결과로 동족들에게 다가온 것은 멸시와 천대였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잘못된 결실을 거두려고 애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후회하고 행동을 고치는 일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후회하고 반성해서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있고, 그것을 두 번 세 번 정성껏 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함께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느님의 뜻에서 어긋나는 길을 가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재빨리 돌아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계약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고 우리의 행동으로 축복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위령성월 11월을 지내며 우리보다 먼저가신 분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과 더불어 우리의 삶도 하느님이 허락하실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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