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정과 아동의 권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71

가정과 아동의 권리

 

 

1. 변화하는 가정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은 하느님께서 인간 사회에 만들어 주신 가장 아름다운 제도이며 인류 문화의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가정은 끊임없이 상호 작용 하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원초적인 집단이며, 따뜻한 사랑과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강한 운명 공동체로서 우리는 가정을 통해 질서와 예절, 경쟁과 타협, 기본적인 학습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은 최초의 학교이며 부모는 최초의 교사가 된다. 사회학자 콜만(James Coleman)은 "가정 환경의 총체는 학교 변인의 총체보다 훨씬 크며 가정은 14세까지 아동의 성취에 있어 학교에 비해 2배가 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산업화, 도시화로 사회 구조가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가족의 형태가 전통 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어 왔으며, 가족 기능의 약화와 구성원들의 역할 혼돈으로 부부의 불화, 가출, 이혼 등 가족 해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학교에 교사와 학생은 있으나 참 스승과 제자가 드물듯이 집은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가정을 보기가 힘들고 부모는 있으나 참 어버이를 찾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올바른 부모 교육 없이 올바른 자녀 교육이 있을 수 없으며 올바른 자녀 교육이 없이 훌륭한 자녀를 기대할 수 없고, 나아가 올바른 미래 교회와 미래 사회의 역군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의 가정은 과거에 비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자녀들은 생명을 건 어머니의 산고가 아닌 병원에서 의술의 도움으로 태어나며 부모가 아닌 대리 양육자나 어린이 집에서 보육되고 부모의 훈육이 아닌 TV나 인터넷의 영향을 더 많이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자녀들에게 명령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시간을 가지며 실수를 인정해 주고 관심을 가져 주며 무엇보다도 가정 내에서 아동을 하나의 인권을 가진 인격체로 양육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며 아동의 권리를 학습하는 것은 아동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2.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21세기를 인권의 세기라고 한다면 아동의 권리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1920년대 초 일찍이 '어린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고 그의 길지 않은 일생을 어린이 애호 운동에 바친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높이 올려다 볼 것과 어린이의 말을 소중히 들을 것을 여러 번 주장한 바 있다. 1923년 4월 20일자 [동아일보]는 "소년 운동의 신기치(新旗幟)"라는 제호의 기사에서 어린이들이 말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말을 신중히 들어야 한다는 어린이 권리를 선언한 놀라운 내용이 실려 있다. 이는 실로 우리나라가 1922년 영국의 아동 권리 헌장이 발표된 바로 다음 해에 일찍이 아동의 권리를 선언한 나라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들 선각자들이 이 땅의 어린이의 권리를 선포하고 "어린이를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라고 외친 지도 벌써 80여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가정에서는 훈육의 방편으로 학교에서는 징계의 수단으로 체벌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학교와 사회에서 어린이들에 대한 폭력이 늘고 있다는 현실은 부모와 교사와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우리 사회는 우리의 내일이며 미래인 어린이들을 밝고 맑고 씩씩하게 키워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위한 어린이의 권리는 어린이들의 목소리(Voice of children)를 듣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 부모들과 학교에서 교사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먼저 어린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며, 잘못을 꾸짖기에 앞서 어린이들의 설명을 들어야 하며, 매를 들기 전에 반드시 어린이들의 이유를 신중하게 경청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때로 어린이들은 몸짓으로 말하며 표정으로 말하며 행동으로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형태가 문제가 아니라 말하고 있는 내용을 부모들이 인내하며 들어주고 이해해 주려 하는 것이 어린이의 인격을 가장 존중하며 그들의 진정한 권리를 보장해 주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를 '아동의 세기'라고 한다. 실로 인류 사상 20세기는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을 보장하며 나아가 아동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부단한 노력이 시도된 위대한 한 세기였다. 따라서 다가올 21세기는 아동의 권리가 확고히 보장되는 아동의 세기가 될 것이다.

 

 

3. 아동의 권리란 무엇인가?

 

아동의 권리는 일반적으로 복지권, 보호받을 권리, 적극적인 의사 표시권 그리고 참여권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곧 모든 아동은 적절한 의식주를 제공받으며 건강하고 위생적인 삶을 향유하며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복지권, 폭력과 공포, 학대와 방임에서 보호받을 권리,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와 자신이 원하는 각종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권리의 주체인 아동은 법률상 미성년자이며 사회 관습적으로 양육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류사에서 부모의 자산이나 소유물로 그리고 종족의 유지나 국가의 보호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왔다. 따라서 아동의 권리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었다. 아동관이 변화되기 시작한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법은 전통적으로 아동을 보호의 객체로 파악했을 뿐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을 위한 적극적인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봉건 제도가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탄생한 근대 사회는 구빈법으로써 아동 보호에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고 또한 민간 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러나 산업혁명에 따른 자본가들의 무리한 이윤 추구는 임금이 싼 연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 노동력의 착취를 초래하였다.

