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4일 (화)
(녹) 연중 제9주간 화요일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강론자료

2011-0815.....승천하는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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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8-14 ㅣ No.1075

성모승천 대축일[0815]

묵시 11,19; 12,1-6.10ㄱㄷ       코린토전서 15,20-27ㄱ     루카 1,39-56

2011. 8. 15. (). 등촌3.

주제 : 승천하는 삶을 위하여

오늘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셨던, 최고의 영광을 기억하는 성모님의 승천대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의 의미는 이것이 가장 큰 골자이지만, 성모님의 승천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야 옳은지 한편으로 생각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이 성모님의 승천을 사람으로 살았던 성모님의 힘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의미를 담아, ‘몽소승천이라고 불렀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말 표현에서는 예수님의 승천과 성모님의 승천이 구별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영어문자에서는 아직 구별하고 있고, 그 의미는 분명히 다릅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나 글자의 표현이 달라지면 그 안에 담고 싶은 의미도 달라집니다. 혹시라도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이나 도움 없이도 내 생각대로 승천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어야 하는데, 성모님의 승천기념과 예수님의 승천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그 뜻을 혼동하고 하느님의 일도 우리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도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학이 아주 발달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편리한(?) 과학의 도움을 아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활과학이든지, 의학이든지, 무역이나 여행이든지 우리는 발달한 과학의 도움을 아주 깊이 체험하면서 삽니다. 이렇게 과학이 발달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이 자기 지능과 지혜를 앞세우게 된다는 소리가 됩니다. 이렇게 되니, 예전에 신앙에서 당연하게 혹은 아무 이론(異論)없이 받아들였던 일들도 요즘에는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골똘히 생각하다보면, 신앙의 진리들은 과학의 힘에 눌려서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승천을 믿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늘에 올라가봤더니, 천국은커녕 아무것도 없더라....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신앙의 진리 가운데, 오늘 특별히 기억하는 이 승천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되었고, 10걸음 양보한다고 생각해서 알아듣는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실제생활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오늘 기억하는 성모님의 승천을 우리가 믿든지 말든지 우리 삶에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먹고 사는 일이 달라질까요? 갑자기 내가 사는 집이 갑작스레 커질까요? 오늘 팔려고 내놓은 집이 승천을 믿는 사람에게는 횡재라고 생각할 만큼 비싼 값이 되어서 우리 삶에 찾아올까요?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만, 그 어떤 것도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태중의 아기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이 모험이 훗날에는 인류구원이라는 열매로 나타나지만,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마리아는 인생을 거는 엄청난 도박(?)을 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놀라운 도박을 한 것도 그녀가 혼자 잘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은 아니고,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과 도우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우리 신앙에서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은 그렇게 놀라운 일을 받아들인 마리아가 사촌언니 엘리사벳의 축하를 받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 마니피깟을 부른 내용입니다. 마리아가 한 것처럼,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와 전례에서 이 말을 수없이 반복하지만 잘 외우지 못하니, 그 기도를 처음으로 했던 사람(?) 보다는 훨씬 정성이 모자란 태도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자세가 삶의 결과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 성모님의 승천축제일은, 마리아가 역경의 순간에 아주 효과적인 선택을 했고, 그래서 그녀가 하느님의 축복을 거저 얻었다고 강조하는 날은 아닙니다. 그와는 달리, 현실 삶에서 바쁘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도 하느님의 뜻에 대해서 정말로 효과적으로 응답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는 자세로 대해야 할 날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삶을 마치면 모든 것을 땅에 남겨두어야 합니다. 몸도 남겨두어야 하고, 내가 세상에서 행한 여러 가지 삶의 결과들도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내 의지가 작용하지 않을 때가 되면, 내가 남긴 결과를 사람들이 평가하고, 하느님께서 심판하시어 천국에 갈 수 있을 만한 결과를 맺었는지, 아니면 아직은 부족한지 판단을 해주실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영혼의 복된 순간을 누구나 바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삽니다. 그러나 바람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에게 베푸셨던 그 은총이 우리 삶에도 베풀어지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제가 삶을 바르게 살아, 당신께서 준비하시는 영광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정성껏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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