 

산업 사회와 도시화로 특징지어지는 현대 사회는 국제 사회의 노력으로 수동적인 아동 보호에서 능동적인 아동 권리 보장이라는 적극적인 아동 권리 사상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동이 보호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과 인내가 필요하였다.

 

 

4. 어린이들은 왜 자신들의 권리를 배워야 하며 누가 가르쳐야 하는가?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은 어린이에 대한 우리 사회와 어른들의 다짐이며 약속이다.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 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에 담겨 있고 본문 제11조에서는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임을 명시하였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으로,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자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지구촌에 존재하고 있는 어느 가정, 어느 사회에서도 어린이들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어린이들이 소속된 공동체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유능하고 책임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어린이들은 매일 거리와 학교에서 폭력에 시달리며, 약물의 유혹과 성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성장 발달을 보장해 주어야 할 가정을 상실하거나 가정으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소년 소녀 가장이 되고 나아가 가출하거나 유기당하는 등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와 같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기본적 욕구가 무시되며 기본권을 침해받은 경험을 학습한 어린이들이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숙하기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중요한 아동의 권리의 학습은 일차적 환경인 가정에서 부모나 형제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학교에서 교과 과정을 통해 교사에게 배워야 하며 무엇보다도 아동들 스스로 권리의 개념을 배우고 이해하며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한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어린이들의 인권 학습을 위해 어린이들의 권리를 가르치며 어린이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말할 수 있는 부모-자녀 관계를 정립하며 학교 환경에서 아동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학생들 스스로에 의한 아동 권리 옴부즈맨 제도 등을 실시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5.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

 

아동 권리 사상은 1922년 아동복리회(Save the Children Fund)의 창설자인 애글란타인 잽(Eglantyne Jebb) 여사가 성문화한 '아동권리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Child)에서 싹이 텄다. 그의 '아동권리선언'은 1924년 9월 26일 국제 연맹에 의해 유엔 '제네바 선언'(Declaration of Geneva)으로 채택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유엔은 1946년 산하 기구인 경제 사회 이사회에 제네바 선언의 개정, 보완을 요청했고 1948년 제네바 선언을 7개조로 보완하여 재선언하였다. 이후 1959년 11월 20일 세계 78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유엔아동권리선언'(UN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Child)이 채택되었다. 1979년 11월 20일 유엔 총회에서 결의되었고 1979년 '세계 아동의 해' 10주년을 기념하여 1989년 11월 20일 마침내 유엔은 전문 및 54개조로 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Convention of the Rights of the Child)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 협약'은 아동을 보호의 대상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고 무차별의 원칙, 아동의 최선의 이익 우선,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및 아동의 참여라고 하는 4개의 주요 원칙을 중심으로 ① 적절한 생활 수준을 누리며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생존의 권리, ② 교육, 놀이, 여가, 정보, 문화 활동,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를 누릴 발달의 권리, ③ 각종 착취와 학대, 가족과의 인위적인 분리, 형법 등의 폐습으로부터 보호받을 보호의 권리 그리고 ④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와 자기 생활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하여 말할 수 있으며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기 위해 아동 자신의 능력에 부응하여 적절한 사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참여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6. 어린이들이 올바른 이름을 가질 권리는 보장받고 있는가?

 

어린이는 누구나 태어나면서 그의 일생과 함께할 이름을 얻게 된다. 이름은 그의 성별에 어울리게 정성들여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부모의 무지나 무관심으로 '후남'이나 '귀남'이와 같이 아들을 얻기 위해 여자 아이에게 남자 이름을 지어 준다거나 '분례'와 같이 천한 이름이 장수한다는 근거 없는 속설에 따라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 이러한 이름이 어린이에게 일생 동안 심각한 수치심을 주거나 치명적인 열등감을 심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어린이의 이름은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며 소속한 가정과 연결되는 소중하고 고유한 이름이어야 할 것이다.

 

 

7. 어린이에게 가하는 폭력적 체벌은 필요한가?

 

자녀가 말을 듣지 않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경우 누구나 매우 분노하거나 때로는 슬픔과 깊은 상실감을 갖게 될 것이며 그것이 유일한 최선의 문제 해결 방안인 양 어린이에게 훈육을 가장한 폭력적 체벌을 가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부모의 폭력적 체벌은 엄밀히 생각해 보면 부모 자신의 감정 해소의 방편일 경우가 적지 않으며, 따라서 역효과를 가져오기 쉽다. 교육 심리학자 스키너는 체벌을 가하는 이유는 가해진 체벌의 효과가 앞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그릇된 생각이나 체벌 이외의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또는 대부분 자신의 화풀이며 이러한 경우 이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부모 자신이 어떤 실수나 잘못으로 타인에게 신체적 구타나 체벌을 받았다고 할 때 부모들은 이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록 발달 중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인 어린이들에게 가해진 모든 폭력은 깊은 상처를 남기며 자존심과 독립심을 파괴하는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주어 평생 동안 치료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폭력이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는 경우에 이것은 어린이들의 깊은 신뢰와 애정이 담긴 대인 관계 형성을 저해하며 폭행을 당한 어린이는 반드시 폭력을 가하는 어른이 된다는 점에서 부모나 교사는 어린이에 대한 어떤 형태의 체벌을 가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 청소년의 폭력이 증가되고 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학습된 폭력은 사회에서 반복되며 오늘날 청소년 폭력을 부추기게 된다.

 

우리나라는 유교적 관습에 따라 자녀에 대한 부모의 훈육권과 학생에 대한 교사의 징계권이 전통적으로 널리 수용되고 있기 때문에 아동 구타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한국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자녀에 대해 체벌을 가한 경험이 있는 미국의 어머니들이 전체의 26%, 일본이 32%인데 비해 한국의 어머니들은 76%나 된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어린이 체벌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물론 '사랑의 매'가 부모의 애정과 교사의 사랑이 담겨 있고 어린이가 공감하는 체벌인 경우 그 효과를 무시하거나 그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매'라는 미명 아래 체벌이 훈육과 혼동되어 남용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그러면 어린이들이 잘못을 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린이를 어두운 방에 감금하거나 위협하거나 대화를 거부하거나 멋대로 놔두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체벌보다 더 큰 상처를 가져올 수도 있다. 어린이들은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 도덕적으로 성장 발달 단계에 있으므로 행동의 분명한 한계를 가르치며 옳고 그른 것에 대해 올바르게 지도해야 할 의무가 부모에게 있다. 부모는 가능한 한 모든 교육적 조치를 취해야 하며 옳고 그름에 대해 자녀들과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가 있을 수 없듯이 완벽한 어린이들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때로 벌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을지라도 체벌만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8. 우리의 자녀들은 학교 폭력으로부터 안전한가?

 

우리의 자녀들은 학교 폭력으로부터 안전한가? 우리의 자녀들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인가 아니면 가해자인가? 학교에서 서로 싸우고 힘 있는 학생이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으나 오늘날처럼 학교 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때는 없었을 것이다. 학교 폭력이 집단화되고 있으며 폭력의 목적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금품을 갈취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오늘날, 학교 폭력은 분명한 범법 행위이다. 그러나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전학을 하거나 학업을 포기하거나 심지어는 자살을 기도하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는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였다. 돈이 없어서 매를 맞고, 공부를 잘한다고 구타당하며, 허약하다고 괴롭힘을 당해야 한다면 학교는 더 이상 정상적인 교육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 결과는 공립 중학교의 학교 폭력 발생률이 전체의 31.5%이고 공립 고등학교는 41.3%나 되며, 사립 중학교는 29.4%, 사립 고등학교는 34.8%에 이른다고 발표되었다. 전체 중학생의 30%와 고등학생의 38%가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 폭력을 넘어 학생 범죄의 수가 지난 30년 동안 약 7.6배나 증가되었으며 14세 미만의 여자 폭력범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학교 폭력이 심각함에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그것은 이웃집 자녀의 일이며 자신의 자녀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실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자녀의 학교 생활에 대한 무관심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 의미에서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거나 아니면 가해자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있다면 분명히 가해자도 있다는 말이며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일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은 바로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자녀가 남에게 매를 맞고 들어 오면 야단을 치고 이기고 들어 오면 자랑을 하는 그릇된 부모의 양육 태도, 보복이 두려워서 신고를 꺼리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잘못된 태도, 학업 성적만을 따지는 부모, 자녀의 능력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부모, 자녀에 대한 무관심 등이 학교 폭력을 조장하는 일차적 요인이 되며 더욱이 가정에서의 부모의 폭력이 자녀의 학교 폭력으로 연결된다고 하는 사실을 부모들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9. 놀이는 학습의 반대 개념인가?

 

부모들은 "우리 애는 오로지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은 어린이들의 놀이는 학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놀이는 생래적인 것이고 새로운 발달 단계로의 전진을 의미하며 놀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사회 과정을 밟아가 대인 관계의 기술을 습득한다. 놀이는 또한 어린이들의 욕구나 감정의 발산을 충족시켜 주는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된다.

 

고등 동물의 세계에서 어릴 때의 놀이는 그 동물의 생존 능력을 훈련하는 본능적 행동으로 설명된다. 만약 이러한 설명을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린이들의 놀이가 지니는 교육학적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서 사회적, 문화적 적응과 성숙의 절차를 밟기 때문에 놀이는 어린이들에게 인간 형성의 과정이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해 상상력을 기르며 이 상상력은 바로 창조력의 바탕이 된다. 그런데도 최근 우리 사회의 교육적 분위기는 어린이의 놀이에 대해 유별나게 부정적 생각을 지니게 하였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어디에도 어린이들의 자연스러운 놀이 문화가 살아 있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부모들에 의해 강요당하고 있는 온갖 조기 교육은 어린이들의 놀이에 장애 요인이 되고 있으며 더욱 큰 문제는 어른들이 제공해 주는 값비싼 자동 장난감 등으로 어린이들이 자주성을 기를 기회를 박탈당하였고 컴퓨터 게임에서 어린이들은 더 이상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단순한 기계적 반응만을 하는 피동적 존재가 되어 버렸다.

 

놀이는 어린이들에게 지배와 제재 능력을 획득하게 하며 환상을 통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집단 생활에서 지도자와 지도자를 따르는 자의 역할을 동시에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이와 같이 놀이는 어린이의 신체적, 정서적 및 사회적 성장 발달에 이바지하며 신나는 생활 경험을 제공한다. 따라서 성장 후의 생활에 대한 준비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어린이의 놀이는 학습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학습과 동반 관계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학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동 성장 발달에 필수적인 놀이는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요즘의 어린이들은 체격은 향상되었으나 체력은 상대적으로 허약해져서 집단 놀이와 운동의 경험을 갖지 못할 때 자기 중심적, 배타적 사고에 빠지게 되며 정신적, 정서적인 소외감을 갖게 될 것이다. 부모들이 놀이를 경시하고 놀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공부만을 강요하지만 공부만큼 중요한 어린이의 놀이는 어린이들의 정상적인 성장, 발달을 위해 매우 필수적인 조건이 되며 동시에 놀이는 어린이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10. 어린이는 교통 사고로부터 안전한가?

 

1997년 7월 30일 여의도의 서울교 입구에서 교통 사고를 당할 급박한 순간에 스스로 온몸을 던져 두 어린 자식들을 감싸 안아 구하고 숨진 명지대 강사 고 박선주씨의 살신성인의 모정은 모든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이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교통 사고는 이 땅에서 매일 수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제 교통 사고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고 교통 사고가 가장 큰 사망의 원인이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누구도 교통 사고에서 안전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신체적 정신적 발달 수준이 미숙하고 방어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들의 교통 사고는 사고 후의 후유증, 장애, 학교 복귀와 학교 생활의 어려움 등 실로 어린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으며 특히 우리나라 어린이 전체 교통 사고의 70%가 초등학교나 집 주변 반경 1km 이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교통 사고에서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부모들의 일차적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교통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엄격한 보행자 보호 대책, 음주 운전이나 난폭 운전자에 대한 처벌 강화, 학교와 마을 주변의 안전한 통행로 확보, 어린이들의 안전한 옥외 놀이 공간이나 시설의 확보 등과 함께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통 안전 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1. 부모는 자녀의 일기장을 보아도 되는가?

 

어린이들에게 일기를 쓰도록 권장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할 것이다. 어린이들은 일기를 씀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반성해 보며 스스로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봄으로써 문장 작성 능력을 기르고 어린이의 눈에 비친 부모나 교사, 형제나 친구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정을 처리하며 선악을 판단할 기준을 스스로 찾아간다. 이것은 어린이의 정서적 도덕적 성장 발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린이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비밀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며 부모나 교사나 형제들이 알게 되면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비밀을 간직하는 일기는 어린이들에게는 모든 것을 바쳐서 지키고 싶어하는 '자신의 성'이 되는 것이다. 일기에서 어린이들은 부모나 형제, 교사나 친구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었던 일들, 때로는 이들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 이성 친구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알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실수나 잘못 등을 기록하게 되며 이런 내용이 폭로되면 자신에게 치명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부모가 자녀에 대해 관심이 많고 간혹 호기심으로 또는 교육적인 목적을 명분으로 하였다 해도 자녀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것은 어린이의 통화 내용을 습관적으로 도청하는 것과 같이 옳지 못한 행동이며 어린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어린이가 누릴 사생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된다.

 

 

12. 어린이는 유해한 정보에서 보호받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사회를 한마디로 특징지워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중 매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고도의 지식 정보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대중 매체의 막대한 영향은 순기능적인 것도 많으나 역기능적인 것도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인격 형성과 발달 단계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대중 매체가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중대하며 사회적 문제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다.

 

대중 매체 가운데서도 어린이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은 TV와 비디오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분만실에 설치된 TV 화면에 자극을 받게 되며 일일 연속극에 심취하여 젖을 먹이고 있는 어머니의 품에서도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게 된다. 이렇게 성장하면서 어린이들은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교실에서 보낸 학습 시간(약 1만1천 시간)보다 TV 시청 시간(약 1만5천 시간)이 더 많아지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스웨덴의 국영 방송의 조사 결과는 어린이들은 부모나 교사의 말보다 TV를 더 믿는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어린이들의 평균 TV 시청률은 매주 27시간에 이르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TV를 통해 8천 건의 살인 사건과 10만 건 이상의 폭력 행위를 시청한다고 한다. 그 결과 학습된 폭력 행위는 성인이 되어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폭력으로 연결된다고 하며 더욱 무서운 일은 7세 이하 어린이들의 50%가 영상 속의 상황과 현실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TV 브라운관에는 1만5천 볼트 이상의 고전압이 흐르며 여기에서 방출되는 X선이나 감마선은 어린이의 근시, 이유 없는 구토 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TV나 비디오 시청은 어린이들의 신체적 발달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 공격성이나 난폭성 등을 가져올 수 있으며 현실과의 거리를 느끼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모방 행동은 자칫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값비싼 컴퓨터가 학습이나 창의적 놀이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저질 게임으로 일관되고 있으며 일부 만화를 통해 학교 폭력 집단의 이름이 지어진다거나 심지어는 10대 스스로 만든 음란 비디오가 청소년들 사이에 강매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유해한 미디어로부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유익한 프로그램의 선정과 부모와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소개 등 어린이들을 유해한 영상 미디어에서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나 부모가 스스로 TV를 자녀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좋은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함께 시청하면서 적절한 시청 시간을 조정해 주며 내용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등 TV나 비디오의 역기능에 대하여 더욱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부모에게는 어린이들을 유해한 정보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13. 어린이들은 약물 남용으로부터 보호되고 있는가?

 

청소년의 약물 남용은 이제 더 이상 일부 서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청소년의 약물 남용은 음주, 흡연, 각성제 사용, 본드 흡입, 대마초나 안정제 또는 마약이나 필로폰 사용 등을 의미한다. 청소년의 약물 남용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음주는 고교 남학생의 83.9%, 흡연은 71.1%, 각성제 이용은 32.8%, 본드 흡입은 11.1%, 대마초 사용은 4.7% 등의 경험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이와 같은 통계 수치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으며 시급한 예방과 치료 대책이 수립되어야 하겠다.

 

약물 남용의 요인은 기성 세대에 대한 저항, 성적 충동과 욕구, 학업 성적과 목표에 대한 고민, 지나친 입시 위주의 경쟁적인 학교 수업에 따른 욕구의 좌절, 긴장 또는 스트레스와 상업 광고나 미디어 그리고 비도덕적이고 상업적인 사회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의 본드 흡입을 포함한 약물 남용과 이에 따른 청소년 탈선과 폭력, 범죄 행위가 날로 늘어나고 있으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약물 남용이 특정 문제 청소년들만의 그릇된 행위이며 자신의 자녀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우선 오늘의 청소년 약물 남용의 실태와 문제를 올바로 인식해야 하며, 이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자녀의 행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자녀의 긴장 해소를 위한 밀접한 대화를 통해 자녀가 긴장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며 자녀를 지지하고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 청소년의 약물 남용 퇴치는 결국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사목, 2003년 5월호, 이배근(한국어린이보호재단 회장)]



59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